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공부 바닥에는 슬슬 수확철의 긴장감이 돌기 시작합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는 에세이와 관련된 이런저런 느슨한 생각들을 모아오기로 했습니다. 본격적인 글 토론은 낭송텍스트를 마치고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두근두근... 그럼 7주차(11.15) 공지드리겠습니다.
1) <달라이라마, 깨달음을 말하다> 13장과 부록2(345~428쪽)을 읽고 옵니다.
2) 강의가 있는 주입니다. 이번 주는 드디어 니체의 시간 개념이 등장하네요!
3) 간식은 저 그리고 이윤지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4) 후기는 정은이 선생님께서 써 주시겠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성숙하게 : 육바라밀(六波羅蜜)과 사섭법(四攝法)
저희는 사실상 <람림>의 현대적(그리고 정통적)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는 <달라이라마, 깨달음을 말하다>의 마지막 챕터까지 읽었습니다. 이제 요약과 부록만을 남기고 있는데요. 가르침의 끝은 대승을 넘어 금강승으로 향합니다. 금강승은 일종의 밀교적 가르침으로 “이 생에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는 강력한 길이지만, 소승적 출리심, 대승적 대비심, 궁극 진리인 공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는 세 기둥이 갖춰지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반드시 수승한 스승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여, 이 텍스트에서는 구체적인 방식이나 과정보다는 그 수행의 원리 및 효과나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습니다. 수행자가 “자신을 깨달은 본존이자 만달라의 주존이라 확신”하는 자긍심이 기반이 된다고 하니 그 강렬함이 엄청난 것 같습니다. “이때 수행자의 마음은 붓다의 법신이고, 그의 언설은 보신이며, 몸은 화신이다. 그리고 이 세계와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은 다양한 형상을 띤 딴뜨라의 여러 신들과 보살들이 살고 있는 만달라로 여긴다.”(336쪽)
저에게 더 흥미로웠던 내용은 금강승 자체보다도 11장 제목처럼 ‘대승과 금강승의 공통적 수행’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수행은 보리심의 실천이자 보살행 자체인, ‘행보리심’에 있습니다. 이는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성숙하게 하는 ‘육바라밀’과 다른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사섭법입니다. 눈에 익혀둘 겸 적어봅니다,
육바라밀 :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사섭법 : 보시섭, 애어섭, 이행섭, 동시섭
신기한 점은 육바라밀과 사섭법 모두가 ‘보시’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데 왜 첫 번째에 보시가 있을까요? 생각해볼만한 문제지만, 이 수행자체가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 깨닫겠다는 발심인 보리심에 기반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렇기에 가진 지혜를 베풀고, 어려운 상황에서 구제하고, 물건을 나누는 ‘주는 덕’이야말로 보살행의 시작점이지요. 순서로는 시작이지만, 그것은 이미 보살행에 들어섰다는 징표이기도 하빈다. “몸과 재물, 삼 세에 쌓은 선근까지 모두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다”(296쪽)는 말이 크게 들렸습니다. 보시바라밀에는 “재물을 베푸는 재시, 불법을 베푸는 법시, 두려움으로부터 보호를 베푸는 무외시(無畏施)”가 있다고 합니다. 세 가지 중에서 왜인지 무외시가 인상깊었습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를 뵙고 오신 윤지샘께서 들려주신, 아픈 일행을 존자님이 꼭 안아주셨다는 에피소드가 착 떠올랐습니다. 이 말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보시 바라밀은 내가 가진 여의주이며 다른 이들에게는 희망이다.”(297쪽)
우리는 블랙홀을 볼 수 있을까? : 특이점과 사건의 지평선
저희는 호킹 박사님의 안내로 우주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새삼 <시간의 역사>라는 제목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시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뿐 아니라 시간 개념 자체가 어떤 역사성을 갖는지를 질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제 블랙홀까지 왔습니다. 왜 블랙홀이 다뤄져야 하는가는, 그것이 이 우주라는 시공간과 거기서 작동하는 과학 법칙들에 불연속적인 단절 지점, 즉 특이점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특이점은 언제나 중요성을 갖는데요. 그것이 설명 체계로서의 과학의 지반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며, 시작이나 끝과 같은 선험적 전제들을 전제로서 내버려두지 않고 사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블랙홀의 특이점은 밀도가 무한히 커져서 우주의 네 가지 힘들이 한 데 작동하는 대통합 에너지에 이르게 하는데, 이는 우주의 시작이라 알려진 빅뱅 특이점과 유사한 환경이 됩니다. 다만 후자가 시간의 시작이면 전자는 시간의 끝이라는 점이 다르죠. 