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시간까지 5회에 걸쳐 <불소행찬>을 마치고, 이번 시간부터 <현우경賢愚經> 낭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장시간 낭송이 좀 힘에 부쳤었는데 튜터이신 미영샘께서 고충을 눈치채시고 40분 낭송 후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낭송 시간이 길어지면 저는 집중력이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텍스트와 신체성의 결합에서 당최 체력이 딸리는 듯 합니다. ^^;; 옛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는 집안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하고, 스님들이 단체로 경전 독송하시는 것을 보면 무척 웅장하고 장엄하던데... 늘 눈으로만 텍스트를 따라가다가 목청을 내어 읽는 건 다른 차원의 배움이라는 것을 매번 느낍니다.
현우경이 첫 시간이라 그랬는지 낭송 후 토론이 무척 활발했습니다. 이 경전은 원래 중국에서 <현우인연경>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합니다. 총 13권 69개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부처님과 제자들의 전생담을 담고 있는데, 불교의 인연법, 인과론을 다양한 우화와 비유의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이 중에서 저희는 요번에 1권 7개의 스토리를 읽고 토론했는데, 주된 내용은 법을 청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바치는 왕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왕들은 백성들을 잘 보호해서 풍요롭고 즐겁기가 끝이 없다고 나옵니다. 그냥 그렇게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면 될 것 같은데 왕들은 그때 이런 생각을 하죠.
‘나는 지금 제일 높은 왕의 지위에 있다. 백성들은 내 나라 안에서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나는 만족할 수가 없다. 오묘하고 보배스런 이치를 배워 저들을 이롭게 해야겠다.’ (18쪽)
이만 명의 부인과 오백 명의 왕자와 만 명의 신하가 있고 백성들이 편안하고 풍요로워도 이런 물질적 조건만으로 인간은 구국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가 봅니다. 왕은 사방으로 현자를 찾고 드디어 법을 전해줄 이를 만납니다. 그러나 현자는 법을 선뜻 알려주지 않습니다. 먼저 보답을 하라고 하죠. 왕은 기뻐하며 법공양을 올리고 법을 듣습니다. 그런데 왕이 올리는 공양이 결코 예사롭지 않아요. 자신의 몸에 천 개의 심지를 박아 불을 붙이거나, 몸에 쇠못 천 개를 박고, 불구덩이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상상만 해도 살 떨리는 장면이에요. 저희가 열을 올려가며 토론했던 부분도 이 지점에서였습니다. 공양이 무슨 극기를 시험하는 것이냐, 왜 몸이어야 하느냐, 공부를 하며 양생을 도모해야지 이렇게 몸을 경시해도 되는 거냐, 이런 강단과 패기가 비범한 것이라면 부처님과 우리의 거리가 확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평범함을 정당화하게 되지 않느냐 등등...
4줄짜리 법을 구하는데 저런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니 반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서 몸이란 우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자신이 가장 집착하고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하겠죠. 문득 불교에서 가르침을 듣는 잘못된 태도를 비유한 것 중에 독이 든 그릇의 비유가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이 든 그릇에는 감로수를 따라도 독이 퍼져 쓸모없게 됩니다. 감로의 다르마를 받을 그릇이 내가 꽉 쥐고 있는 집착으로 채워져 있다면 별 소용이 없지 않을까요? 내가 쥐고 있는 것이란 ‘이건 내 꺼야, 정말 내 꺼야, 절대 양보할 수 없어’ 라고 하는 것입니다. 왕이 바쳐야 했던, 배우자와 자식, 그리고 자신의 신체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내 꺼’라고 붙들고 있는 거죠. 이걸 놓을 수 있을 만큼 간절해야 다르마의 감로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요?
사실 저희도 간절하기는 합니다. 돈이 간절하고, 성공이 간절하고, 아름다운 외모가 간절하고, 주식과 부동산이 간절하고 등등... 하여 현대를 사는 우리도 이렇게 간절한 대상에 기꺼이 몸을 바치기도 합니다. 더 많은 돈과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심하게 혹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토론 중에 나왔던 얘기 중에 이런 사례들이 있었죠.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 몇 년이 걸려야 하는 치아 교정을 3개월 만에 무리하게 하고 (턱과 치아 뼈를 강제로 비트는 것보다, 뜸 뜨는 셈 치고 몸에 심지를 박아 불을 켜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 유명세로 돈을 번다고 치킨과 라면을 수십 개씩 한 번에 먹는 먹방 유튜버들. 이들의 몸은 어디에 바쳐지는 걸까요. 아주 오래전 소싯적 제 친구 하나가 성형을 위해 양악수술을 하겠다고 해서 제가 그 수술할 거면 저랑 절교한 후에 하라고 말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양악 수술하다가 죽은 사람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오던 때였거든요. 현대인들이 각자의 간절함을 위해 몸에 가하는 폭력을 생각해 보면, 현우경의 왕들은 오히려 지고지순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이 듭니다. 대체 왜?! 뭣이 그리 중하길래 그렇게 대단한 공양을 올려야 하느냐 말입니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왕인데 말이죠.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나고 죽는 동안에 수없이 몸을 버렸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버렸으니 그 백골을 헤아리면 수미산보다 높을 것이요, 머리를 베어 흘린 피는 다섯 강물보다 많을 것이며, 울면서 흘린 눈물은 네 바다의 물보다 많을 것이다. 이런 갖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헛되이 목숨을 버린 것이요, 진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 내 몸에 쇠못을 박아 공양을 올림으로써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구하는 것이니, 부처가 된 뒤에는 지혜의 날카로운 칼로 너희들의 번뇌의 줄을 끊어버릴 것이다.’ (25쪽)
이 말을 보면서 평범한 우리는 고-집-멸-도의 고(苦)를 넘어가기도 힘들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삶이 탐진치로 얼룩져 반복되고 있다(輪回)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자각이 있어야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도 생기겠죠. 질문과 토론에서 언급되었던 우리 삶의 ‘안전망’은 정말 ‘안전(安全)’한 것일까요? 저희는 왕의 간절함과 믿음이 낯설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믿고 있고 붙들고 있는 것들을 낯설게 보는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그것이 믿을 만한 것인지, 그것이 정말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지, 끝까지 붙들만한 것인지 말입니다.
2.
늘 마치기로 한 시간보다 조금 넘어서 토론이 끝나곤 합니다. 저희는 규문에서 정성 들여 차려준 점심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한 후에 기웅샘표 커피를 마시며 2교시에 들어갑니다. 복도 많죠! 규문-첸리시 보살의 가피일까요? ^^ 하루를 즐겁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다른 누군가가 공부할 때 그분들을 위해 마음을 낼 수 있는 건 뭘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가피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ㅎ
2교시에는 <달라이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의 9장과 10장 부분을 발제하고 토론을 했습니다. 이 부분은 6대에서 13대 달라이라마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역사적으로 다이내믹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티벳-만주-몽골-중국의 관계 뿐 아니라 20세기 초에는 티벳을 두고 영국과 러시아, 인도까지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히죠.
