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간(3.22) 공지부터 나누겠습니다!
- <시로 쓴 부처님의 생애> 5권(382쪽~끝)까지 읽고 화요일(3.21) 저녁 6시까지 불교 숙제방에 질문을 댓글로 올려주세요.
- 강의 주간이지만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9장과 10장을 차차 읽어갑니다.
- 간식은 이기웅 선생님과 제가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 후기는 이윤지 선생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세간(世間)은 어떻게 발생하였는가?
오전 <불소행찬> 강독 세미나의 열기는 후끈했습니다. 병사(빔비사라)왕의 지원을 받으면서 법륜이 본격적으로 구르기 시작하자,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등 큰 제자들이 귀의하고, 급고독(아난따삔띠까) 같은 장자들이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불법이 쭉쭉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잘 왔구나”라고 웃어보이시는 모습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 정반왕과 친척들에게 설법하셨으며, 취한 코끼리와 미녀 암마라녀까지 감화시키십니다.
은이샘께서는 부처님의 설법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짚어주셨는데요. 확실히 근기 높은 제자들에게는 한두 마디만 던져주시만(그래도 확 깨달아버리니까!), 급고독 장자에게는 세상의 원리에 대한 길고도 촘촘한 논증을 펼쳐 보이시고, 아버지로서의 강렬한 애착이 남아있는 정반왕에게는 강력한 신통력을 발휘해 자신이 더 이상 ‘아들’이나 ‘왕자’의 프레임에 가둬지지 않는 존재임을 깨치게 합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대기 설법과 탄력적인 관계방식이 진정한 배려와 자비라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이러한 여러 설법들 중 저희에게 유용한 케이스는 아마도 급고독 장자에게 설한 ‘세간의 발생’에 대한 논증적 가르침일 것입니다(물론 잘 이해했다는 것은 아니구요^^). 우주론에 대한 이 가르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자재천으로 인한 것이라 헤아리지 말고 또한
그릇된 원인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또한 다시
아무런 원인이 없이 이 세간이 생긴 것도 아니니라.”(18-13) 이를 뒤에 이어지는 설명들과 저희의 토론을 이렇게 저렇게 짜깁기를 해보면, 몇 가지 견해로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1)자재천 : 세상을 만든 조물주나 혹은 우주의 운행을 관장하는 주재가 있다는 견해로 신학적 사고에 가깝다.
2)그릇된 원인=‘본래의 성품’ : 모든 것이 나고 돌아가는 물질적 근원인 원질(아르케)을 상정한 견해로 일종의 유물론.
3)그릇된 원인=‘시간에 따라’ : 개체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일체의 사건이 시간 속에 정해져 있다는 견해로 일종의 기계론 혹은 숙명론.
4)아무런 원인 없음=‘내가 만든다’ : 시간의 지속과 상관없이 ‘나’라는 주체의 의지와 행동에 의해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로, 자유의지론 혹은 유아론.
부처님은 ‘만약 그렇다면~’이라는 말씀들로 이 세 견해의 오류를 하나하나 밝혀주십니다. 이 반박의 베이스에는 업과 연기에 대한 사유가 깔려 있는 듯한데, 이 부분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앞으로 더 찬찬히 다져가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매번의 논박에서 근거로 제시된 단골 멘트에 ‘수행의 필요불가결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재천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업도 과보도 없을 텐데 중생들이 “무엇하러 구태여 착함을 닦을 것인가”, 본래의 성품이 있다면 깨달음이고 뭐고 모든 게 물질의 운동에 달려 있으므로 “마땅히 해탈을 구하지 않아도 되리니”, 또한 모든 게 정해져 있다면 “마땅히 방편을 닦을 일이 없을 것이니”, 내가 만든다면 “수행하는 사람도 마땅히 방편을 구하지 않을 것이리라.” 흥미롭지 않나요? 어떤 우주론이 잘못된 것인 이유를 해탈에 대한 염원과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찾고 있다니! 건강한 비전을 세우지 못하고 올바른 수행을 촉진하지 못하는 자연학은 틀린 자연학이라는 사고방식이 무척 신선했습니다. 지금의 우리의 과학을 돌아보게도 되고요. 고대철학에서 자연학의 포인트는 윤리학에 있었다는 샘들의 말씀에 연신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업 개념을 전복하라!
