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물질, 의식, 시간의 영역까지, 불교의 대확장이 예정되어 있는 ‘불교 플러스’가 개강했습니다! 1학기는 불교의 출현과 전파를 배워갈 예정인데요. 부처님의 생애와 불교의 전파를 본격적으로 공부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설레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1교시 강독 텍스트 <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불소행찬)>은 생각보다 술술 읽히고 흥미진진했습니다. 문학은 역시 다른가 봅니다. 역시 수사가 많고 과장이 더해져야 읽는 맛이 나는 듯합니다. 첫 주의 범위는 부처님이 룸비니에서 탄생하고, 궁궐에서 생활하고, 세속 삶에 염환을 품고, 오욕에서 벗어나고, 성 밖으로 출가하는 장면까지였는데요. 부처님의 아버지 정반(수도다나)왕의 드라마틱한 내면 묘사와 부처님의 놀라운 확장적 사유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희는 돌아가면서 감상을 나눴는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텍스트 구석구석이 질문되고 대답되면서 이야기가 정말 풍성해졌던 것 같습니다. 강독 현장의 뜨거움은 호정샘의 후기에서 확인해주세요!
홀수 주는 강의가 있는 주입니다. 1학기 첫 번째 강의의 제목은 ‘고대 인도와 고따마 붓다’였습니다. 모든 사상이 그렇듯, 불교의 사유 또한 어느 날 불쑥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맑스의 말대로 생산 수단의 변화는 생산 관계를 바꾸고, 그러한 하부 구조의 변화에 의해 상부 구조, 즉 사유의 체계도 변해가지요.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불교나 부처님을 신격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교가 출현한 지리적, 경제적, 종교적, 사상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따마 부처님은 기원전 566년경에 태어났습니다. 이때 인도의 상황은 어떠했는고하면, 경제적으로는 무역 중심의 상공업이 성장해 곳곳에 부가 유동하기 시작했고, 사상적으로는 전통적 베다문화에 반기를 든 ‘자유사상가들’(육사외도)이 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여러 신생 공국들이 부상한 ‘십육대국 시대’(마하자나파다스)였습니다. 대표적인 4대 강국으로 마가다, 코살라, 밧차, 브리짓스가 있습니다. 불경에 부처님이 수행하고 설법하신 지명들이 이 당시의 국가들입니다. 조금 더 뒤로 가보자면 거기에는 약 천년에 걸쳐 이어져온 ‘베다 시대’가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평야를 중심으로 한 농경 체제였고 보수적인 지배관계, 즉 카스트 제도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베다 사상’ 즉 제사 문화였지요. 그러니까 불교는 경제적 구조가 바뀌고, 계급 구조가 바뀌고, 사상의 구조 바뀌고 있는 시기에 싹든 사유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상의 운동이 인도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기원전 6세기 전후 몇 세기 동안(‘축의 시대’) 여러 문명에서 영적인 도약이 일어났음에 주목합니다. 자비, 사랑, 인(仁), 비폭력을 가르치는 인류의 스승들이 등장했죠. 이 변화는 위에서처럼 경제 구조의 변화와 연관되기도 하고, 전쟁과 이주로 인해 사상의 지형이 이동하는 사건과도 관련됩니다. 가령 그리스의 경우, 이오니아 지역의 자연철학자들의 이주와 더불어 새로운 사상이 시작됩니다. 그 전에는 씨족과 혈연에 기반한 정착민들의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제사문화였습니다. 서구가 자랑스러워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는 민중(Demos)에 의한 지배(kratia)이지만, 이때의 데모스는 바로 특정 씨족 집안의 남성들을 가리켰습니다. 이는 무지배가 아니라 단지 지배자의 폭을 조금 넓힌 지배였기에 그리스는 위계와 노예를 끊임없이 필요로 했죠. 그러한 위계와 권위를 근거지어 주는 사유는 신학적 사고였습니다. 하지만 이오니아는 상공업과 무역 중심의 세계였고, 이오니아인들은 ‘이소노미아(Isonomia)’, 즉 무지배를 지향했죠. 그들은 주로 유랑하는 자유민들이었고, 세계를 설명하는 데 신학적 사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자연철학이 발달했습니다. 이들이 페르시아에 지배를 피해 그리스로 오면서, 세계에 대한 기존의 초월적 설명체계에 반대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그리스 철학의 계보가 시작됩니다.
