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불교+철학 4주차 후기
휴~~어제 정말 뜨거웠죠? 저만 그랬나요ㅎㅎ
간식당번과 발제순서를 맡았는데 때마침 반갑게도 윤지샘이 후기당번까지 모조리 몰빵해주셔서 한 방에 한 학기를 이렇게 끝내는 게 은근 좋더라구요. 근데 간식도 발제도 뭐 별 일은 아니었는데 후기가 참내^^;;작년까진 강의 요약하는 것만으로도 후기 채우기 빠듯해서 나름 버겁긴 해도 분량 걱정은 안했는데, 오늘 컴 앞에 앉았는데 헛웃음이 나오더라구요. 분명 탭 가져가서 뭔가 쓰긴 했는데 메모처럼 대충 써서 뭔 말인지 모르겠고, 사람들이 뭐라 얘기했는지도 기억이 안나더라구요. 후기담당이라 메모 좀 할라치면 입은 또 왜 이리 근질거리는지. 남들 얘기 지나가기도 전에 내가 할 얘기 준비만 하다 결국 남들 얘긴 듣지 못하고 놓쳐버리고. 어젠 제가 발제라서 평소보다 머릿속에 하고 싶은 얘기가 그득하긴 했습니다. 예상한 후기가 아니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라며...이제까지 두 권의 책을 읽은 소감 및 어제 세미나에서의 분위기? 느낌?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린 느낌 아니까~
1. 오전시간-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는 생동감 있고 극적인 요소도 있어서 재미있게 편히 읽고 있습니다. 저는 부처님 전기는 두 권 읽어봤는데 요렇게 극 중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인물들 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솔솔하더라구요. 매주 돌아가며 분량을 읽는데 보통 1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어제는 1시간 10분정도 소요되었더랬죠. 세미나 시간이 넉넉해서 좋긴 하더라구요. 지난주 티타임 때 각자의 질문거리를 화욜 6시까지 숙제방에 올리기로 했는데 이번주는 6명이 올려주셨네요.
먼저 경아샘이 급고독 장자에게 부처님께서 자재신, 본래의 성품, 시간, 나 등이 각각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음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경아샘이 이런 얘기 했던 게 인상 깊었습니다. 우린 보통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잖아요. 그것도 시간을 절대적 고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다름 아닌 거죠. 시간을 단선적, 보편적 시각으로 보면 시간에 의지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게 되는 거죠. 스스로 합리하기 딱 좋은 의지처가 시간인거죠.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은이샘은 정반왕과 석가족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고 돌아오신 부처님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범부들의 이중적인 마음에 대해 말씀하셨더랬죠. 부처님을 뵙고 다들 환희에 차 있었지만 그래도 전륜성왕감을 놓친 것이 아까웠던 겁니다. 저는 범부들은 그렇다 쳐도 정반왕은 인성이 남다르다고 여겼거든요. 돌아온 아들에 대한 마냥 좋지만은 않은 마음, 집착에 끄달리는 마음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거 같았어요. 민호샘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느냐에 초점을 맞추면 그 사람을 보다 명확히 볼 수 있을 거란 얘기를 했습니다. 옳습니다요.
민호샘이 “업만이 착한 벗이다” 란 구절에 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혼란스럽다고 했습니다. 업의 갈래가 얼마나 많은지 아시죠? 작년에 배운 업에 대한 얘기가 너무 많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아주 단순하게 업은 ‘행위이다’ 라고 보통 우리가 얘기하곤 하죠. 그럼 업은 에너지 또는 기? 습관적으로 하는 것들? 업은 이리저리 구분하고 쪼개어 분리하곤 하는데 쪼개다 보면 쪼개는 게 무의미하죠. 서로 이어지고 업이 과보로 과보가 업으로 업이 업으로 이어지니 말이죠. 여튼 저는 여러분들의 고견을 종합해서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업은 업이고, 우리는 수없이 많은 업을 지었고, 업을 짓고, 지을 거겠죠. 근데 그 업이 모두 과보로 현실화되는 건 아닙니다. 업이 현실화, 활성화되려면 우리가 그 업을 습관처럼 반복해서 업을 두텁게 해야 드러나는 겁니다. 어쩌면 드러나지 않은 업이 훨씬 많을 겁니다. 업이야말로 진짜 인생 벗인 거죠. 뭐 착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업은 숙명적이지도 고정적이지도 않습니다. 부지런히 노력해서 닦을 건 닦아야 좋은 과보든 나쁜 과보로든 받는 겁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생각으로 업은 짓겠지만 망상으로 지은 업이 뭐 그리 건강하겠습니까. 미뤄두지 않고 부지런히 이렇게 자판이라도 두들기니 한결 낫긴 합니다.
