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4.5) 공지입니다.
- <현우경(상)> 제2권(85~156쪽)까지 읽고 질문 및 이야깃거리를 숙제방에 남겨주세요.
- 강의가 있는 주이지만,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를 읽어갑니다.
- 간식은 이윤지 선생님과 정은이 선생님께서 준비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 후기는 이윤지 선생님께서 써주시겠습니다.
구법과 헌신 :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자신을 바치고 있는가?
불교의 3대 비유서 중 하나로 불리는 <현우경>은 정말 다이내믹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제1권은 ‘청법’으로 시작합니다. 갓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번뇌에 덮여 쾌락만 즐기고 있어서 자신이 오래 살며 가르치더라도 헛될 것임을 직감하고 열반에 드는 것이 낫다고 여기십니다. 토론시간에서 깨달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회의적일 수 있느냐는 물음이 잠깐 나왔었는데요, 이는 ‘공’과 ‘연기’의 가르침이 당시 힌두교적 업과 윤회 관념 속에 살던 중생들에게 큰 두려움과 허무를 일으킬 수 있음을 우려하셨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기억에 남네요. 부처님에게도 궁극적 가르침이 중생들의 마음에 이로울까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으셨던 거죠. 그래서인지 그 즉시 범천왕이 내려와 부처님께 사정사정하며 설법을 청합니다. 부처님이 전생에 극한의 헌신과 함께 세우셨던 절절한 보살행의 선언들을 기억해 보시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청법’장에서는 한 구절의 법을 듣기 위해 자신의 재산, 몸, 처자식 모든 것을 내어 놓고 고행을 겪어내는 여섯 가지 부처님 전생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저희는 이 서사의 독특함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첫 번째 토픽은, 흡사 극기훈련과도 같은 ‘몸 보시’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법을 구하려는 스승들은 부처님께 말합니다. “어떻게 보답도 없이 법을 들으려 하는가?” 요구사항은 온몸에 천개의 못 박기! (전생의) 부처님은 그것을 그대로 해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벙쩌버린 우리에게는 ‘이건 몸에 대한 경시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고대종교들에 많았던 희생의식 말이죠. 100살에 얻은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는 아브라함의 일화 같은 것이요. 어딘지 거부감이 듭니다. 법은 소중합니다. 소중한 법을 얻기 위해 소중한 것(몸, 재물, 처자식)을 바쳐야 할까요? 구법의 길이 겨우 이런 상거래의 과정인 걸까요?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이 구법을 위한 헌신은 결코 우리가 아는 등가교환의 형식이 아닙니다. 그보다 고귀한 무언가가 있는듯합니다. 첫째 여기서 보시되는 몸은 거래에 내놓을 수 있는 나의 재산이자 ‘소중한 가치’가 아닙니다. (전생의) 부처님은 이렇게 통찰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나고 죽는 동안에 수없이 몸을 버렸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버렸으니, 그 백골을 헤아리면 수미산보다 높을 것이요, 머리를 베어 흘린 피는 다섯 강물보다 많은 것이며, 울면서 흘린 눈물은 네 바다의 물보다 많을 것이다. 이런 갖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헛되이 목숨을 버린 것이요, 진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24쪽)
여기, 몸에 대한 다른 감각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알고 계십니다. 수억겁의 세월 동안 인간계, 축생계, 아귀계의 삼계를 윤회하면서 여러 존재를 경유하며 이런저런 일에 몸을 바쳐왔다는 것을요.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그 부단한 헌신들의 대부분이 탐진치의 굴레 안에 있었다는 것을요. 한 번이라도 진리를 위해, 불도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바친 적이 있었던가를 절절히 묻는 자에게는 몸이 구법의 길이 된다는 사실이 감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래도 이런 헌신은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진다면 이렇게 질문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언가에 우리의 몸을 안 바치고 있는가? 토론 중에 아이돌 연습생들의 치아교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성인이라면 수년이 걸릴 과정을 단 수개월에 끝내버려서 몸이 완전히 뒤틀려버린다고 합니다. 미용산업뿐인가요. 