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 광고도 아니고 웬 『불소행찬(佛所行讚)』? 『달라이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는 또 뭐람?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티베트 역사를 공부한다고? 달라이라마가 들려주면 뭐 달라? 1학기에 우리가 읽을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저는 좀 심드렁했습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요. 별 기대 없이 『불소행찬(佛所行讚)』을 집어 들었습니다. 네. 집었으니 책장을 넘겨야겠지요. 오~~ㄹ. 의외로 재밌는데. 책장이 술술 넘어갑니다. 책 제목만 봤을 땐 전혀 흥미가 유발되지 않았었는데, 막상 읽어나가니 부처님의 일생을 시로써 찬탄해서 그런지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올해 처음 도입된 강독을 해보니
눈으로만 글자를 따라 가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었습니다. 나만의 읽는 속도와 방식과는 다른 이질적인 소리와 리듬에 집중해서 텍스트를 따라가다 보니 혼자 읽을 때보다는 감정이 더 증폭되는 것 같았습니다.
“몸은 변하고 기운은 허약해져서 근심만 가득하고 즐거움은 적으며 즐거움을 잃고 모든 감각 기관은 무너지나니 이것을 일러 쇠하고 늙은 모습이라 합니다. 저 사람도 본래는 어린애로서 어머니 젖 먹으며 자라났으며 어린아이 시절엔 장난기 가득하였고 단정한 모습으로 다섯 가지 욕망도 즐겼는데 세월이 흘러 몸뚱이가 쭈그러들고 지금은 늙게 되어 무너져갑니다.”(염환품, 58)라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쇠하고 늙어가는 고통 생각하면서 세상 사람들 무엇을 애착하고 즐기는가. 늙음 앞에 모든 것은 허물어져서 거기에 부딪치면 분간할 것이 없는데. 비록 젊음의 육체와 힘이 있어도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나니 눈앞에서 그 모습 뻔히 보면서 어찌 싫어하여 떠나지 않는가.”(염환품, 59~60)라는 대목에서는 떠나지 못하는 저를 못난이, 못난이라고 질타하게 됩니다.
강독 후 짧게 책을 읽은 느낌이나 좋았던 또는 인상 깊었던 대목들을 나누었는데, 가벼운 인상 스케치 느낌의 소감이나 의문들에 댓글, 대댓글 형식으로 말을 얹다보니 시간이 좀 부족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들 중 염환품(厭患品)과 생품(生品)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네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알게 되고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는 염환품에는 부처님의 반복되는 질문이 나옵니다. “늙고 병들고 쇠약한 것은 저 사람 혼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우리들도 또한 마땅히 저러한가?” 취약성이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닌, 나를 포함한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되는 대목입니다.
거룩하고 특별한 아들이 태어나 기쁘지만, 출가하여 왕의 자리를 이을 자가 없을까봐 걱정한 정반왕은 아들이 세속의 즐거움에 충분히 탐닉하여 집을 싫어하지 않도록 온갖 추하고 더러운 것, 늙고 병들고 쇠약하고 졸렬하고 빈궁함에 괴로워하는 이들을 석가의 눈에 띄지 않도록 제거하였습니다.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결핍으로 인식하였기에 정반왕은 그것들을 제거하고 감추는 것이죠. 정반왕의 방식은 우리 사회가 정상/표준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을 취급하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그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것입니다. 장애인, 병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들을 분리하여 시설에 수용하고, 도시를 재건축하고 재개발하여 빈곤을 지우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그러나 부처님은 신체를 가진 인간 존재의 쇠락과 유한성이라는 취약성을 인정하고 이것의 보편성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생로병사는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겪는 방식은 모두 다릅니다. 암튼, 그래서 출발한 부처님은 어디로 가냐고요? 제 이름에 ‘호’자가 들어간다고 해서 제가 호락호락한 사람처럼 보이나요? 호리호리한 사람이고는 싶지만,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닙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앞으로 여덟 번의 수업이 남아 있으니 한 걸음씩 가보죠.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하는 생품을 읽으면서는 태어남이 온통 축복으로 도배된 부처님이 부러웠습니다. 누구는 저렇게 태어남 자체가 축복이고, 누군가의 태어남은 무관심으로, 누군가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저주로.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서 ‘이 불공평을 개선하자!’고 소리높여 외치는 연사가 되고 싶다는 말은 아닙니다. 엄……. 축복 속에 태어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긴 한데, 태어남은, 삶은 꼭 축복받아야 되는 일인가? 죽음은 축복이 될 수 없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죠. 정말 그럴까? 삶에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다는데. 인간 암수의 결합의 결과일 뿐인데. 저는 차라리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면 수긍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행위가 내 삶을 구성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로 내 삶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물론 이때 나의 행위란 온전히 나의 계획과 의지에 의한 작용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미 다른 것들과의 상호작용이 포함된 결과로서의 행위입니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디선가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요. 제 마음의 소리인가 봐요. ‘정말 아는 게 병이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는구나. 쯧쯧.’)
주인공에 이입하는 공부
채운샘이 참여하지 않는 강독 시간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궁금해하는 채운샘을 위해 초큼 자세하게 후기를 쓰다 보니 넘 길어졌네요. 게다가 생품 이야기는 제 독백이 절반입니다. 독백을 했다고 해서 독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2교시 채운샘 강의 내용은 민호샘 몫으로 남겨놓는 배려와 호기를 부려봅니다.
