5월10일 수업 후기
- 물질세계
불교에 기초지식이 없는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낯선 언어들 사이로, 몇가지 감동적인 포인트가 있었다.
-이 책에 대한 원대한 계획
달라이라마는 2500년간 존재해온 불교 이론을 집대성하며 이 책을 기획하신 것 같다. 그 목적은 특정 종교(불교)의 전파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현대인들을 돕기 위함인 것 같다. 달라이라마의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 중생에 대한 진정한 연민을 접할 때마다 이 시대의 영적 스승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런 면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책을 집대성하고 집필하는데 함께 한 이들을 소개하는데, 이 책을 번역한 닝카 스님, 오랜 기간 불교 이론을 번역해온 성실한 번역가들, 불교계의 탁월한 이론가이자 스승들의 이야기도 감탄스러웠다.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연구자들이 이번 기회에 조망을 받는 것 같아 이 또한 의미있는 일 같았다.
불교가 달라이라마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부각되는 것 같고, 달라이라마가 집필하시고 연구하신 수많은 책들을 꾸준히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달라이라마가 하고 계신 역할이 우리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나의 삶 또한 그렇게 변화해야하지 않을까. 이 또한 그분이 언급하신 ‘원대한 계획’의 일부 아닐까.
-과학에 대한 표상을 넘어서
명징한 진리만을 다루는 것 같은 ‘과학이 말하는 것은 모두 진리일까’와 ‘입증되지 않은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맞나’라는 질문들이 기억난다. 과학 이론 조차 인연 조건에 따라 생성 변화 소멸을 거듭되기에 영원불변한 과학적 진리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세상에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도 입증되지 않은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또한 모든 것은 연기이기에 실체란 없다는 불교 이론이 현대 과학에서도 조금씩은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과학의 미래는 과학의 표상을 넘어서는데 있다는 채운샘 강의가 다시 기억난다. 분화를 거듭해온 근대식 학문 체계가 이제는 답답하게 보이고, 과학을 넘어 과학철학이 되야 한다는 어느 선생님의 이야기도 기억난다.
2. 물질의 물리학
이 책에서는 그리스 자연철학을 시작으로, 물질의 근본을 탐구해온 역사를 살펴준다. 우리도 이를 따라가며 물질이란 그래서 과연 무엇인지 이야기 나눴다.
물질이란 무엇인가
흔히 물질이라 하면 현대 과학기술 수준에서 기본 구조가 파악 및 관찰할 수 있고 안정적 성질이 있어 수량화할 수 있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물질의 특성들을 우리는 질의 응답 혹은 난상토론을 통해 파헤쳐(?) 보았다.
-물질의 기본구조
데모크리토스부터 물질의 근원을 찾기 위해 원자의 구조를 탐구해 왔고, 업쿼크 다운쿼크까지 쪼개 본 후 물질의 기본입자를 찾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모든 물질은 양자물질이란 표현을 하는데, 양자의 정의는 에너지의 덩어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량’을 뜻하는 양자(Quanm) 이란 말이 정확한 개념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다. 게다가 입자와 파동을 계속 오가고 있는 상태인데, 이 끊이지 않고 변화하는 극미진의 세계를 우리는 최소단위까지 파악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인 최소단위를 찾았다고 하는데 그건 현재 기술수준에서만 그렇단 이야기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하지만 현재 파악된 수준을 기준으로 삼고, 우리가 이런 입자세계를 관찰 가능하냐는 질문으로 이어가 보았다.
-관찰 가능성, 그리고 존재와 작용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미시세계에서 관찰자가 관찰행위를 시작하면서 결과값이 달라진다. 또한 특정 위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편재되어 있어, 확률적 분포에 의해서만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물질의 하나인 관찰자의 전파와 같은 미시적 존재가 대상과 상호작용이 계속 이뤄지기 때문이다, 과학의 결정적 한계가 대상과 주체를 분리해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미시세계에서는 관찰대상과 관찰자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또, 쉬지않고 계속 작용을 거듭하는 극미진의 세계를 존재로 규정할 것인가, 혹은 작용으로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불교에서는 항상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항상성이라 이야기한다. 이 작용을 거듭하는 세계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게 맞나, 그리고 그 규정이 과연 의미있는 것일까.
-안정성
극미진의 세계를 정의하기 위해 데모크리토스, 플라톤부터 수천년간 과학자들은 고정불변하는 특성을 찾으려 했다. 그중 이 책에서 소개된 헬름홀츠는 소용돌이 이론을 통해 계속해서 작용하지만 그 성질을 유지하는 안정적인 특성을 찾으려했고, 물질의 기본구조에 대한 탐구는 불변성에서 안정성이라는 개념으로 조금 변화되어 원자 및 입자를 정의하게 된다. 양자역학에서도 디지털화라는 작업을 통해 편재하는 양자의 특성들을 수량화하기 위해 탐구해 왔다. 아마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위상물질의 어떤 특성이 그러한 안정성의 새로운 정의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 공식화, 혹은 수량화 작업 또한 해석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도 있었다. 과연 현대 물리학은 극미진의 세계의 안정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정리하다보니 우리의 질문 중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현대 물리학의 앎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서, 질문들을 이어갈 수 있는 기초체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또한 만만하진 않아 보인다. 그러나 끝없는 질문들이 나왔고, 난상토론과 Q&A가 혼재된 그 2시간의 세미나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쩌면 이게 정말 과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김상욱교수의 이야기를 인용했는데, 과학의 태도란 진리를 향해 돌진하고, 아님이 밝혀졌을 때 바로 뒤돌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오갔다. 과학자들의 무책임을 촉진할 수 있는 태도로 볼 수도 있지만, 이게 과학적 태도가 가진 중요한 특성임은 맞는 것 같다. 과학적 태도란 계속 질문하는 것 아닐까. 정답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그 결과를 넘어선 앎을 향한 열망이 과학적 태도의 힘 아닐까. 앞선 진리의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 과학의 힘 아닐까. 우리도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번 학기 공부의 목표일 수 있겠다. 질문들을 이어가다보면 어느덧 과학의 표상을 넘어선 새로운 앎의 인연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공부가 그렇지만 과학 공부를 하다 보면 도대체 내가 아는 게 뭐지?라며 고개가 저절로 푹 숙여집니다... but, 공자님 말씀처럼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하지않습니까~ 많이 모르는 걸 알수록 많이 아는 건 또 아니지만 ㅋㅋㅋ 내가 모르는 건 남들도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아는 척하지 말고 용감하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 밖에요^^
불변성과 안정성의 차이는 뭘까? 책에서 저자가, 과학계에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왜 안정적일까?' 라는 질문인데, 저는 그 질문의 의미가 뭘지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불변성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한 단계 나아간 것이 안정성이라는 개념 아닐까 싶기도 해요. 현재까지는 안정적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 안정성이 항상적인지는 알 수 없다는 과학계의 커밍 아웃은 아닐지. 단순히 단어의 함축된 의미로 함 추론해 봤습니다. ㅋㅋ 앞으로 공부하면서 저희들끼리의 해석을 만들어 보면 과학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간결하면서 솔직 담백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그쵸. 안정성이라는게 당연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저로서는 그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는다는게 참. ㅎㅎ. 근데 답을 바로 못 찾더라도 꼬리를 물고 물음들이 이어지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우리가 생각을 함께 전개시키는 것처럼 느껴쳐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