우리는 입시, 출세, 스펙을 위해서 이미 엄청난 열의와 자발성으로 우리 존재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상한 것이었음을 이해하는 만큼 법을 위한 헌신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두 번째 특이함은,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것이 구원이나 영생이 아니라 단지 시 한 구절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법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것 자체가 깨달음은 아니죠. 그걸 듣고 새기고 새겨서 깨닫는 문제는 자기 몫입니다. 물론 경전에는 훅훅 깨닫는 모습들이 나오지만 사실상 문사수는 수행자의 일이죠. 이것은 기독교의 ‘약속’과는 무척 결이 다릅니다. 법을 묻고 몸을 보시하고 또 법을 익혀 깨닫는 것까지, 어느 하나 능동성이 요구되지 않는 부분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잠에 빠진 보살들, 그리고 13대 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가 거의 끝나갑니다. 이번 범위에서는 파계의 아이콘이었던 6대 달라이 라마부터 성인이 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7대부터 12대 달라이 라마, 그리고 제국주의적 격변의 시대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을 살아낸 13대 달라이 라마에 대해 배웠습니다. 책의 줄거리와 요점들은 경아샘과 자영샘의 발제문에 꼼꼼히 적혀 있으니, 불교 숙제방을 이용해주세요. 세미나의 이야기는 윤지샘께서 후기로 정리해주실 것입니다^^
제게 기억에 남았던 토픽은 격변의 시대에 얽히고설킨 관점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과 티베트의 역사적 관계는 기이한 억지스러움이 있지만, 그것도 들여다보면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닙니다. 가령, 달라이 라마와 토머스 레어드가 줄곧 강조하는 것은 티베트는 한 번도 중국(한족)에게 지배받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몽골과 만주(청)에게 의존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직자-후원자 관계였고 아무리 객관적으로 본다 해도 종주국의 관계였지 식민지나 피지배국의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티베트의 언어도, 법도, 종교도, 문화도 빼앗긴 적이 없지요. 티베트를 바라보는 중국(한족)의 관점 역시 나름의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형성된 것에 불과합니다. 신해혁명으로 만주(청)에게서 독립한 중국은 자신들의 울타리를 어떻게 세워야 할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일단 변발을 잘랐기에 저 만주인들을 비중국인이라고 한다면, 옛 거의 4백년 전에 있었던 명나라에서 뿌리를 찾아야 하는데, 명의 영토는 만리장성 이남일 뿐 아니라 티벳고원과 고비사막을 빼야 해서 너무나 좁아집니다. 넓은 영토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청나라의 위상을 국경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롭게 부상한 중국에 대한 질문은 간단했다. 국경은 어디까지인가? 명의 국경으로 정해야 하나? 중국어를 하는 중국인들이 사는 곳으로 정해야 하나? 만주인들이 점령했던 영토까지 통합해야 하나? 1900년대 초기 중국인들에게는 만주의 속국이었던 국가 모두가 정당한 중국 소유라는 인식이 퍼졌다.”(272쪽)
이런 역사를 배우다 보면, 지금의 지배적인 중국인의 관점이 단지 틀렸다고, 그보다 훨씬 다양한 관점(만주인의 관점, 티베트인의 관점, 영국인의 관점)이 공존한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 다르다’에서 더 나아가 그 다른 관점들이 어떤 배치 속에서 형성되었는지, 거기에서 견고하게 작동하는 관념(예를 들면 민족=국가=영토)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등을 공부해 보아야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영적인 관점에 대해서도 그렇게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미나 때 윤지샘께서 전해주신 <위대한 지도자>의 한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13대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인들의 완고함에 부딪혀 개혁의 어려움을 파악했을 때, 곧 몰려올 중국인들의 ‘붉은 물결’을 노쇠한 몸으로 맞이할 수 없어서 스스로 입적 시기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말이죠. 우리의 상식과 과학의 틀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런 영적 관점을 어떻게 소화하고 사유할 수 있을지는, 우리가 놓인 자리를 거듭 문제 삼고 저쪽의 서사와 감성들을 들으려고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민호샘은 어쩌면 이렇게도 맥락을 잘 정리하시는지 그저 탄복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함께 토론하던 생생한 시공간으로 금새 대려가 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