그래도 그냥 건너뛰기는 아쉽네요. 고대 인도 문명과 부처님의 행적을 다룬 강의 중 인상 깊었던 육사외도(六師外道)에 대해 몇 마디 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 보겠습니다. 불교 공부 좀 했다하면 낯설지 않은 단어죠. 저는 ‘육사외도’하면 주로 ‘부처님의 반대편, 나쁜 놈들, 삿된, 이단’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들은 정통에 대해 삿된 이단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불교 이외의 도를 의미하는 외도라고 합니다. 이들은 당시 인도의 주류였던 우파니샤드 관념론에 대항하는 자유사상가들이었습니다. 저는 왜 이들을 나쁜 놈들, 이단이라는 이미지로 떠올렸을까요? 부처님이라는 주인공, 주류에 이입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공부할 때는 그것을 중심에 놓고 보게 됩니다. 때문에 다른 것들을 주변화하거나 그것과의 관계로만 위치 짓게 되는 우를 범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어떤 사상이나 문화가 당대에 영향력이 있었다면 그 당시의 맥락 속에서 이유를 파악해야 하는데, 오로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불교를 선(善)의 자리에 놓고 그것과의 관계에 따라 편을 갈라 선과 악이라 이름하는 공부는 풍요롭고 입체적인 조망이 가능한 공부를 평면적인 공부로 제약하는 것 같습니다.
고객님 만족하십니까?
진지한 글은 재미없다며 재미있는 글을 주문하신 고객님(들)! 만족도 평가는 댓글로 하겠습니다. 댓글의 질적 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시비 없이 한눈에 파악 가능한 양적 평가로만 가름하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 고객님의 적극적인 참여를 먹고 자라는 명랑 후기 제작 담당
머선 129? 이렇게 빠른 후기를 내가 본적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재미보다 놀라서 눈이 번쩍 뜨였네요.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요점을 콕콕 짚어주신 알찬 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혜윤
2023-02-23 09:54
올~ 우리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겨주는 진정성 있는 가볍디 가벼운 후기 감솨^^ 흠이라면 쬐금 길다?ㅋ 근디 이렇게 빠른 후기라니..혹시 밤 새워 쓰신 건 아니쥬~
저는 어제 강독 후 세미나 방식이 텍스트에 좀 더 몰입하게 만드는 거 같아 좋았습니다
샘들 올 한 해도 함께 잘 채워나가 보아요^^
경아
2023-02-23 10:46
진짜루 새벽에 후기를 올린 호정샘! 우리 호정샘이 달라졌어요~ 호리호리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했지만 이리도 고객의 요구에 쉽게 넘어오시다니~ 만족도 별5개임다^^
은이
2023-02-23 17:01
이다지도 재미있고 유쾌한 후기를 읽으며,
규문 신참인 저는 왠지 마냥 즐거이 웃지 못하고
남몰래 내 후기 순서를 다시 확인했다는.... ㅎㅎ
난 어케 써야 좋을까 하면서요^^
약간 얼떨떨하게 첫 날을 보낸거 같은데
샘의 후기를 읽고 나니. 앞으로의 공부가 더 재밌어 질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듭니다.
감사해요~~
민호
2023-02-24 15:57
우왕~~
호리호리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호정샘의 호랑호랑하지 않은 호기넘치는 후기! 영양 만점이네요!
내용은 잘 기억 안 나지만, 기분은 좋네요 ㅎㅎ
감사해요!!
지나가다
2023-02-28 15:21
치약? 불소? 이렇게 즉자적인 비유?!ㅋㅋㅋㅋ 양을 좋아하신다기에 지나가다 만족도 조사에 한 표 던져요. 그리고 이래저래 '축복'에 대한생각도 들고가요.
답글 다신 은이샘~~ 샘 후기도 꼭 챙겨볼께요 ㅋㅋ
머선 129? 이렇게 빠른 후기를 내가 본적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재미보다 놀라서 눈이 번쩍 뜨였네요.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요점을 콕콕 짚어주신 알찬 후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우리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겨주는 진정성 있는 가볍디 가벼운 후기 감솨^^ 흠이라면 쬐금 길다?ㅋ 근디 이렇게 빠른 후기라니..혹시 밤 새워 쓰신 건 아니쥬~
저는 어제 강독 후 세미나 방식이 텍스트에 좀 더 몰입하게 만드는 거 같아 좋았습니다
샘들 올 한 해도 함께 잘 채워나가 보아요^^
진짜루 새벽에 후기를 올린 호정샘! 우리 호정샘이 달라졌어요~ 호리호리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다했지만 이리도 고객의 요구에 쉽게 넘어오시다니~ 만족도 별5개임다^^
이다지도 재미있고 유쾌한 후기를 읽으며,
규문 신참인 저는 왠지 마냥 즐거이 웃지 못하고
남몰래 내 후기 순서를 다시 확인했다는.... ㅎㅎ
난 어케 써야 좋을까 하면서요^^
약간 얼떨떨하게 첫 날을 보낸거 같은데
샘의 후기를 읽고 나니. 앞으로의 공부가 더 재밌어 질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듭니다.
감사해요~~
우왕~~
호리호리하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호정샘의 호랑호랑하지 않은 호기넘치는 후기! 영양 만점이네요!
내용은 잘 기억 안 나지만, 기분은 좋네요 ㅎㅎ
감사해요!!
치약? 불소? 이렇게 즉자적인 비유?!ㅋㅋㅋㅋ 양을 좋아하신다기에 지나가다 만족도 조사에 한 표 던져요. 그리고 이래저래 '축복'에 대한생각도 들고가요.
답글 다신 은이샘~~ 샘 후기도 꼭 챙겨볼께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