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1년 공부, ‘불교+철학’
잠깐, 한해 동안 저희가 해온 공부를 돌아보려 합니다. ‘불교+철학’이라는 이름 아래 네 학기가 이어졌죠. 1)불교+역사 2)불교+물질 3)불교+의식 4)불교+시간. 불교를 갖가지 영역들과 접속시키고 변형시키며 크로스-확장해가려는 시도들이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저희는 좀처럼 만날 일 없는 책들을 읽었고 다채로운 철학자들의 강의도 들었습니다. 네 학기를 다 마친 지금, 이제 그렇게 읽고 들은 것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발효시키고 몸에 새길지, 즉 어떻게 문-사-수를 해가야 할지를 고민해보고 싶어집니다.
첫 학기에는 불문학과 티베트 불교사를 읽고 불교가 퍼져나간 역사를 배웠습니다. <불소행찬>과 <현우경>은 부처님의 생애와 인연담이 문학적으로 풀어져서 눈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장면마다 구절마다 질문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넘쳐났지요! 세미나 시간에 읽은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는 역사적 관점과 다른 ‘일반적이지 않은 관점’에서 다르마의 역사를 펼쳐내는 방식에 놀라곤 했었습니다. 단지 비극으로만 해석될 수 없는 달라이 라마의 ‘원대한 비전’도 소중한 물음표로 남았었고요.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과 티베트와 몽골로 이어지는 채운샘의 강의도 매우매우 흥미로웠고요.
두 번째 학기 때는 불교와 물질을 크로스했는데요. 달라이 라마가 오래도록 공들여 기획하신 <물질세계>의 ‘대상세계’ 파트를 읽으면서 결코 감각 및 의식과 분리되지 않는 불교의 물질론을 배웠습니다. 인식론을 함축한 물질 이론. 작년 내내 구사론에서 배웠던 근-경-식도 크로스되고, 거기에 인과, 부분과 전체, 시간 등의 철학까지 더해졌습니다. 이 텍스트를 낭송이 아니라 글을 쓰며 파헤치는 세미나로 진행했으면 참 좋았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언젠가는 해봐야죠! 그리고 <물질의 물리학>이라는 흥미로운 과학대중서도 읽었습니다. 채운샘께서는 신유물론 철학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 역시 소화하기에는 아직 흐릿하지만, 어디선가 다시 신유물론이 베이스로 깔린 담론을 만나면 낯설지 않게 접속해 들어갈 수 있을 듯합니다.
세 번째 학기에는 의식이라는 영역을 탐사했습니다. 과학자들과 불교도들의 연구 모임을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역은 <달라이라마와의 대화>를 낭송했는데요. 이론화되진 않았지만, 잠과 꿈과 죽음 등 의식의 영역 밖으로 간주되는 세계를, 물리학부터 정신분석까지 수많은 학문들의 실험 및 임상이 불교의 개념 및 수행 단계와 크로스하게 되니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는 <달라이라마, 명상을 말하다>를 읽었죠. 세미나에서는 <의식의 기원>이라는 아주아주 흥미로운 연구서(?)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제도적 법적 전제인 ‘주관적 의식’은 사실 인간 역사에서 발명된지 얼마 안 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고, 의식에 대한 질문을 안고 역사(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구약성서, 심지어 중국 고대 텍스트)를 파내려가는 여정이 아주 재밌게 와닿았습니다. 채운샘께서는 윌리엄 제임스, 프로이트, 융, 후설, 베르그손 등 의의 문제를 파고든 현대철학의 거장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네 번째 학기에는 불교와 철학과 과학에서 가장 심오한 주제라 할 수 있는 시간을 공부했습니다. <달라이라마, 깨달음을 말하다>를 함께 낭송했고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세미나 했습니다. 사실 두 책은 불교적 영역과 과학적 영역에서 심오한 경지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그 핵심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앞의 책에는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의 발심과 수행법, 그리고 소승, 대승, 금강승의 수행법 등 심오한 깨달음의 길들이 차근히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뒤의 책에는 상대성이론의 맹점인 시공간의 특이점(블랙홀, 빅뱅, 빅크런치)을 상정하지 않는 시공간의 역사를 탐구하는 여정이 정리되어 있었죠. 그것들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관련시키지는 못했지만, 이 또한 씨앗이 되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당장에 결과로 발현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니, 열심히 물을 주고 햇볕을 쪼일 일인 듯합니다. 채운샘은 아우구스티누스, 칸트, 베르그손 등 철학사에서 시간의 문제를 고민한 이들의 시간 개념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입력이 출력으로 곧바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어디에나 분명하지만, 특히 횡단의 시도는 언제나 더 많은 여분과 잉여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 결과로 확 드러나지 않는 그런 상태가 지치게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뜻밖의 다른 영역에서 연결과 확산을 이어가게 하는 입구가 되게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희의 한 해 공부가 수많은 통로들로 이어질 입장권이나 안내서가 되기를 바라며 올 한해의 ‘불교+철학’을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애쓰지 않은 듯 애를 쓴, 마지막 에세이 발표!
