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시간의 화살’이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에세이! 다음 시간이 저희가 서로 코멘트할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 긴장되면서도 왠지 모르게 멍한 기분이네요. 비록 공통과제나 중간 에세이 없이 달려온 일 년이지만, 한번의 기회를 정성껏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다음 시간(11.29) 공지부터 드리겠습니다.
1) 오전 시간에는 에세이 코멘트가 있겠습니다. 이번 주에 주고받았던 씨앗들을 모아 최대한 써와서 함께 머리를 맞대야겠습니다.
2) 올해 마지막 강의가 있습니다. 베르그손과 아인슈타인의 대담을 중심으로 시간 이야기가 마무리된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3) 간식은 김호정 선생님과 최윤순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4) 후기는 이기웅 선생님께서 써주시겠습니다.
에세이를 향하여!
오전에는 에세이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길게 논의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자영샘께서는 가족, 죽음, 고통, 유용성을 중심으로 쭈욱 풀어서 써주셨는데요. 눈밝은 선생님들께서 꼼꼼하게 코멘트를 해주셨습니다. 고통이 유용하게 전환된다고 말할 때 그 유용함의 기준은 무엇인지, 고통스런 사건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어떤 의지인지, 받아들이는 것이 해답이라고 하면 과연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 행복과 불행의 이분법이 정당한지 등의 예리한 질문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역시나 사건은 사건이고, 언제나 그것을 겪어가는 현재 우리 자신의 마음의 문제들을 예리하게 물어가는 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윤순샘께서는 ‘나아진다’라는 성장이 대체 무엇인지를 문제의식으로 가져와주셨습니다. 나아짐-진보-향상은 과연 나아감-변화-떠남과 어떻게 다른지, 활동 자체의 현행적 즐거움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더불어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과 정진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아진다’라는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도 이야기나왔습니다.
경아샘께서는 우리의 두 상식적 표현, ‘죽을 건데 뭐하러 해’와 ‘죽을 건데 왜 안 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정당화 방식을 의심하는 데에서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무상함이 허무와 정진이라는 정반대의 방향에 동원되더라도 둘은 결과를 끌어와 변명처럼 같다 붙이는 방식입니다. 그런 덧붙임이 아니라 세상의 작동원리로서의 무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기가 프로포잘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무상을 위와 같은 상식적 용법들로 끌어다 쓰는, 하나마나 한 그런 위안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들의 불안을 알아보고자 하는 시도도 필요하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만연한 감정인 냉소의 문제에 대해 무아 개념이 어떤 힌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왔습니다. 샘들께서는 이 냉소가 사회의 문제인지 자기 아집의 문제인지를 정리해 문제를 좁히고 구체화하라고 코멘트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비교하고 체념하면서도 쟤보단 났다고 위안하는 냉소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생존하기 위한 발악 같은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주셨습니다.
다른 샘들도 각자의 키워드와 텍스트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흐... 과연 어디로 나아갈지, 할 수 있는 것의 끝까지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특이점을 소거하라 : 양자-중력 이론이 선물한 ‘무경계 제안’
“양자중력 이론은 시공이 어떠한 경계도 가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 경계의 움직임을 규정해야 할 아무런 필요도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모든 과학법칙이 붕괴되는 특이점이나, 시공의 경계조건을 설정하기 위해서 어떤 새로운 법칙이나 신에게 호소해야 하는 시공의 가장자리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주의 경계조건은 그것이 아무런 경계도 가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주는 완전히 자기-충족적이고 우주 밖의 그 무엇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주는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있을(BE)’ 따름이다.”(174쪽)
드디어!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를 다 읽었습니다. 어려운 공식들을 다 빼준 호킹의 배려 덕분에 읽긴 읽을 수 있었지만, 원리적 이해의 다리가 비어 있으니, 형이상학적 설명이 등장할 때에도 헤롱헤롱 낯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저희는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호킹의 결론이자 탁월한 우주론으로 꼽히고 있는 ‘
무경계 제안’이 있습니다. 이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따라갈 때 빠지고야 마는 이론의 자기모순인 ‘특이점’ 없이 우주를 기술하게 해줍니다. 특이점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절점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예측을 불가능하게 하는 특이점은 모든 과학이론에게 ‘입닥쳐’라고 말하며, 신의 전능함(기적)이 밀고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줍니다.
