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세미나3 세 번째 시간에는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를 읽고, 원자력-후쿠시마라는 문제 앞에서 터져 나온 질문들에 이런저런 응답을 시도해보았습니다. 사실 원자력의 이슈에는 군수산업과의 유착 관계나 구체적인 탈원전 담론 등 아직 알아가야 할 영역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그런 분야들도 배워가야겠지요.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들로부터도 원전 산업과 그것을 추동해온 시대를 되묻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세미나의 가이드가 되었던 세 가지 질문입니다. 물론 가이드대로 논의가 흘러가진 않았지만, 이런저런 느낌들이 촉발된 시간이었습니다. 그 장면 몇몇을 스케치하고, 생-기 세미나 팀원들의 소회를 전해보겠습니다!
1) 무엇이 '재난'인가? '후쿠시마'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재난을 해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불행을 탄식하고 제도를 비판(인재다!)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넘어, 누가 어떻게 재난을 겪고 있으며, 재난의 '극복' 혹은 재난 이전의 삶의 '회복'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기
2) '재난 시대' or '재난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은 어떤 모습인가?
-원전 하청노동자들의 삶은 우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이 시대의 삶과 노동 역시 이들처럼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이들과 만나는 지점에 대해 생각하기
3)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이런 문제들을 겪을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호로서의 후쿠시마 : 재난과 재앙
재난에 대한 이야기는 몇 가지 갈래로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벌어진 사태 앞에서 원인을 찾으면서 책임을 따져 묻고(‘인재다!’) 처벌을 요구하는 식의 우리의 반응은 충분한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더 잘 할 수 있었다’, ‘더 나은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잘하면 괜찮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아닐까요? 너무나도 짧은 시간 만에 ‘후쿠시마의 부흥’을 외치면서 일체 중지시켰던 원전들을 하나둘 가동하기 시작한 일본 정부를 보면, 확실히 이 거대한 사태를 운수 나쁜 일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연 후쿠시마는 하나의 불행이기만 할까요? 재난을 ‘불행’으로 간주하고 거기서 책임자를 비난하기에 몰두하는 것. 이것이 재난 앞에서 우리의 전형적 태도였습니다. ‘인재’라는 프레임을 갖다 씌우더라도 여전히 ‘인간적 실수 없이 더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고, 이것은 곧바로 ‘개선’, ‘복원’, ‘복구’, ‘부흥’으로 이어집니다. 그런 이상 재난은, 나와 나의 가족과 우리 국민으로 한정된 안전에의 염려를 더 날카롭게 벼리는(배제된 이들을 방치하는) 동시에 더 철저한 관리 시스템에 대한 환상을 키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현상과 피상적 원인에 초점을 맞춰 쉽고도 즉각적인 반응에 휩싸이는 동안, 그 재난을 둘러싼 구체적 현실들, 재난 자체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들을 놓치게 됩니다. 확실히 재난은 하나의 사건으로서 더 깊은 차원의 질문을 뿜어내고 있는데도 말이죠.
후쿠시마 사태는 하나의 기호라고 채운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재난의 도식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 사건이 어디서 일어났는가에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벌써 반세기,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앓고 있는 기아 문제는, 근본적으로 식민지배의 후유증이지만 무엇보다 분배의 실패, 즉 정치의 실패입니다. 발전이 더 되고 국가의 부가 쌓이면 그렇게는 되지 않으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체르노빌 사태는 사회주의와 관료주의의 무능함으로 진단됩니다. 더 민주적이고 능률적인 기업 시스템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일본은 자타공인 세계 경제의 top이었고, 가장 첨단으로 발달한 사회였습니다. 기술력과 안전성은 말할 것도 없었죠. 하지만 그런 자본주의 발전에 극단에 있는 최대 강국에서 벌어진 사건이 후쿠시마죠. 여기서 우리의 환상이 무너집니다. 발전하고 잘 살면 안전하고, 재난에서도 자유로울 거라는, ