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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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니요?!!” 1년 공부를 마치며 짧게라도 글을 써보라는 채운샘의 제안에 불티의 학인들은 그건 말도 안 된다며 항의를 하셨더랬죠. 불티 셈나는 글쓰기가 없는 과정이었기에 마음을 내서 공부를 시작한 건데 인제 와서 에세리를 쓰라뇨...!!! 다들 싫다며 뗑강을 부렸지만 스승님의 입장은 단호하셨습니다. 1년간 읽은 텍스트를 뭐라도 내 생각과 글로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뒤돌아서는 순간 다 날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여 저희는 계획에도 없던 에세이를 쓰고 4학기 마지막 수업에 각자의 글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에세이라기보다는 1년 간의 공부를 마무리하는 각자의 소략한 글이었지만 말입니다. 채운샘께선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으셨다가 약속대로 뭔가를 써오신 샘들의 글에 놀라셨는지, 아니면 (이미 이곳저곳에서 회자된) 티베트어 시험의 영향이셨는지... ^^ 전례없이 부드럽고 자상한 코멘트를 해주셨답니다.
매번 부정의 부정을 거듭함으로써 그 어떤 것의 실체도 거부하는 <중론>, 뭔가를 잡으려 하면 허공에 헛손질을 하는듯한 이 텍스트를 읽고 과연 우리가 무엇을 끄적일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1년을 통과해오신 불티 샘들은 나름대로 각자의 생각을 글로 써오셔서 발표를 했죠. 중론>을 통해 자신이 가진 정치적 편견에 대해 탐색을 해본 분도 계셨고, 1년간의 <중론> 공부를 돌아보며 불교 공부에 대해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부담감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열반에 대해 더 고찰을 해보기도, 공성과 자비에 대해 탐구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중론>을 공부하며 계속 질문이 올라오는 경험을 하셨다는 한 학인께선 자신이 지키고 있는 어떤 단단한 부분에 틈이 생기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 칼날 같은 텍스트가 불교를 좋은 말씀 듣는 편안한 공부로 여기는 경우엔 진짜 센 약효를 보인다고 샘께선 그러시더군요. ^^
저는 1년 내내 <쁘라산나빠다>라는, 중론>을 주석한 텍스트와 매주 씨름을 하면서 뭔가 풀리지 않으면 이 어려운 공부를 할 만한 저 자신의 근기에 대해 자문하며 종종 좌절하곤 했습니다. 불교에선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공부에 대한 역량을 나누는데 <중론>과 <쁘라산나빠다>는 이 중에서도 단연 상근기의 공부에 해당합니다. 하근기에도 턱걸이를 할까 말까 한 제가 상근기의 공부라뇨.. ㅠ.ㅠ 머리로는 어찌어찌 논리를 따라가며 이해를 해볼 것도 같은데, 잠시 뒤돌아서면 허공에 핀 꽃향기를 맡았던 듯 뭔가 남는 게 없는 공부랄까요. 저만 그랬겠습니까. 함께 공부를 해오신 저를 포함한 9분의 학인들 모두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학기 초반, 중론>과 <쁘라산나빠다>의 제1품 주석을 읽고 세미나에 모였던 때가 생각납니다. 모두들 멘붕이 오셔서 정말 진지하게 앞으로 1년간 이 공부를 어케 하나... 고민하며 망연자실했던 그때. ㅎㅎㅎ 그러나 스승님의 자상하신 가이드와 불티 샘들의 끈기가 저희를 마지막까지 올 수 있게 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종종 아프고, 지병으로 수술을 받기도 하고, 나이 드신 부모님과 자식을 챙기고, 바쁜 생계와 일 때문에 공부를 잠깐씩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독한 백신 후유증과 피치 못할 자가 격리, 그리고 코로나 감염까지....! 아아, 저희의 공부를 방해하는 것들은 1년 내내 끊임없이 저희를 괴롭히곤 했습니다. 한 주만 공부를 건너뛰어도 감을 잡기 힘든, 하필 이 어려운 <중론>을 공부하면서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저희의 스승님도 병으로 고충을 겪으시는 와중에 그 많은 수업을 하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지요.
그러나 어쨌거나 저희는 끝까지 왔습니다. 비록 은순샘과 경아샘 두 분께선 몸을 돌보시고 가족을 돌보셔야 하는 사정으로 마지막에 함께 하시지 못했지만, 회사 일로 바쁘셨던 헌식샘께서 마지막 시간에 꿋꿋하게 등장하셔서 저희의 마음을 반가움으로 훈훈하게 해주셨습니다. ^^
이해가 되건 안되건 1주일에 <중론> 한 품씩을 꾸준히 읽고 토론하는 경험은 그래도 저희에게 어떤 리듬을 부여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저희는 언제부터인지 <쁘라산나빠다>속 이 살벌한 논쟁이 실은 나가르주나와 찬드라키르티가 붓다의 가르침인 연기를 논적들에게 제대로 이해시키고자 하는 자비로운 시도라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마지막 시간에 다룬 26품의 <십이지에 대한 고찰>에서 절정을 이루다가 별책 부록처럼 뒤에 붙어 있는 <도간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더랬죠. 그렇습니다. 나가르주나 보살님은, 그리고 찬드라키르티 스승님은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의 저희들에게도 우리 자신과 세계가 철저하게 연기된 것으로 볼 것을, 그것이 공(空)임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무려 27번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계셨던 셈입니다.
이 반복을 읽어낸다는 것이 마치 어렵고 힘든 <수학의 정석 II> 연습문제를 푸는 것 같아내내 쫄아 있었는데, 이번에 에세이를 준비하며 다시 본 중론은 단어 하나, 표현 하나도 놓칠 것이 없는 완벽한 “게송”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송이란 시이자 노래죠. 바늘 하나도 찔릴 구석이 없는 치밀한 논리와 가르침의 정수를 운율이 있는 짧은 게송의 형태로 남겨 두신 나가르주나 보살님은 아, 진정 자비로운 스승이 맞습니다! 저는 <중론>의 후반부로 가면서 이런 다짐을 했더랬습니다. 정말 어렵지만 언젠가는 이 말씀을 이해하고 말리라...! 이번 생이 안되면 다음 생 아니, 다음다음 생에라도...! ^^;;
1년간의 과정이 다음 생의 공부를 위한 초석 다지기였음에 저는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이 공부에 함께 해주신 도반들과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저희 다음 생에도 또 같이 만나서 공부해요! 중론의 마지막 게송을 낭송하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_()_
“모든 견해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중생에게 연민을 일으켜 정법을 가르치신 고타마 부처님께 경배하옵니다.” (<중론> 27품, 견해들에 관한 고찰 30)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_^/
저는 급식 먹으러 학교에 다닌 학생처럼 규문에 다녔지만 지나고보니 올 한해가 즐겁고 애틋하고 하네요. 일년동안 무거운 저의 등짝을 밀고 끌고 와주신 윤지샘과 다른 도반 샘들께 너무 감사드려요. 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