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시간(3.29) 공지 먼저 드리겠습니다!
1) <현우경(상)> 제1권(~82쪽)까지 읽고, 함께 나눌 질문이나 이야깃거리를 불교 숙제방에 댓글로 남겨주세요.
2)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9장, 10장(236쪽~ 323쪽)까지 읽고 질문과 이야깃거리를 생각해 오셔요. 발제는 김경아 선생님과 김자영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3) 간식은 이미영 선생님과 김호정 선생님이 준비해주시겠습니다.
4) 후기는 최윤순 선생님께서 써주시겠습니다.
세존은 죽어도 법은 계속된다
이번 주 <불소행찬>의 범위는 부처님의 열반에 드시는 이야기와 그 후일담이 전개됩니다. 이때의 열반은 정확히는 육신을 벗어나는 무여열반, 즉 죽음입니다. 세속의 관점에서는 죽음이지만 깨달은 자는 이미 생사를 떠났기에 법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참된 불교도라면 죽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이므로 슬퍼할 일이 없어야 마땅할 듯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죽음 앞에서 온 자연물과 중생들, 천신들, 그리고 깨달은 존재들까지도 무척 애달파 합니다. 빛이 하루 아침에 꺼졌다, 갑자기 텅 비었다, 문이 닫혔다 등의 표현이 수십 번 등장하지요. 한편으로는 당연한 죽음에 대한 이 깊은 한탄이 이해가 안 갔지만, 다음 구절을 읽으니 절로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과 하늘들은 / 모두 다 크게 두려워하였나니 / 마치 사람이 넓은 못에서 놀다가 / 길이 험하여 마을까지 이르지 못하였을 때 / 다만 거기까지 가지 못할까 두려워 / 마음은 두렵고 몸은 바쁜 것과 같았다.”(25-32)
스스로 어둠 속에 있음을 아는 자들, 그리고 저기 마을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자들에게, 그 확실한 이정표가 사라지는 일은 어리광이나 정서적 슬픔을 넘어, 실제적 두려움이자 마음 한켠이 텅 비는 듯한 한 상실로 체험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커다란 스승이 부재하게 된다는 이 말 못할 쓰라림과 아쉬움은 이미 깨달은 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들을 아시는지 부처님은 스러져가시는 와중에도 차분하게 ‘법의 섬’과 ‘자신의 섬’을 의지하고 나아가라고, 부처의 몸은 있고 없고 하지만 이 법은 영원하여 다함이 없다고, 비록 부처를 만나지 못해도 그 말대로 행한다면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들과 귀신들과 천신들에게, 또한 슬퍼하는 아난다에게, 그리고 누워계신 순간까지도 질문을 하고자 달려온 사람들에게도 차분히 설법해주십니다. 깨달은 이후 45년 동안 해온 그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일하게 하면서 죽음을 맞기. 여러 의미에서 아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저희에게도 부처님의 이 모습은 큰 감동을 줍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슬퍼하는 이들에게 거듭거듭 무상을 말씀하셨습니다. 생겨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런데 어찌하여 부처의 몸만은 항상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경아샘은 부처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무상을 증명하시는 것 같다고 적어주셨는데, 무척 공감이 갔습니다. 무상을 가르치시되, 그 가르침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몸소 그 무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의 죽음. 맘속에 느낌표들이 솟아나는 장면입니다.
당대 불교 : 불교의 중국화
세 번째 강의는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에 세미나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시작했습니다. 역시 핵심은 역사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영성적 관점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윤순샘의 후기에 아주아주 재미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6~7세기, 로마제국은 북방에서 밀려오는 게르만, 고트, 훈, 프랑크 등의 ‘야만인’(문명중심적 네이밍)들의 침략에 속수무책이 되어 더 이상 중앙집권적 통치가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즉 도시단위의 경쟁적 분권제가 확립된 ‘중세’(근대중심적 네이밍)가 시작됩니다. 저기 중동에서는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가 크게 확장되어 칼리파 제국을 이루었고,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베트 고원에는 송첸캄포와 티송데첸이 다져놓은 ‘원대한 계획’이 이뤄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중국에는 당 제국이 들어섰지요.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중국에 스며들기 시작한 불교는 당에 이르러서 가장 활발해지고 ‘중국화’됩니다. 물론 당시 당나라의 장안은 국제도시었고,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페르시아인, 아랍인, 위구르인, 로마인들이 각자의 종교를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세력 및 정치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으면서 7~9세기 내내 당의 불교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받기도 하고 국가 차원에서 배격되기도 합니다.
몇 가지 사건으로 볼까요. 621년 고조 치하에 부혁이 배불상소를 올립니다. 많은 승려들을 환속시키고 사원을 줄이죠. 이후 당 태종은 국가적으로 사원들을 지원합니다. 이 시기 문성공주가 3000km 당번고도를 따라 송첸캄포에게 시집을 갑니다. 엄청난 일이죠! 이후 684년 측천무후라는 인물이 스스로를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불교를 후원합니다. 그러나 8세기에 이르러 예종과 현종 대에는 도교가 복권됩니다. 승려들이 축출되고 사원이 억압 받다가, 9세기에는 폐불정책이 시행됩니다. 불상을 녹여 재정을 마련하고 4600개의 사원이 파괴되고, 26만명 이상의 승려가 환속되었다고 하니 말 그대로 ‘법난’이었습니다.
이 시기 당에서는 불교가 각각의 스승과 서사에 따라 중국화되면서 계파들이 나뉘어갔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텍스트를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었죠. 대표적인 것들을 잠깐 적어볼까요. 삼계교(신행-법화경, 화엄경), 율종(도선-사윤불), 구사종(현장 번역본-아비달마구사론), 천태종(지의-법화경), 화엄종(법순, 지엄- 화엄경), 법상종(현장과 규기-섭대승론), 밀종(금강지-대일경), 정토종(혜원, 담란- 정토경), 선종(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신수-능가경). 엄청나게 많죠... 불교 초짜인 불린이로써 저는 들어본 게 거의 없는데요. 이중 가장 중국적인 것은 선종이라고 하네요. 다음 강의에서는 저희가 달라의 라마의 이야기에서 살짝 엿보았던 몽골의 활약(?)과 더불어서 중국에서 불교가 어떻게 피어났는지를 배운다고 합니다. 역시 기대가 되네요!!
다음 주 수요일에 뵙겠습니다~~
전생의 기억이 되어버린 지난주 강의를 다시 기억 속에 불러 일으켜 주시네요. 짧고 굵게 임팩트 강한 요약본을 본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