우여곡절인 듯 아닌 듯한 불교+철학의 에세이 발표가 끝났습니다! 이로써, 오랫동안 ‘불교팀’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규문의 불교 공부 모임의 명맥(?)은 마무리가 되었네요. 왠지 마음이 시리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그래도 방학에 접어들었다는 사실만큼은 기쁩니다! 물론 이제 새로이 공부길을 엮어가야 할 상황이니 내적으로 물음들이 떠오를 방학이기도 하겠네요!
지난 번 공지처럼 이번 에세이의 주제는 ‘나에게 불교 공부란?’이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원래는 고, 무아, 무상의 세 핵심 개념 중 하나를 파내려가는 것이었기에 그대로 진행해도 상관은 없었지만요. 어쨌든, 일주일간 저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불교’, ‘수행’, ‘공부’에 대해 진중하게 질문한 것들을 글로 적어서 모였습니다. 1년 혹은 n년에 대한 돌아봄이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 성과물로서 각기 다른 분량과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담긴 9편의 에세이가 발표되었습니다(바쁜 일정으로 인해 참석을 못하신 윤지샘께서는 맛있는 떡을 대신 보내서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일년간 글쓰기를 하지 않다가 쓰게 된 상황도 그렇고, 주제가 불교 공부의 갈무리여서도 그렇고, 왠지 우리 자신의 현위치가 잘 드러나 보이는 진솔한 글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애쓰지 않는 마음’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유쾌하게 깔깔 웃으며 보냈던 에세이 발표였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묘한 슬픔도 섞여 있어서 오래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그날의 후기는 샘들의 소감으로 전해드리고, 여기서 <불교+철학>의 일 년의 여정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즐거웠습니다!
“영원회귀인가요?” 이 말이 아직도 귓가에. ㅎㅎㅎ. 계속 같은 돌부리에 걸려. 자기 눈의 대들보를 스스로는 보지 못하지만 다른 분들의 눈과 입을 통해 늦게라도 보게 됩니다. 함께 하는 공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섯줄이 카톡 기준인줄 알고. ㅎㅎ. 낙장불입) _김호정
어쩌면 글은 마음을 숨기려 해도 그토록 정확하게 드러내는지 제 글은 물론 샘들 글을 보면서 다시 실감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들, 다잡는 마음들, 놓지 못하는 마음들, 풀고 싶은 마음들 꺼내놓고 같이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종종 글을 썼다면 좀더 진하게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쪼매 아쉽기도 했구요~ 끝까지 마무리하는 게 목표였는데 여한이 없습니다요^^ _김경아
에세이 발표가 진행되면서 등에서 식은 땀이ㅎ 글 쓰기 싫은 맘에 채운샘이 주문한 바뀐 에세이 주제를 제 맘대로 해석하고 한 페이지에 똭!ㅋㅋ 샘들의 정성어린 에세이에 좀 부끄러웠습니다. 정말 이 습은 어찌 안 되는 건가요~ 에효 그래서 공부는 ‘투비컨티뉴드’ 해야 되는 거겠죠^^;; 올 해 공부는 빈틈이 조금 있어 개인적으로 채워나가는 맛이 있어 좋았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나간 올해는 한동안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감사드리구요. 샘들의 앞으로의 여정 응원할게요^^ _정혜윤
진중한 상황에서도 채운샘과 OO샘의 티키타카가 생각나 웃음 짓게 되네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관리 받아야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도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맡겨요.' 샘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쓰신 겁니까? '애쓰지 않는 마음'^^ 유머러스하게 던진 말이지만 깊은 의미를 함축함을 우린 알지요. 자기가 넘어져 있는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지요. 샘들과 올 한해 같이 공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무척 반갑고 좋겠지요. 그러지 못하더라도 응원하고 감사한 마음 간직하겠습니다. _이미영
⤷‘애.않.마’ 이번 에세이 핵심어네요~^^ _김경아
어? 다시 에세이 발표 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죠? ㅋㅋ 저는 그저 샘들 글 읽으면서 부럽고, 공감도 되고, 감탄하고 감동하느라 바빴어요. 뒤풀이에서 먹은 음식들만큼 풍~성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불교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시킬지 선물 같은 고민이 생겼구요. 1년 동안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_정은이
어제 에세이 발표를 했다. 오랜 기간 같이 해왔기에 각자의 이슈에도 익숙하고, 문제점을 지적했을 때 수용도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론적으로 딸려서 많은 지적을 받겠구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에세이를 끝으로 불교팀은 해산한다고 한다. 너무 오랜 기간 같이 해서 다소 정체된 느낌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짜임새를 갖기로 한 것 같다.