호킹의 위대함은 자신이 발견하고 가다듬었던 특이점 정리를 다시 넘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호킹은 특이점에서 철회되어야 하는 기존의 물리학과 다른 물리학, 미시계의 역학에 주목합니다. “양자이론에서는 일반적인 과학법칙들이 시간의 출발점을 포함해서 모든 곳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다.”(171쪽) 파인만의 ‘
역사 총합 이론’에 따르면, 시공 속에서 입자의 역사는 한 가지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경로를 지나갑니다. “입자가 어느 특정한 점을 지날 확률은 그 점을 지나는 가능한 모든 역사와 연관된 파동을 합하여 얻어”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총합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
허시간’의 개념을 사용해야 합니다. 수학시간에 배운 허수(i)를 기억하시나요? 실수는 수평선으로 나아가지만, 허수, 즉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수는 수직선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역사 총합에서 사건들은 순차적인 시간 좌표를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진행에 수직적으로 번져가는 허수 시간의 좌표를 따르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모두 우주의 한 시공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중우주 개념(대안 역사 이론)과는 다릅니다. 허시간에 기반해 역사들을 종합하는 작업의 효과는 놀랍게도,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172쪽)입니다. 입자의 역사가 빚어내는, 시간 방향과 공간 방향이 아무런 차이도 없는 놀라운 시공간을
‘유클리드 시공’이라고 합니다. 양자의 역사 총합에 의한 이러한 시공에 ‘중력장=휘어진 시공’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을 적용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이름하여
‘양자 중력 이론’이 탄생하며, “입자의 역사에 해당하는 것은 우주 전체의 역사를 나타내는 완전히 휘어진 시공”(173쪽)이 그려집니다.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 불가능한, 실시간과 허시간의 모든 역사들이 더해진 채 휘어져 있는 풍성한 시공. 이것이 호킹이 가닿은 특이점 없는 우주입니다. “어쩌면
시간과 공간이 함께, 크기에서는 유한하지만 아무런 경계나 가장자리도 가지지 않는 곡면을 형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의 시공을 기초로 하는 고전적인 중력 이론에서는 우주가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이 두 가지밖에 없다. 즉 무한한 시간 동안 존재했거나, 또는 과거의 어떤 유한한 시간에 특이점에서 시작되었거나 둘 중 하나이다. 반면 양자 중력 이론에서는 제3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간이 공간 방향과 같은 기초를 가지고 있는 유클리드 시공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공이 그 크기에서 유한하면서도 가장자리나 경계를 형성하는 어떤 특이점도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시공은 단지 두 차원을 더 가지는 것 외에는 지구의 표면과 흡사하다. 즉 지구 표면은 그 크기에서 유한하지만 경계나 가장자리를 가지지 않는다.”(174쪽)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우주. 이것은 참 기묘한 표현이지만, 확실히 우리가 ‘무한’ 혹은 ‘유한’이라고 말할 때 갖게 되는 거친 이미지들을 더 디테일하게 가다듬게 합니다. 우주에 있어 ‘유한’은 단지 우리가 아는 3차원의 크기를 갖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교했던 지구 표면의 경우, 1차원의 선은 무한대로 그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차원의 면적은 유한합니다. 여기서 두 차원씩을 올리면 우주가 되는데요. 우주에는 3차원의 공간은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습니다. 다만 4차원의 시공간은 유한합니다. 지구 표면에 갑자기 면적이 무한대로 이어지는 끝이 없는 산이나 구덩이가 없듯이, 우주에도 시공이 무한대로 확장되거나 축소되는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팽창률이 무한대가 되거나 수축률이 무한대가 되는 지점-특이점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지구의 북극이나 남극이 시작점과 끝점이 아니며 어디서든 구면을 따라 선이 뻗어갈 수 있듯, 우주 역시 어디서든 시작하고 어디서든 끝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지구의 위도와 경도에 숫자를 표시하듯, 우주 역시 지금 우리 지적 생명체가 진화한 역사를 기준으로 표시하면 시작과 끝을 갖게 됩니다. 허수의 시공에 하나의 실수의 시공이 채택되는 것처럼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시간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특이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될 것이다. (...) 우리가 허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마도 실제로는 더 근본적이며, 우리가 실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의 모습을 기술하기에 편리하도록 고안한 인위적인 개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179쪽)
사실 허시간의 역사가 공존하는 우주를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많은 전생을 인지하고 참조하는 부처님의 모습 혹은 순수 기억이라는 원뿔을 말하는 베르그손이 떠오르기도 하고, 유한한 양태들로서 펼쳐지는 무한한 신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호킹은 ‘무경계 조건’이라는 우주관을 하나의 제안으로서 남겨놓지만, 그것을 통해 창조나 파괴 같은 신의 어떤 개입도 없이 자기 충족적으로 실재하는 우주를 그려냈음에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논의로는 시간의 방향성에 대한 물음들을 제기하며, 우주는 팽창하든 수축하든 엔트로피 증가의 방향성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무경계 조건은 무질서가 수축 국면에서 실제로는 계속 증가할 것임을 시사”(193쪽)는 것이죠. 그렇다면 결국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 될 텐데, 그럴 때 우주는 어떻게 ‘그저 있을 뿐’이 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시간의 화살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명쾌하지 않아보입니다. 마지막 챕터들에는 개정판에서 덧붙은 시간 여행이라는 재미난 문제와 대통일 이론의 후보자로서 연구되어온 끈 이론 등이 등장합니다. 호킹의 개론서는 여러모로 우릴 복잡하게 하고 해석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와 허시간, 유클리드 시공 제 후기의 빈틈을 촘촘히 매워주셨네요~ 무경계 조건의 이미지가 잘 안 잡혔는데 우주팽창 모델이 쌍곡선의 원뿔 모형에서 타원형의 모형으로 변형되면 민호샘 설명대로 둥근 지구 표면 어디서 출발하든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반복만 있지, 시작과 끝이 있다고 볼 수 없겠더라고요.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것, 윤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