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저터널이 준비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방류를 원하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기사와 SNS나 유튜브에는 오염수보다 더 오염된 미신과 혐오와 헛소문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이 아수라장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어떻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위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손가락질은 아무리 잘해도 우울감을 남깁니다.
세미나 중에 승현샘께서 해주신 말씀이 깊이깊이 남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오염수는 어떻게 막아야 하나요? 뭐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왔지만 뾰족한 대답이 없으셨다는 말씀이요. 우선 반대 서명은 했느냐고는 하셨지만, 오염수 반대 서명을 독려한 전교조가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은 실질적인 위협과 막막함을 준다고, 공교육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드신다고 말씀해 주실 때에는 함께 한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반대자들을 공산 세력으로 몰고, 저항의 목소리를 괴담으로 격하시키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소모적인 아귀다툼에 우리의 생각을 내어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이 사태를 더 근본적인 시각으로 볼 시도를 해갑니다. 이 난장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재난의 자리로, 거기 두텁게 쌓인 층들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 저희는 앤드류 레더바로우의 <후쿠시마>의 전반부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여기서는 1853년 개항한 후 20세기 말까지 달려온 일본 근대의 에너지 산업에서 원자력이 어떻게 신화가 되었는지에 관한 배경이 등장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생-기 세미나’ 숙제방에 올라온 발제와 공통과제들을 확인해주세요!
저희는 채운샘께서 던져주신 아래의 세 질문을 중심으로 과제를 쓰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록 세미나에서는 여기저기 새 나가긴 했지만, 책의 나머지를 읽으면서도 계속 옆구리에 끼고 가야겠습니다.
- 원자력(후쿠시마 사고 및 원자력 산업)과 관련된 위험을 우리는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가?
- 언제든 위협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과학기술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 '에너지 위기'란 무엇인가? '에너지'란, '위기'란 무얼 말하는 걸까?
태양을 향한 갈망과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후쿠시마>의 원제는 ‘Melting Sun’, 녹아내리는 태양입니다. 그는 “체르노빌 참사가 소련의 산물이듯 후쿠시마 참사가 일본의 산물인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14쪽)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해가 뜨는 나라’라고 불려온 일본은 자신들의 태양을 필요로 했습니다. 즉 성장을 위한 무한정한 에너지원에 대한 절박한 갈망이 었습니다.
개항 이후 근대를 향해 질주했던 메이지 유신,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을 승리하고 아시아의 열강이 되었던 20세기 전반, 패전 후 국가를 재건해야 했던 20세기 후반 동안 일본이라는 국가에서 멈추지 않고 요구된 것은 바로 에너지였습니다. 개항 전인 1850년대 초만 해도 일본의 밤은 캄캄했지만 “1890년이 되었을 때는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 전기가 들어왔고”(28쪽) “독일 베를린에서는 5.5퍼센트의 가정에만 전력이 공급되던 1915년, 교토는 일본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모든 가정에서 전기 조명을 켜는 도시가 되었다.”(33쪽) 식민지를 늘리고 전쟁을 수행하면서부터 전기 사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산업의 비율은 1906년부터 1916년 사이 9.4퍼센트에서 24.8퍼센트로 증가해 증기의 비중을 넘어섰다. 이 비율은 10년 뒤 90퍼센트에 육박했다.”(33쪽) 사실상 이미 20세기 초반에 모든 산업이 전기에 의존했고, 수력발전소와 석탄발전소(및 광산산업)은 포화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일본의 전력 산업은 1920년대 후반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로 성장했”(35쪽)고 40년대가 되자 일본의 석탄과 석유 수입량은 최고치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일본은 석유 소비량의 약 7퍼센트만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었고 미국에서 수입한 석유가 수요의 80퍼센트를 메우고 있었다. 석유 금수 조치는 일본의 목을 옥죄었고 궁지로 몰아넣었다.”(38쪽)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일본의 전력 소비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나 그 에너지의 수입 의존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이는 일본의 경제 및 군수 성장에 있어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희는 이 배경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전후, 그러니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져 일본이 패전한 후, 1950년대 중반부터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슬로건이 나돌았습니다. 미소 냉전이 불거지던 시기, 미국은 패권을 위해 더 많은 핵폭탄을 만들어놓아야만 했지만 세계인들과 자국민들의 강한 반발심을 가라앉혀야 했습니다. 이에 아이젠하워가 내놓은 수법은 핵분열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을 홍보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살상무기를 연상시키는 ‘핵’nuclear이라는 단어로부터 ‘원자’atomic라는 단어를 분리시키기 위해 세계적 규모의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조작이었는데, 비록 똑같은 현상을 지시하는 두 단어지만, atomic에는 놀랍게도 peace를 붙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선전전의 요충지는 다름 아닌 일본이었는데, 하나는 대학살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에서 그 상처를 초월하게 하는 “극적이고 기독교적인 제스쳐”가 될 수도 있다는 점과, 공산화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에서 자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중심축으로 여겼”(54쪽)던 것이죠.
