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간(3.15) 공지부터 적을게요!
1. <불소행찬> 22장(~381쪽)까지 읽고 질문을 올립니다.
*차담 시간에 강독 세미나 시간에 논의가 흩어지거나 쏠리지 않게 질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텍스트에 조금 더 밀도 있게 다뤄보면 좋을 구절들이 많으므로, 각자의 질문을 뽑아서 화요일 저녁 6시까지 불교숙제방(링크)에 댓글로 달아주세요! 그러면 강독 튜터님께서 질문지를 취합해주셔서 세미나 진행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전 토론 시간을 기존 12시까지에서 12시30분까지로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2.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8장(~235쪽)까지 읽고 질문과 이야깃거리를 생각해 옵니다. 발제는 최윤순 선생님, 정혜윤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3. 간식은 정혜윤 선생님과 김자영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4. 후기는 이윤지 선생님께서 써주시겠습니다.
부처님은 왜 아라람을 떠났을까?
이번 주 <불소행찬>의 범위에서는 부처님의 생애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행과 깨달음, 그리고 초전법륜에 관한 내용이 나왔습니다. 부처님은 스승을 구하고 스승을 떠나고, 6년간 최고의 고해을 하시고 다시 고행을 멈추고, 스스로 깨달으셔서 법을 설하십니다.
부처님은 아라람(알라라 칼라마)를 찾아가 생로병사에 대한 절실한 질문을 던지고 해탈에 관한 기나긴 답을 듣지만, 어째서인지 그를 떠나게 됩니다. 왜 떠났을까요? 아라람의 가르침은 무엇이 부족했던 것인가, 이것이 저희 세미나의 첫 번째 물음이었습니다. 아라람이 원인이라고 말했던 성품(아마도 오온?)이나 전변(나, 지각, 더불어 나타남, 경계를 따름, 근본)(12-11)이라는 용어가 낯설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아라람은 ‘나’란 성품과 오온으로 이루어지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 청정하게 되는 것이 해탈이라고 가르칩니다.
“나에게서 벗어나고 또 나의 것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없음을 관찰하게 되면 이것을 소유함이 없는 곳이라 하노라. 문사초의 껍질과 줄기 여의고 들새가 새장을 벗어난 것처럼 모든 경계를 멀리 벗어나니 해탈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노라”(12-32,33)
아라람이 말하는 해탈이 작년 구사론에서 배운 ‘무소유처’ 같았습니다. 무소유처는 무색계의 제3천으로 아주 위태로운 곳입니다. 약 1년 전에 효암스님께 들었던 선정의 단계들(3계9지)을 더듬어 보게 되네요(^^). 부처님이 가르치신 불교의 방식이 아닌 외도의 방법으로도 선정의 높은 단계에까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욕계를 벗어날 뿐 아니라 색계를 넘어 무려 무색계까지도 가능합니다. 첫 번째 선정을 통해 욕계를 벗어나면 초선, 즉 색계의 첫 번째 단계(초정려)에 듭니다. 우리가 명상에서 얼핏 느끼는 기쁘고 즐거운 기분이 들죠. 이후로 쭉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아라람이 말했던 광음천(제2선정-지고한 기쁨), 변정천(제3선정-편안함), 광과천(제4선정-덤덤함)까지 나아간 후에 무색계로 갑니다. 마음과 공간 사이의 경계가 없어져버리는 공무변처가 나오고, 그 후에는 마음의 무한한 확장을 체득하는 식무변처가 나옵니다. 그 다음은 그 무한함도 버려 마음이 어디에도 소속·소유되지 않음을 체득하는 무소유처입니다. 아마도 아라람은 이것이 해탈이라고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무소유처가 왜 문제이며, 부처님은 왜 그것이 해탈이 아니라고 말하시는 걸까요?
“성품과 전변으로 원인을 아는 것을 해탈이라고 설하여 말하지만 내가 그 태어나는 법을 관찰하여 보니 그 또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법입니다. 선인은 ‘자신이 청정하게 되는 것이 곧 이것이 진정한 해탈이다’라고 말한 것도 만일 인연이 모여져 만나게 되면 곧 응당 다시 묶여버리고 말 것입니다.”(12-36,36)
정말정말 어렵지만, 부처님은 ‘나’라는 것이 없음을 철저히 깨우치는 것만으로는 해탈에 이를 수 없음을 강조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핵심은 ‘없음’을 이해하는 것 뿐 아니라 ‘있음’이 어떻게 생겨나고 있는지, 어떤 인연 관계들 속에서 다시 묶이고 엮이며 나아가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원인을 관찰해 결과를 무효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그 결과가 또 다시 원인이 되어 다른 결과가 되는 연기의 사슬을 통찰하는 것이죠. ‘나’의 없음을 강조한 아라람도, “나가 있다고 헤아렸다”(12-44)는 울타도 부처님에게는 해탈을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고행과 참선을 통과한 부처님은 12연기법을 사유하게 됩니다.
