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 1학기 2주차 후기 (20230301)
같이 나눈 이야기들은 민호샘이 이미 공지에 올리셔서 저는 세미나 후 제게 남은 여운을 정리해봤습니다.
1.『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 불소행찬』 강독
제2권 6장 차익환품, 7장 입고행림품, 8장 합궁우비품, 9장 추구태자품, 10장 병사왕예태자품까지 같이 강독하고 각자 인상적인 구절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왕자 싯다르타가 마부 차익과 함께 출가를 감행한 후 빈비사라 왕과 인연을 맺는 시점까지입니다. 마부도, 아버지인 정반왕도, 아버지가 보낸 신하들도, 싯다르타의 아우라에 반한 빈비사라왕까지도 싯다르타의 출가를 만류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저희 부모님들, 선생님들께서 했던 말들이고 지금 우리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 지금 출가하는가? 왕 노릇도 좀 하고 자식 도리도 하고 아이도 좀 더 키우고 젊었을 때 오욕락을 즐기다 나이 들어 기운 빠져서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지면 그때 출가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에 대해 싯다르타는 죽음이 당장 닥칠지 모른데 내일이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러니 출가는 미루고 말고 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답합니다. 싯다르타는 본인의 생각을 밝힐 뿐 무언가를 권하거나 당신들은 왜 그렇게 사냐고 묻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편, 상식, 객관 이런 걸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걸 정의, 진리, 선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에게 자식에게 친구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런 ‘도덕’에는 구체성이 전혀 없거든요. 누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맥락과 배치랑은 상관없이 아주 추상적이고 그야말로 객관적인 잣대로 작동하니까요. 나한테 옳고 좋으면 누구에게나 옳고 좋을 것이라는 도덕의 개념은 참 순진하다고 할까요. 그러니 배움이 미천한 마부도, 최고의 교육을 받았을 정반왕이나 빈비사라왕도, 싯다르타의 두 스승들도 출가한 싯다르타에게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죠. ‘인간적으로 살아야지~ 도덕적으로 살아야지~ 상식적으로 살아야지~’
출가한 싯다르타를 하트 뿅뿅으로 바라보는 우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런 굳은 결심과 노병사를 넘고자하는 통찰로 부귀영화를 버리고 그런 출가를 하시다니!’ 역시 부처님은 위대하시고 탁월하심! 범부인 나는 그 경지를 이해하기 힘들 정도라고 부처님을 나와 싹 분리합니다. ‘위대하시고 탁월하시다’라는 느낌과 말이 바로 부처님과 나 자신을 갈라치는 욕망이자 게으름과 주저함의 강력한 핑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억겁의 보살행이 있었으니까, 누려볼 거 다 누려보았으니 미련 없이 출가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부처님의 생애를 스페셜하게 우러러 보며 그리 스페셜하지 않은 나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방어 합니다. 부지불식간 스스로에게 또 속아 넘어갑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말이죠^^
싯다르타의 출가를 만류했던 이들은 부모에 대한 효, 가족에 대한 사랑, 백성들에 대한 연민, 명예와 부, 권력 등을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들은 오욕락이 좋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을 마치 싯다르타를 ‘위하는’ 말들로 스스로도 착각한 거죠. 부처님은 참 위대하고 탁월하시다라고 말하는 우리도 어쩌면 부처님을 이상화하면서 실은 아직 세상 꿀 빨고 사는 게 더 좋다는 의도치 않은 솔직한(?) 고백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삶으로 부처님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내 삶과 분리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속 뻔히 비추며 만류하는 상대들의 마음을 읽은 싯다르타가 그저 본인 마음만 곡진하게 표현하고 떠납니다. 이런면에서 보자면, 부처님의 출가를 도덕이나 상식들과의 싸움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들이 그렇게 좋다고 말하는 오욕락이 정말 영원한 즐거움인지, 부모의 곁에서 뜻대로 사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인지, 자식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이 자식을 위하는 것인지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골백번도 더 물었을 것이고 이미 그게 아니라는 걸 아셨으니 그 새벽에 천지의 도움을 받아 출가하셨을 겁니다.