호킹은 여기서는 거시계에 국한된 일반상대성이론과 미시계에 국한된 양자역학이 함께 다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큰 중력장 때문에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천체’라는 블랙홀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무려 240년 전에 등장했습니다. 2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과 별들의 생애에 관한 이론이 더해지면서, 블랙홀에 관한 논의는 20세기 후반에 본격화되었습니다. 블랙홀은 거대한 별들의 중력붕괴에 의해 생성되며 질량이 태양의 몇 배인 것에서 수십억 배에 달하는 것까지 무척 다양합니다. 140억년 동안 별들이 생겨나고 붕괴했을 역사를 생각해보면 우주에는 상당히 많은 블랙홀이 존재할 것입니다. “블랙홀의 수는 눈에 보이는 별들의 수보다도 훨씬 많을 것”(124쪽)이죠. 그렇다면 우주의 대부분의 질량은 별들이 아니라 블랙홀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지! 갑자기 암흑물질과 블랙홀의 연관성이 궁금해지네요. 어쨌든 큰 블랙홀은 은하를 형성하고 회전시킬 정도로 강력한 중력을 일으키며, 우리은하의 중심에도 태양 질량의 10만 배에 달하는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관측할 수 있을까입니다. 블랙홀이 보이지 않습니다. 빛이 빠져나올 수 없다면 아무것도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70년대 초 서로를 회전하는 쌍성계 중 하나인 백조자리 X-1의 엑스선을 관측함으로서 블랙홀의 존재를 추측했습니다. 이것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한쪽 별이 블랙홀로 중력 붕괴한 상태에서, 아직 붕괴하지 않은 그 동반성의 물질들이 빨려들어갈 때 발생하는 복사 에너지의 엑스선을 관측한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블랙홀을 관측할 방법은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블랙홀 내부를 관측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블랙홀의 경계 바로 바깥은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호킹은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고 말합니다. “블랙홀은 뜨거운 물체와 똑같이 빛을 내며 질량이 작을수록 더 많은 복사를 방출한다”(127쪽)는 것이죠.
가수 윤하의 히트곡이기도 한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경계입니다. 거대한 질량의 별은 끝내 그 축적된 중력에 의해 한 점을 향해 수축됩니다. 밀도가 무한대가 됨에 따라 시공의 곡률도 무한대가 되어 마침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데요. 그러면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영원히 외부의 관측자에게 도달할 수 없습니다. 밖에서 보면, 거대한 천체의 외연은 점점 줄다가 어느 순간 탁 하고 암전이 되겠죠. 하지만 문턱에 걸쳐 탈출하려 애를 쓰고 있는 마지막 빛들이 있습니다. 블랙홀에서 벗어나려다가 실패한 광선들의 경로, 그것이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입니다. “사건 지평선, 즉 그곳으로부터 아무것도 빠져나올 수 없는 시공 영역의 경계는 마치 블랙홀 주변에 둘러쳐져 있는 일방향 막과도 같다.”(116쪽) 이 사건의 지평선은 그 바깥으로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경계를 맴돌고 있는 빛도 보이지 않겠죠. 우리는 블랙홀 자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블랙홀에서 뭐가 나온다고? : 가상입자와 복사 에너지
하지만 여기까지는 중력과 전자기력만을 다루는 일반상대성이론의 결론입니다. 양자역학의 문제로 넘어가면 블랙홀의 위상은 달라집니다. “블랙홀을, 그곳에서 먼 거리까지 탈출할 수 없는 사건들의 집합으로 정의하자는 생각”(129쪽)은 조금 흔들립니다. 왜냐하면 블랙홀에서 뭔가가 나와야 한다는 계산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는 블랙홀에서 뭔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 바로 바깥쪽에 있는 ‘빈’ 공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흔들린 것은 호킹의 한 전제,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은 줄어들 수 없다’는 전제였습니다. 당연히 물질과 복사가 유입될수록 블랙홀의 질량은 커지고, 사건의 지평선은 확장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열역학 2법칙은 전체 계의 엔트로피(무질서도)는 감소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블랙홀이 주변에 떠도는 물질들과 복사들(주로 높은 엔트로피를 가진 것들)을 흡수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사건 지평선이 커지고 블랙홀 주변의 엔트로피는 낮아지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체 엔트로피가 감소되지 않기 위해서는, 물질과 복사를 흡수하면서 사건지평선을 키운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총엔트로피는 유지가 되지요.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만약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진다면, 동시에 그 블랙홀은 온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특정한 온도를 가지는 물체는 일정한 비율로 복사를 방출해야 한다. (...) 열역학 제2법칙의 위배를 막으려면 이러한 복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블랙홀은 복사를 방출해야 한다. 그러나 블랙홀의 정의 자체에 의하면, 블랙홀은 아무것도 방출하지 않는 천체로 생각되고 있다.”(133쪽)