2. 오후시간-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벳이야기 6,7,8장
문제의 몽골이 등장했습니다. 티베트와 이리 인연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하나 아닌 하나...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까요. 먼저 몽골의 제국건설기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가 많았죠. 민호샘인가? 몽골의 잔인한 정복여정에서 티베트 불교의 소문을 듣고 살상을 멈추었다는 에피소드에 대해 어찌 그런 극적인 반전이 가능할 수 있냐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합니다. 근데 유목문화의 특수성을 먼저 이해해야겠더라구요. 무엇보다 저는 인간이란 종자는 보다 ‘고차원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분명 있다고 봅니다. 지적 갈망? 허세일수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때려죽이다 보면 이게 뭐지?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지 않을까요? 물론 끝까지 모르쇠 인간도 있겠죠. 주위를 둘러보니 중국 사상은 유목민인 자기들과는 결이 다를 거 같고, 티베트는 같은 유목민족이기도 하고 티베트 전체가 종교에 심취해 있는 게 신비스러워 보이고 부러워 보일 것도 같습니다. 몽골과 티베트의 인연은 서로의 실리를 챙기기 위한 것에서 기인했다고 단순하게 평가절하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문제의 “원대한 계획”이란 부분이 등장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책에서 등장할 것도 같은데 문제는 티베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원대한 계획에서 대해 공감하고 수긍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거죠. 요는 ‘티베트 사람들을 인도하고 보호할 것이라는 서원’이 원대한 계획입니다. 티베트 역사는 이 원대한 계획 하에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구요. 그리고 다 뜻이 있는 거죠. 근데 이렇게 단순한 언어로 옮기다 보면 뭣이? 다 정해진 일? 그리고 자기 민족들만 보호한다고? 역사적 사건 속에서 다소 논쟁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다 원대한 계획이었다고 퉁 치면 저 같이 단순한 사람은 신이 다 계획한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윤지샘은 그렇게 닫힌 시선으로 보면 안 된다고 조곤조곤 말씀해주셔서 급수긍이 갔습니다.(근디 기억이 잘~) 현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인만을 한정하지 않고 불법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 거죠. 전 세계인들에게 자비와 사랑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증명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보니 몽골인들만 극적으로 인식 전환되는 건 아닌가봅니다. 세미나 시간에 뭔가 논리정연하게 설명을 잘 해주시면 저는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극적 인식 전환 가능합니다. 물론 기반이 약해서 또 다시 제자리로 전환이 잘 됩니다.
메모가 너무 빈약하고 기억력이 부족해서 제 소견 몇 자 올리고 마무리하렵니다. 티베트에 대해선 작년에 효암스님을 통한 느낌적 느낌이 다였습니다. 불교도 모르겠는데 굳이 티베트 불교가 궁금하지도 않았고, 티베트를 너무 특별하게만 생각하는 것에 왠지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번 커리가 티베트 관련이 많아 쬐금 반감이 든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잘된 거 같습니다. 뭣도 모르고 싫어하고 비판하는 건 참 불편하더라구요. 책 하나 읽는다고 아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달라이 라마의 시선으로 역사를 따라가는 이 과정이 참 흥미롭습니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역사가 그냥 단편적 사건으로 마무리되지가 않더라구요. 연기적 관점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는 거죠. 달라이 라마도 각각 개별적 존재가 아닌 것도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티베트 불교 환생교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전히 고민하며 읽고 있습니다.
제가 발제한 파트에서 중국이 티베트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로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이 나옵니다. 실은 저는 중국이 왜 이렇게 생떼를 쓰나, 워낙 최강국이 되어버린 중국에 대한 국제적 반감이 깊다보니 저도 모르게 티베트 입장에서 중국을 혐오하는 꼴이었거든요. 근데 이제사 중국이 이래서 우기는 구나 라고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티베트의 입장과 달라이라마의 시선에 더 공감이 많이 가긴 합니다. 어쭙잖지만 저의 시선도 조금씩 정리해 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편협된 시각보다는 보다 통찰적 시각을 갈망할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 공부하고 있구요. 그럼 좀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풍성한 이야기들이 휘발되기 전에 뜨끈뜨끈한 후기 남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덕분에 다시 복기 하고 갑니다^^
빠른 후기. 혜윤샘이 옆에서 재잘대는것 같아요. 전철 타고 같이 집에 가는 길에 들려주는 이야기인줄. ㅎㅎ. 역사를 주로 권력관계에 입각해 지배자의 교체나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풀거나 경제 사회 문화의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것들은 봤어도. 원대한 계획이라니. 한 나라의 역사를 불법 전파와 전승을 축으로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이야기는 처음이라 낯설고 당혹스럽긴 했지만 이야기에 슬슬 스며드는듯.
아, 이다지도 얇은 귀. 후기 재밌게 읽었어요
아. 참참참. '달라이 라마'라는 명칭이 귀에 잘 들어오는 것도 영향력에 한몫 했다는 것도 생각나네요
토론 내용 중 '원대한 계획'의 실현이 티베트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마음을 전 세계로 널리 전파하고 이어가는 연기적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내용이 인상깊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혜윤샘의 모습도 떠오르구요.
그나저나 어느 때보다도 후련한 표정을 보인 이유가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평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 흐르듯 얘기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저도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했네요.
명랑하고 재미있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샘들 후기 보면 매번 탄복합니다.
도반님들 하나같이 다 스승이시네요
어찌하면 차담하면서 얘기하듯 편안하게 후기를 쓰실 수 있답니까? 내용도 쏙쏙 들어오고요 혜윤샘은 매번 봐도 재능이 타고나셨습니다. 수위찬탄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