“어떠한 인연 때문에 태어나는가, 관찰하여 보니 모든 있음의 업을 따름을 보았다. 천안으로 있음의 업을 관찰하여 보니 자재천에 생긴 것도 아니고 본래의 성품도 아니며 나도 아니며 또한 다시 그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님이라. (...) 있음의 업은 취함에서 생긴 것이니 마치 불이 섶나무를 만난 것과 같음이라.”(14-23, 24)
전생에 대한 관찰, 연기에 대한 관찰, 있음을 낳는 업에 대한 관찰은 부처님 개인의 깨달음 뿐 아니라 만물에 대한 자비심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태어나고 죽음을 받아온 일체 중생의 무리들은 일찍이 모두 나의 친족이었음을 알았으니 큰 자비심이 일어났다.(14-3) 저희는 무량한 자비심의 근원으로서의 이 논리적이고 지적인 직관, 즉 연기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자비심은 의지의 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물학이 숭상하는 보존법칙이나 도덕적 당위와도 다릅니다. 깨달은 자인 부처님 자신조차 한때 짐승이었고, 여성이었고, 빈자였고, 병자였고, 괴로움에 시달리던 모든 중생이었음을 선명하게 보고 있는 자에게 ‘타자’란 어떻게 생각될까. 최근 <위태로운 삶>이나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으며 어떻게 저 자신을 지배하는 정상성의 코드들(남성주의, 종차별주의, 비장애중심주의)을 좀 넘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부처님이 나아가셨던 이러한 연기적 직관이 중요한 힌트이자 방법론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왕족이자 남성이고 지배 민족이었던 부처님은 어떻게 모든 인간 군상 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 종의 고통에 공명하셨을까...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경계를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다층화하는 통찰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수억 겁의 세월동안 수많은 몸들을 경유해온 존재입니다. 단지 그것을 더 관찰하지 않을 뿐이죠. 이렇게 보면 자비심의 광산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이기도 한 듯합니다. 관건은 땅을 파내려갈 좋은 도구를 마련하는 일이겠네요.
다르마의 동진!
1학기 두 번째 강의의 제목은 ‘다르마의 동진 : 당 이전의 중국 불교’였습니다. 마케도니아가 몰락하고 로마가 팽창해가던 기원전 3세기, 인도에서는 마우리아왕조의 아소카 왕에 불법이 퍼져나갑니다. 미얀마, 스리랑카, 그리스, 이집트까지 닿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마침내 중국에도 도착합니다. 당시 중국은 한나라 말기였고 정치이념으로서 유학이, 종교적 사상으로서는 노장에서 비롯된 도교가 꽉 잡고 있었습니다. 채운샘께서는 중국에 불교가 유입된 과정을 로마에서 기독교가 퍼져간 과정과 비교하며 설명해주셨습니다. 기독교와 불교 모두 쇠해가는 제국을 파고들었습니다. 종교란 바로 이런 혼돈의 시기에 힘을 찾는 것인가, 철학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한나라 말기에는 불교 사상에 대한 기록들이 발견됩니다. 모자가 ‘리’에 대해 의혹을 논한다는 <모자이혹론>에서의 질문이 재미있었는데요, 불타의 가르침이 그토록 고귀하다면 왜 요순과 주공, 공자는 그것을 닦지 않았는지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그 위인들이 아마도 불교를 알았겠지만 기록이 안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네요. 노자를 부처님이라고 보는 ‘화호설’도 재미있었습니다. 한나라 시기에 각광받은 불교교리는 노장에는 없는 영혼불멸, 윤회, 업 등의 개념이었다고 합니다.
불교가 확 파고든 시기는 한나라가 망한 220년부터 약 400년 간 이어진 대혼동기인 위진남북조 시대입니다. 이때부터 노장과 불교가 서로 뒤섞이며 엉키는 ‘습합’이 시작되지요. 어떻게 이런 습합이 가능했는가하면, 노장 사상에는 유학과 달리 ‘무’와 ‘허’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유’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철학에서 불교의 진수인 공 사상이 자리잡지 못한 것과 대비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장 사상은 현세적 공포를 상쇄해주기에는 너무나 태평했습니다. 위진남북조시대는 말 그대로 광기의 시대였다고 합니다. 지식인들은 감히 발언할 수 없었기에 정치담론은 전무했고, 문학과 예술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죽림칠현’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도피였던 것이죠. 당시에 유행한 산수화 전통에는 인간 없는 자연만이 이상처럼 남아있는데, 그것으로 과연 어떤 시대였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채운샘께서는 한편 지금 우리시대는 어떠한가 하는 질문도 던져주셨습니다.
이렇게 불교는 중국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당이 도래하고서는 활짝 꽃피게 되지요. 이제부터는 저희가 공부했던 티벳 불교의 역사와도 연결됩니다. 다음 강의가 기대되네요!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뵙겠습니다!!
우와. 성민호. 일타강사 등극. 궁금증 해소됐네요.
오, 민호샘! 수희찬탄합니다. 저희들이 토론한 것 보다 더 나아가 정리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불교샘들 샘께서 쪼지않아도 더 알차고 성실하게 하려는 자세 참 좋습니다. 따라가기 버거울지라도 같이 가보겠습니다~
토론 시간에는 가닥 못 잡고 같이들 우르르 우르르 몰려 다녔던 느낌인데 이렇게 글로 보니 뭘 헤맸는지 이제야 보이네요 ~ 감사합니다^^
훌륭합니다. 민호샘! 얼마나 공부하면 민호샘의 30프로만이라도 표현할 수가 있을까?
내 지금의 수준과 처지가 이러니 천천히 가렵니다. 도반님들 찬탄하고 보고 배우면서
오 일타강사 빰치는 정리의 귀재~
덕분에 복습 잘 하고 갑니당^^
평소에도 민호샘에게 많이 배우는데, 또이렇게 정리해주시니 더 배웁니다. 따라가기 좀 벅차긴 하지만 너무 좋은 정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