그런 외부의 움직임은 내부의 열망, 패전 후 다시 그 영광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열망과 맞아떨어졌습니다. ‘에너지 자급자족의 꿈’이 맹렬하게 타올랐고 원자력이 그것을 가능케 해줄 듯 보였습니다. 일본의 전력회사들은 미국의 원자력 사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역사상 최대의 비극을 경험한 대중들의 반反원자력 정서가 있었지만, 천문학적인 돈이 원자력의 달콤한 약속들을 홍보하는 데 들어갔습니다. 언론이 장악되었고, 도쿄전력이 자금을 대어서 2년간의 대대적인 전국 순회 원자력 전시회가 펼쳐지자 여론은 바뀌었습니다. 원자력산업을 규제하는 자문위원에는 원자력산업을 추진하는 기업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자리 잡았고, 기관별로 규제와 관리의 영역이 중첩되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졌습니다. 여기에는 됴쿄대를 중심으로 한 일본 고유의 학벌/학연 전통도 함께 했습니다. 건드릴 수 없는 엘리트주의와 특유의 복종문화에 힘입어 일종의 원자력 카르텔(원자력 마을)이 완성된 것이죠. 정부도 이를 어쩌지 못했습니다.
50년대 후반에 선언된 일본 원자력 산업의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고속증식로 원자로를 개발하자! 고속증식로는 원자력을 한번 반응시킨 우라늄 연료를 재처리하여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초고효율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들은 실험용 고속증식로를 ‘조요’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영원한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조요가 개량되어 가동될 상업용 원자로의 이름은 ‘몬주’ 즉 문수보살이었고, 그 중간단계의 원자로는 ‘후젠’ 즉 보현보살이었습니다. 이 네이밍만 봐도 원자력 발전이 일본인(사업가, 정치가, 군인)들의 간절한 꿈이 투사된 곳임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앙에 관하여 : 중독과 부패
70년대 말, 도쿄전력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 전력회사가 되었고, 일본은 에너지 사업과 원자력에 투입하는 예산에서 다른 모든 나라를 능가했습니다. 하지만 태양을 소유하기 위한 맹렬한 열망은 성장주의의 산물이니만큼 안전, 한계, 사고에 대한 대책을 경시해왔습니다. 비록 외국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조금씩 규제를 강화하고 매뉴얼을 바꾸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안전성을 확신하고 홍보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지진에 대한 규제는 헐렁했고, 발전소들의 부지가 선정되던 50년대 60년대에는 쓰나미에 대한 연구조차 없었습니다. 발전소는 오직 주민 반발이 적고 냉각수 접근이 가까운 시골 해안가로 정해졌고, 냉각수를 끌어올리는 경제성을 고려하여 최대한 해수면 가까운 높이에 지어졌습니다. 후쿠시마 발전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 크고 작은 사고들이 터져 나왔지만, 근본적인 안전 대책은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터질수록 원자력 산업에 대한 민심은 사나워졌지만 책임을 물고 처벌받는 사람은 관리직뿐이었고, 경영자나 이사진은 슥슥 자리바꿈하며 업계에 남았습니다.
저희는 이런 상황에서 발생할 사고들을 과연 안전 대책으로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원전 사고는 무조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 원자력 발전소는 거대하기 때문에 매번의 지질학적이고 지형적인 특성에 맞게 새로운 설계와 새로운 부품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매번 새로운 유형의 발전소가 지어져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어딘가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지진이 많은 땅입니다. 발전소 자체로만 봐도 사고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유명한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는 이미 2000년에 명확하디 명확한 경고를 했었습니다.