올해 초 규문 불교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가 생각난다. 생각보다 훨씬 편안해서 놀랐다. 작년에 경험한 공부팀의 자의식 각축전 분위기와 사뭇 달랐고, 낯선 곳이라 주저하던 마음이 편해졌다. 혼자 잘하려는 사람은 적고, 느긋한 분위기였으며, 다른 사람을 잘 챙기는 것 같았다. 규문 주방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늘 후원이 이어지고, 연구실 청년들을 먼저 배려하는 모습도 좋았다. 에세이 합평 때 오래도록 공부했는데 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럴 수 있겠단 생각도 들지만,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불교 수행으로 인한 명백한 결과물로 보인다. 알지도 못하면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한테 ‘수행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 좋아‘라고 잘난 척하기도 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규문 공부를 마무리하면서, 이것은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함께 공부하는 과정을 보시의 수행처럼 만드는 팀은 앞으로도 보기 어려울 것 같으니 말이다. _김자영
⤷자영샘 감사합니다. 라쇼몽이네요. 위로받을 일은 없지만 누군가 등 다독여준 것 같아 괜히 위안이 되네요. _김호정
글을 써서 나누는 장은 글쓴이와 경청자 모두에게 미처 예상하지 못한 파동을 가져다줍니다. 글쓰기는 항상 녹녹치 않지만, 글을 쓰면서 우리는 평소와는 다른 텐션을 느낍니다. 그래서 내가 쓴 글에 대한 코멘트들이 비수처럼 들리나 봅니다. 이번 해 불교철학 세미나 시간들이 저에게는 따뜻한 쉼이 되었습니다. 다른 세미나를 하겠지만, 이 분위기가 가끔씩은 그리울 것 같습니다. 샘들 저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_최윤순
개인 사정으로 힘든 한 해를 보냈지만 함께한 도반들께 많이 보고 배웠습니다. 혼자라면 고비마다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도반 여러분 한 분 한 분 고맙습니다. 한해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_이기웅
불교 공부를 만나지 않았으면 제가 지금 어떤 모습일지 아찔합니다. ㅎㅎㅎ 삶의 나침반이 생겼다는 건 참으로 든든한 일입니다. 나침반을 보는 법을 가르쳐주신 스승님과 어려운 항로를 함께 궁리하고 격려하며 같이 와주신 도반님들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정말 귀한 공부였고 왁자지껄 즐거웠습니다. ^^ 감사합니다~ 🙏 _이윤지
역시 민호샘은 총망받는 훌륭한 작가이자 수행자답습니다. 지난 한해 공부한 것들이 뭘 배웠는지 아득하기만 한데 샘의 후기를 보니 함께 읽고 토론하던 장면들이 선하게 되살아 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여러분 연말연시 건강하게 보내시고 또 만나요!
민호샘 한 해 애 많이 쓰셨습니다. 불교팀 늦게 조인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질문하고 고민하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어요^^ 샘의 일취월장에 왜 우리 어깨뽕이 솟고 뿌듯하고 흐믓한지~ 같이 공부해서 저도 느무느무 좋았답니다. 땡큐 쏘머치!!!
우왕 이렇게 많은 걸 읽었네요. 잊고 있었던 감정도 잠시 살아나고,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결과로 확 드러나지는 않지만, 연결과 확산으로 이어지게 하는 입구가 될 수도 있는. 마음에 남는 구절입니다. 근데, 우린 5줄 정도로 쓰라고 하고 민호샘은 왜케 길게 쓴거임? 막판이니까 봐준다. 이뻐서는 절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