저희는 먼저 6대 달라이라마와 그분의 독특한 행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른 달라이라마 들과 달리 계도 받지 않고 세속적 행위를 마음껏 누린 이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요. 현 달라이라마는 6대 달라이라마가 파계하고 결혼해 세습군주제를 세우는 것이 첸리시 보살의 ‘원대한 계획’에서 6대 달라이라마에게 부여한 임무였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계획은 티벳 내부의 계파 싸움과 만주와 몽골의 개입으로 무산되지만 말입니다. 앞서 티벳을 재통일 했던 5대 달라이라마는 종교적 리더의 역할만 맡았던 전임자들과 달리 티벳이라는 한 국가의 수장이 됩니다. 그러나 국가 수장이 환생을 통해 임무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나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사이 약 15년간의 불완전한 공백을 피할 수 없죠. 그러니 닝마의 전통을 받아들여 세습군주제를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6대 달라이라마는 닝마의 깊은 수행까지 섭렵했으니 말이죠.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달라이라마의 환생 제도가 계속 이어졌고, 환생의 공백은 섭정과 판첸라마 제도로 보완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어가며 흥미로운 부분은 티벳에서 역사적으로 주요한 사건과 맥락, 인물에 대해 현 달라이라마가 견지하는 관점입니다. 그는 우리가 보통 일반적 (혹은 합리적)이라고 믿는 역사적 관점 외에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달라이라마처럼 영적 수련을 한 분들에게는 과거-현재-미래의 관계 속에서 전체의 인과를 짚어내는 맥락이 있다고 하죠. 이것은 우리가 역사에 대해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팩트라고 여기는 좁은 시야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가령 티벳 역사를 관통하는 ‘첸레시의 원대한 계획’은 티벳이 겪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단순한 사건에 머물게 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을 널리 자비심으로 채우려는 비전 안에서 해석을 시도하도록 합니다. 지난 시간 채운샘은 이걸 ‘자비사관’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죠.
그러고 보면 한반도에도 세상의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弘益人間)하고자 하는 원대한 비전이 있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그 비전이 어느샌가 사라져버리고 현대의 우리에게는 역사 교과서의 암기 구절 정도로 남아있다는 거지만요. ^^;;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까지도 티벳 인의 마음에 면면히 흐르는 자비사관이 부럽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갑자기 홍익인간을 소환하는 건 좀 그렇죠. ㅎ 대신 불교를 배운 학인으로서 우리의 마음도 첸레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해 봅니다. 이건 존재 누구에게나 자비의 불성이 내재해 있다는 불교의 전제이기도 하니까요.
‘잠에 빠진 보살들’이라고 표현된 7대-12대의 달라이라마들이 짧은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선 여러 현실적인 추론들이 가능합니다. 독살설이나 병사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관점에서는 세상의 인연이 이분들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만한 덕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7대-12대 달라이라마들이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수많은 깊이 있는 가르침을 펼쳐냈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면 첸레시의 화현들은 인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중생들을 위한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기도 하겠죠.
'일반적 vs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 외에도 우리는 우리가 역사에 대해 얼마나 편향된 시각을 지니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중국 중심으로 이해하는데 익숙해 있었다면 텍스트를 읽어가면서 같은 시대를 몽골이나 만주, 그리고 티벳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는지 그 차이가 정말 크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관점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따지기에 앞서, 각각의 관점이란 것도 결국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보기를 원하느냐에 따라 앵글이 정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하고 좋은 방향으로 뭔가를 해석하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관점이 어디에서 도출된 것인지, 어떤 전제를 깔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죠. 모든 사건의 해석에는 욕망이 투여될 수 있지만, 우리가 같은 사건을 어떤 ‘원대한 비전’ 속에서 겪어내기를 원하는지는 스스로 질문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의 사건사건들을 '첸리시의 자비' 위에서 본다는 것은, 저희에게 놀랍고도 필요한 해석 실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니 저희에게도 홍익인간이라는 멋진 비전이 있었네요. 어쩌면 비전 자체보다도 그것을 계속해서 살아내고 전승해 주는 관계망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풍성하고 잔잔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
뜸 뜨는 셈 치고 몸에 심지를 박다니! 윤지샘의 유머에 빵~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역사관을 따라가면서 티베트 민족들이 품고 있는 정체성이 기이하면서도 부럽기도 합니다. 그들의 그 '흔들리지 않는 편암함'의 정체는 뭘까요? 공부할수록 궁금해지네요.
윤지샘의 내공 있는 후기 잘 읽었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