고대 사회에 지속되어온 신학적 전통은 현상들의 원인을 현상 바깥의 초자연적인 힘에서 찾습니다. 즉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리는 세계 바깥에 있는 것이죠. 그것이 초월자인 신입니다. 새로운 사상은 이런 단절적 체계에 반대합니다. 일어나는 일의 원인은 일어나는 일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즉 모든 물질적 운동, 기원과 종말, 신비한 현상들, 인간 마음의 체험들 모두가 자연(physis) 안에서 자연에 의해 일어납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확장시키면 천지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고(공자님의 지천명知天命) 만물의 상호의존적 흐름을 사유할 수 있습니다(부처님의 연기緣起). 이는 우리가 어떤 것도 두려워하거나 ‘닥치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줍니다. 신학적 환상에서 자연학적 이해로. 축의 시대에 일어난 일은, 고대사회에 지속되어온 신학적 전통에 대한 인간 지성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운샘은 이런 운동이 중세에도, 근대에도,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계를 틀지워놓는 무언가를 바깥에 있다고 보는 신학적 환상은 진보, 역사, 인류, 자본 등의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금도 소중한 이유는 이 때문인 듯합니다.
이후 저희는 부처님의 간략한 일대기를 배웠는데요. 부처님의 중도 사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부처님은 초월론에 기대는 베다 전통과도 달랐지만 당시에 유행하던 자유사상가들의 물질론적 입장과도 달랐습니다. 니간타(자이나교)를 제외한 자유사상가들은, 베다 문화의 억압적이고 숙명주의적인 카스트와 싸워야 했기에 업과나 인과를 부정했습니다. 윤회가 없거나 얼마간 윤회한 후에 다른 자연물들처럼 흩어진다고 여겼지요. 이 역시 이번 한 생을 잘 살다가 가면 된다는 나름의 해방적 윤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생노병사의 고라는 문제에 대한 철저한 대응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부처님은 이 극단에도 저 극단에도 빠지지 않는 중도적 사상을 취하셨죠. 이러한 중도는 불교가 관계하는 계층성에서도 나타납니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보면 부호들의 보시를 많이 받으시고 그들을 위해 설법을 하시기도 합니다. 예수와 달리 부처님은 ‘가난한 자의 편’이 아니셨죠. 물론 부자의 편도 아니셨습니다. 그저 해탈의 길을 가는 자의 편이셨습니다. 이러한 경계 없음은 정의로움이 언제나 가난과 연관된다는 편견을 깹니다. 불교는 욕망을 억압하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고행은 올바른 수행법이 아닙니다. 단지 욕망이 고이지 않고 흘러가게, 집착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관견이죠.
다음 번 강의(3/8)는 불교가 중국에 전파되는 역사를 다룬다고 합니다. 기대되네요!
다음 주 공지입니다.
1) 강독 텍스트 <불소행찬> 3권 11장(100~203쪽)까지 읽고 함께 나눌 인상 깊은 구절을 뽑아옵니다.
2)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5장(~139쪽)까지 읽고 질문과 이야깃거리를 뽑아옵니다. 발제는 김호정 선생님과 정은이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3) 간식도 김호정 선생님과 정은이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4) 두 번째 시간 후기는 김경아 선생님께서 써주시겠습니다.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어느 극단에도 빠지지 않는 중도. 이것과 저것의 중간은 아닐 텐데. 내 마음 자리가 극단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