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교시 <물질세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소지所知인 대상의 체계'를 읽고 있습니다. 특히 오근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책에서는 쁘리티비반두 논사의 『오온석』을 인용하며, 불교의 다른 개념과 혼동되지 않도록 오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 안근에 대한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안근은 투명하다(돌, 나무 등과 백내장이 있는 눈, 맹인의 눈 등은 색이지만 투명함이 없기 때문에 안근이 아니다). 안근은 색이다(신심信心을 투명한 마음(심소)이라고 할 때의 설명과 혼동되지 않기 위하여 색이라고 말한다). 안근의 대상은 색깔이다(안근이 아닌 이근 외 나머지 근의 대상은 색깔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정의한다).
여기서 왜 '투명하다'고 했을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백내장이 있는 눈에는 안근이 없다고 했는데요. 백내장이란 수정체가 혼탁해져 빛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시야가 뿌옇게 보이게 되는 질환을 말합니다. 눈 안의 앞부분에 있는 수정체는 양면이 볼록한 렌즈 모양의 무색 '투명한' 구조이고, 빛을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안근을 수정체와 직접적으로 대응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이처럼 빛을 모으는 등의 보는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상의 '봄'이 발생하기 이전의 순수하고 잠재적인 기능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렇기에 안근을 '투명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기 전에 이미 자아와 세계를 분별하는 마음, 즉 몸 안에는 자아가 있고, 몸 밖에는 세계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보니 밖에 꽃이 있다'는 식으로요. '안근'이라는 말은 '내가 본다'고 하는 이 전제에 대한 질문과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단어일 것입니다.
- 2교시 <물질의 물리학>
토론 시간 내내 책에 나와 있는 과학의 개념이나 실험 내용들을 이해하고자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에게도 과학의 문턱은 특히 높게 느껴지는데요. 서툴지만 더듬더듬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현재까지 알려진 과학에서 말하는 물질의 구조란 이렇습니다. 물질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핵과 전자로,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양성자와 중성자는 다시 쿼크들로 구성됩니다. 저희는 이런 이론이 정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먼저 전자의 '배타원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질들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절연체)입니다. 전기가 통한다는 것은 물질 속에 있는 전자가 그 물질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향하여 물 흐르듯 흐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상태는 전자의 움직임이 게을러진, 에너지를 최소화한 가장 안정적인 상태입니다. 그런 상태가 가능한 것은 서로 방향만 다른(스핀spin이라고 부름) 똑같은 전자들이 물질 속에 편재되어 있기 때문이죠. 저자는 이것을 호텔(물질)의 빈방을 하나도 안 남기고 남녀 한 쌍(전자)씩 투숙하는 상황에 비유하였습니다. 전자의 스핀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하는 방법은 양자수quantum number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전자가 서로 다른 양자수를 가지면서 배치되는 것을 파울리의 '배타원리'(1925년)라고 부릅니다.
이런 발견을 하도록 파울리를 이끈 것은 제이만의 분광학 실험이었습니다. 백색광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색으로 갈라진다는 사실은 뉴턴 시절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기체의 온도를 올려 발광하는 빛을 분석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었구요. 그런데 제이만은 스승 로런츠의 영향을 받아, 여기에 자기장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도입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난, 자석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달라지는 분광학 선의 갈라짐 현상(제이만 효과, 1902년)을 설명하기 위해, 로런츠는 아직 발견되기도 전인 전자의 존재를 가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고온에서 노란색으로 발광하는 나트륨 가스를 분광학 도구로 분석하면 여러 개의 선으로 갈라지는데, 그 중 어떤 것은 로런츠의 공식이 예측한 것과는 다르게 더 많은 가짓수의 선으로 갈라진 것입니다(비정상 제이만 효과). 당시 과학의 언어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현상에 대해 마침 파울리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자의 두 값이라는 새로운 속성을 인정해야만 비정상 제이만 효과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자석에 의한 분광학선의 갈라짐은 전자의 스핀의 속성이 반영된 현상입니다.
기체를 가열하고 자석을 가까이 대면서 물성을 연구했다면, 온도를 내리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너스는 온도를 최대한 내림으로써 기체의 전자 운동을 제어하여, 물질의 특성을 탐구해 보고자 했습니다. 더 이상 온도를 낮출 수 없을 만큼 내린, 가장 에너지가 낮은 상태를 과학에서는 절대영도(0K, 섭씨-273.15도)라고 부릅니다. 우주 공간의 온도(약 -270도)와 비슷한 상태이지요. 저희는 이 절대영도의 상태와 헬름홀츠가 말하는 자유에너지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개념이 좀 더 명확해지려면 공부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에서는 초전도 현상(1911년)과 초유동 현상(1938년)이 나타납니다. 초전도란 금속이 극저온의 상태에서 건전지 없이도 전류가 흐르는,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또 액체헬륨을 2.2K (약 −271°C)이하로 냉각시키면 점성 저항이 0이 되는 초유동 상태가 됩니다. 초전도와 초유동은 원자 수준의 미시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거시 세계에서 관찰되는 경우라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과학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가 많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노벨상을 받을 것 같은 사람이 받지 못하기도 하고, 수학이나 실험이 아닌 직관으로 혹은 우연히 결과를 얻어내거나, 교수나 동료가 화두처럼 던져주는 질문에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며(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는 뮌헨대학교의 같은 교수 밑에서 공부한 선후배 사이였고, 전자의 파동적인 속성을 함수로 풀어낸 블로흐는 하이젠베르크의 첫 제자였으며, 제이만은 오너스의 제자였다), 나타난 결과에 대해 해석을 내려야 할 이론적 틀이 없어 난감해 하기도 합니다.
우리처럼 현대의 과학자들도 그동안 물질에 대해 사고해 왔던 개념들을 내려놓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하는데,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 질문해 보기의 현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네 저도 이번 책을 읽으면서 질문하기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 같았습니다. 과학자들도 뭔가 천재적이고 운이 좋아서 짜짠하고 획기적인 발명을 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국 당연하다는 걸 다르게 보고 질문하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 길에 이를 수 없다는 게 결국은 저희가 하는 공부나 삶과 다르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인간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그들의 질문방식, 문제 접근방식, 집요함이 어떤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연습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요.
정리하느라 애쓰셨어요. 저는 아직 과학을 공부하며 특별한 영감이나 힌트를 얻지는 못 했어요. 그저 두분이 부럽. 걍 답답한 맘에 이거저거 관련 유튜브도 찾아보고 정보들을 검색하다보니 잘 모르는 가운데 조금씩 생소함이 사라지고 용어도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상세계에 작용하는 전자기력 깉은 거에도 관심을 갖게 되네요. 뭔가 딱 떨어지는 해답. 물질이란 이런거야. 내지는 불교와 과학의 물질을 그럴듯하게 연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것 같아요.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그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달라지는 내 생각과 행위가 다인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