“이 세간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오직 업만이 착한 벗이 됩니다”(19-13)
“지은 것은 깨뜨리고 없애기가 어렵나니 지은 업을 부지런히 닦지 않으면 결국엔 아무것도 성취함이 없을 것입니다.”(20-17,18)
부처님께서 여러 대목에서 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만큼 저희는 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혜윤샘의 후기대로 작년 한해 <구사론>에서 온갖 갈래의 업을 배웠지만 제 머리는 비어있고 다 어디로 갔는지 아리송합니다... 업의 층위를 나누어, 받는 업과 던지는 업을 구분할 수 있는지, 왜 구분하려 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텍스트의 한 두 문장을 가지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았고 시간도 부족해서 여전히 아리송했었습니다. 다만 세미나에서 남은 놀라움 하나는, 부처님은 어떻게 ‘과거에 지어진 업의 견고함’을 말씀하시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히 닦으라’고 가르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당대 힌두교 전통의 인도 사회에도 업 개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현존하는 체제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사유되고 이용되었습니다. 네가 찬달라인 것은, 가난한 것은, 아픈 것은 전생의 업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부유하고 지배자이고 건강한 것도 전생의 업 때문이고! 그러므로 현존을 받아들여라. 여기에는 인정과 체념은 있겠지만 긍정도 윤리도 없습니다. 긍정은 언제나 다음 순간의 긍정에 의해 실현됩니다. 부처님은 여기서 한발 나아가, 지금 여기에 전생의 업이 작용하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의 행위가 이후의 행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주목하신 것 아닐까요? 지은 업이 그토록 강력하다면, 지금 이 순간의 행도 다음 순간에는 지은 업이 되고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강력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업 개념이 전복되는 데에는 시간에 대한 기존 전통과는 다른 사유가 있는 듯한데, 이는 3학기 때 더 꼼꼼히 질문하고 배워갈 부분인 것 같습니다.
몽골과 티베트, 전쟁 기계와 영성 기계(?)
두 번째 오후 세미나 시간에는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의 6, 7, 8장을 읽고 혜윤샘과 윤순샘의 발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발제문은 불교 숙제방에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13세기, 칭기즈칸의 정복전쟁이 시작되고 안 그래도 분열되어 있던 티베트는 큰 저항 없이 몽골의 속국이 됩니다. 무력해보인다고요? 하지만 티베트 민족은 무지막지하게 강한 몽골군에 의해 소멸되지 않은 몇 안 되는 민족 중 하나이며, 심지어 몽골인들의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하며 고유성을 유지하게 됩니다. 물론 학파과 승려들 간의 갈등과 마찰도 심하긴 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불법이 널리 전파되게 됩니다. 티베트인들은 이를 ‘원대한 계획’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저희는 1240년 칭기즈 칸의 손자 고단이 사캬 판디타를 초빙하여 곁에 두었던 과정을 두고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가치에 대한 갈망이었을까요, 아니면 넓은 산지에 흩어진 티베트 인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실리적인 이유였을까요? 고단이 보낸 편지에 따르면 “내 무지한 백성들에게 도덕적이고 영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라마가 필요하다”(149쪽)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를 두고 저희는, 폭력과 살생을 일삼으며 정복을 이어가던 이들도 문득 허무와 두려움을 목도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건 우리의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고차원적인 열망이 생기는 것도 이상하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사캬 판디타를 궁정으로 불러들인 것은 티베트를 순조롭게 통치할 수 있도록 도울 영향력 있는 승려가 필요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150쪽) 물론 ‘진정한 내막’ 같은 것은 없겠지만 몽골과 티베트의 관계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으로 판단하는 일은 무리가 있을 듯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앞에서부터 계속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에 대해 말해왔으니까요. “몽골과 티베트 사이에 성립된 이 특이한 관계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 티베트의 라마와 몽골 왕 사이의 특별한 영적, 종교적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151쪽)
제게 든 질문은, 어떻게 팽창하는 몽골인들처럼 살생과 폭력에 가장 젖은 자들이 자비와 비폭력을 가르치는 사상에 접속될 수 있었을까입니다. 극과 극이 통한 것일까요? 확실히 사캬 판디타는 몽골인들의 잔인성에 당황하고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맨 처음 한 일이 중국인들을 학살하는 고단을 멈추게 한 일이었으니까요. 가장 힘 있는 자들의 전방위적 살상과 그들의 악업을 멈추게 하는 것, 이것은 원대한 계획의 일부였을까요? 만약 몽골이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살생을 저질렀을까요? 알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분명 우리가 한 이야기인건 맞는것 같은데 좀 더 정리된 후기를 읽다보면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제국을 확장하며 살생과 폭력을 행하던 몽골인들이 어떻게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궁금해하는 민호샘 질문에 답을 하고싶어 잠깐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생각이라는걸 했다는걸 기억해주세요. 민호샘.ㅎㅎ.
몽골과 불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방해가 된것 아닐까요? 무자비와 자비라는. 프레임을 바꿔서 어디에도 걸림없는 유목민과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공사상의 측면에서 본다면 둘은 제법 잘 어울리지 않나요?
오오... 그럴 수 있겠네요! 사실 제 편견이 슥 노출된 질문이기도 했네요! 감사해요~~라이라이!
저희...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셈나 한 거 맞죠?^^;;
민호샘 후기는 요약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메모하면서 복습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