뭔가 흥미롭지 않나요? 법칙들이 충돌하고 있었고, 논리들이 얽히고 있었습니다. 블랙홀은 상대성이론에 따른 그 정의와는 반대로 뭔가를 방출해야 했습니다. 양장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블랙홀은 마치 뜨거운 물체와 같이 입자와 복사를 내보내야 하지요. 세계를 설명하는 두 이론이 상충되는 것만 같은 이 진퇴양난을 해결한 건 ‘틈’이었습니다. 기이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블랙홀과 블랙홀이 아닌 곳 사이, 즉 사건 지평선의 바로 바깥 면의 ‘빈 공간’이었습니다. 양자장이론에 따르면, 완전히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장의 값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빈 곳은 장의 값이 0인 상황이죠. 그러나 해수면이 반듯한 평면이 아니듯 장은 항시 요동중입니다. 솟아오른 곳과 움푹 페인 곳이 함께 형성되며 출렁이지요. 이것이 양자요동입니다. 그것은 “어느 때에 하나로 나타났다가 서로 멀어지고 그런 다음 하나로 합쳐져서 쌍소멸하는 광자나 중력자의 쌍”(134쪽)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양자요동은 빚어내는 이러한 입자/반입자의 쌍을 빚어내기도 하고 양에너지 입자/음에너지 입자 쌍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쌍생성-쌍소멸은 실제일 수도 있고 가상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장의 요동이 쉼 없이 계속된다는 것만이 중요하며 이는 간접적인 효과로서 측정이 가능합니다.
에너지는 무에서 창조될 수 없기 때문에, 양자 장에서 양의 에너지(+e)를 가진 광자 입자 하나가 생겨났다면 반대로 음의 에너지(-e)를 가진 광자 반입자 하나가 함께 생성됩니다. 이것들은 서로 만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각각 다른 상대를 만나 소멸하기도 합니다. 이때의 소멸은 장의 솟음과 패임을 합쳐 0으로 만듭니다. 일시적이지만요. 소멸하지 않으면 하나의 실제입자로서 여행을 하겠죠. 하지만 우리가 아는 광자는 모두 양의 에너지를 가진 실제 입자입니다. 사실 음의 에너지를 갖는 쪽은 가상입자로서 곧 상대를 만나 소멸하기에 수명이 짧습니다. 하지만 블랙홀에 바로 면한 쪽에서 생성된 가상 입자는 다시 짝을 만나 사라지기전에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버림받은 짝입니다. 만약 음의 에너지를 가진 반광자였다면 곧바로 주변의 다른 광자들과 소멸할 것이었겠지만, 양의 에너지를 가진 광자가 남겨졌다면 그들은 실제 입자가 되어 여행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원래 짝과 함께 블랙홀로 갈 수 있겠지만, 가까스로 벗어날 수도 있게 되겠죠. 즉 몇몇 양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들이 홀로 남겨져 밖으로 나옵니다. 블랙홀 표면 바로 밖의 영역의 양자요동은 음에너지를 블랙홀 쪽으로, 양에너지를 블랙홀 밖으로 보내게 됩니다. 그러면 호킹의 전제가 깨지죠. 음에너지가 블랙홀 속으로 유입되면 블랙홀의 질량이 감소하고 사건의 지평선의 넓이는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블랙홀은,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X선과 감마선의 형태로 복사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블랙홀에는 ‘블랙’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기가 적절치 않다. 실제로 이들은 백열하고 있으며, 약 1만 메가와트비율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138쪽) 이는 원자력발전소 1개에 해당하는 에너지로, 태양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정도로 적지만, 어쨌든 블랙홀은 그 가장자리에서 무언가를 방출합니다. 그리고 그 복사의 총합은 검출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발견을 통해, 최근 전 지구를 망원경으로 만든 엄청난 프로젝트 끝에 블랙홀(의 복사)을 ‘관측’한 사진이 발표되었죠. 그것을 영화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장면과 함께 첨부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킹의 철학적인 문구를 인용하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아직, 머리 아픈 ‘허시간’ 개념이 들어 있는 ‘우주의 기원과 운명’장은 언급도 못했지만, 이는 다음 시간의 내용을 토론해보고 다른 철학적 시간관을 배워보면 좀 더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블랙홀로부터의 복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거에 우리가 생각했듯이, 중력붕괴가 최종적이거나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은 아님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주비행사가 블랙홀 속으로 떨어지면, 블랙홀의 질량이 증가해서 결국 추가적 질량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복사의 형태로 우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그 우주비행사는 ‘재순환되는’ 셈이다.”(142쪽)
역시 말보다는 글이 확실하네요~ 특히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 일어나는 가상입자와 실제입자 사이의 상호관계가 덕분에 정리되었습니다~ ^^ 물론 또 헛갈릴테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