“1000년에 한 번이라고 하면 아주 낮은 확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이 원자로 1기에 대한 확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세계 전체에는 400기가 넘는 원자로가 있으므로 1기당 1000년에 한 번의 대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곧 2.5년에 한 번 세계 어디에선가 대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1000년에 한 번이라는 확률은 대단히 높은 것이다.”(다카기 진자부로,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녹색평론사, 102쪽)
사실상 사고는 무조건 납니다. 문제는 그것에 대응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거나 각성할 만큼 우리의 기업 문화가 성숙한가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원자력 발전소 없이 사는 삶의 방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가 질문하고 발명할 수 있는가입니다. 기업의 문화가 ‘성장’을 디폴트로 놓는 한 원전은 ‘효율적으로’ 건설되고 가동될 수밖에 없고 어떤식으로든 재앙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영리의 원칙은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안전의 영역까지를 바라볼 시력이 없습니다. 쓰나미가 닥치기 전까지는 발전소는 해수면에 가깝게 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흉은 ‘안전’이 부실했던 게 아닙니다. 안전을 부실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무엇이었는가가 질문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지금 정도의 전기사용량을 원하는 우리 자신과도 만나게 됩니다.
원자력 발전소 중독과 관련해서 은동샘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샘이 사시는 하동마을에는 광양제철(전 하동화력)이 있다고 합니다. 이전까지는 김 양식을 하며 살아가던 마을이었지만, 엄청난 보상금을 뿌리며 발전소가 들어왔고(연성통제), 이제는 아무도 김 양식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역 보조금과 함께 마을 경제가 살아났었지만 이내 침체되었고, 보상금도 떨어지자 주민들은 또 다른 공장이 들어오기를 바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최대의 수익이지요. 다른 부지를 찾고 그들의 반발을 누르는 수고 없이 계속 공장을 확장할 수 있으니까요. 발전소에 의해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이들이 완벽하게 발전소의 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 이것이 슬픈 일입니다.
에너지 위기란 정확히 무엇인가?
‘에너지 위기’란 무엇일까요? 저희는 이것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이 시대에(특이 이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에!) ‘블랙아웃’만큼 커다란 재앙이 있을까요? 정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 신체가 얼마나 무능력한지 확 실감하게 됩니다. 에어컨이나 제습기 없이는 여름의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인터넷의 광속 없이는 어떤 소통도 작업도 불가능해진 신체입니다.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는 단지 정전이 아니라 금융, 교통, 외식, 안보 등 모든 것의 위기였지요. 이처럼 에너지에 대한 완벽한 의존 혹은 중독이 보여주는 바는 뭘까요?
사실 위기란 ‘에너지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문화와 생활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위태로움 자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책적이고 제도적인 해결은 언제나 ‘더 많은 에너지’ 혹은 ‘더 다변화된 에너지 공급망’이었습니다. 이것은 문제의 원인을 문제의 해결로 제시하는 꼴입니다. 에너지 위기는 존재의 위기이기도 하다는 것. 이것이 저희 세미나에서 나온 한 가지 공감 지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더 이상의 방사능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 그렇기에 원자력 발전소(태양!)를 거부하는 것, 그렇기에 원자력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삶을 실제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디서 시작되어야 할까요? 물론 이것이 ‘위험한 원전’ 대신 ‘탄소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재 원자력 의존도 30퍼센트를 대체하자는 게 아니라, 그것을 줄여갈 방법은 없느냐고 감히 이야기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에너지에 덜 의존하는 삶이 더 생생하고 당당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실천이 혼자서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크게 해결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하면 곧 암울해집니다. 언제나 소규모로, 언제나 사람들과 지역과 함께 해 보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생기 세미나 다음 시간(7/4)에는 <후쿠시마>를 끝(~394쪽)까지 읽고, 이 재앙에서 함께 나눠보고 싶은 질문들과 이야깃거리를 메모해옵니다! 사태가 제멋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저희는 저희의 자리에서 마구마구 이야기를 하며 생각을 내어주지 말자구요!!
그럼 화요일 저녁 6시30분 줌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