2.『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세미나
달라이 라마는 “똑같은 것도 상이 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영적인 수련을 통해서 정화된 통찰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 보는 상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 보는 보통의 상입니다. 드물게 발생하는 특별한 경우지만 둘 다 진실이고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두 개의 관점이 있는 것이지요. 하나는 일반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입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은 역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사가들은 그런 관점을 기록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불자들의 상상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것들도 사실입니다." (17쪽)
달라이 라마께서 기자 출신 서양인 저자와 대화형식으로 티베트 역사를 들려줍니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단군신화 같은 티베트의 신화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신화에 첸리시(관세음보살)가 등장합니다. 첸리시는 지금도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 녹아들어있기 때문에 신화 자체가 그들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아주 감동적으로 읽으셨고 어떤 분은 깨알 같은 정보들에 주목하며 읽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신문대담 보듯 주고받는 대화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집중해서 보느라 감동과 정보는 놓친듯합니다.
달라이 라마께서 강조한 사물과 역사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이 책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티베트 제국을 설립한 송센 감포는 지금도 티베트의 위대한 황제로 추앙받습니다. 그런데 딱 생각해봐도 제국을 세우고 중국의 공주를 후궁으로 요청할 정도의 파워를 가졌다면 평화로운 방식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을 겁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전쟁과 생명을 죽이는 일에 수없이 관여했을 송센 감포를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저자가 물었을 때 달라이 라마께서는 두 가지 관점으로 봐야한다고 답하십니다. 보여지는 대로는 살생이었을지 몰라도 보여지지 않은 관점에서는 티베트 전역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한 ‘첸리시의 원대한 계획’의 일부였다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송센 감포의 ‘통일을 위한 싸움’과 ‘국정을 위한 노력은 모두 인간 수준의 것이었다고 합니다.(호정샘 발제문) 이건 티베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만약 그 타격을 받은 나라가 중국이 아니라 만약 우리 나라였으면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내가 그리 애국자는 아니지만 분명 다르게 다가왔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어찌하여 첸리시는 티베트만 수호하고 중국을 수호하지 않았는지? 첸리시가 수호한 것은 불법이지 티베트라는 나라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달라이 라마께서 티베트의 모든 것이 옳고 티베트는 희생자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티베트가 실수한 점, 부족한 것들을 매우 쿨 하게, 치우치지 않고 ‘중도’로 바라보는 방식이 신선하게는 다가왔습니다. 오히려 저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달라이 라마의 태도에 신뢰가 더 가면서도 여전히 보이는 대로의 관점으로 확 쏠립니다. 달라이 라마 말씀대로 내가 보지 못한다고 그게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인정할 수도 없으니 자꾸 의문이 들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힘든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나왔던 환생, 탄트라, 툴쿠 제도 등에 대해서도 결국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여전히 혼란스럽기는 합니다.
윤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년 구사론에서 윤회에 대해 논리적으로 공부를 하기는 했는데 이걸 티베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연결하려니 숙고가 필요한 듯합니다. 구사론에서는 제온이 상속하는 가운데 심상속 되며 새로 태어난 나는 1초전의 나를 직접인으로 하므로 결국 스님께서는 업과 번뇌, 에너지, 경향성처럼 애매모호한 것들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윤회의 주체’라고 딱 잘라 말씀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읽을 내용들에서도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오리라 기대하며 뭐가 헷갈리는지, 왜 나는 그런 것들이 궁금한지 그 지점을 확인하면서 읽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우 사사로운 후기였습니다~
부처님은 확고한 자신의 생각만 밝힐 뿐 다른 이들의 삶에 관여하거나 어떤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가오네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과 관습에 대해 괴로워하면서도 은연중에 남들에게 잣대로 들이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똑바로 봐야겠습니다. 정신을 바짝들게 하는 후기 감사합니다. 결코 사사롭지 않습니다.
ㅎㅎㅎ 후기 쓰는 자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한 후기네요. 이런 사사로운 후기 제 취향입니다.(내가 안 쓰는 후기는 언제나 환영) 사사로움을 더 밀고 나가길. 티베트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달라이라마의 두 관점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보려고 합니다.
그나저나 위에 댓글 단 촘촘미영을 보니 나도 사자성어를 쓰고싶다는. 땡땡호정이라고 할까?
완전 쏙쏙 들어오는 꿀잼 후기네요 ㅎㅎ
출가를 만류한 사람들도, 출가를 하트 뿅뿅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인간적, 도덕적, 상시적' 삶을 정상으로 두는 점에서는 똑같다는 말씀이 아주 딱 와닿네요!
부처님이 자신의 경험을 보편타당성의 논리로 중생에게 강요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그걸 또 진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당위성에 옭아매고 있는 셈이네요
샘의 포인트를 따라 읽으며 제가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을 음미하게되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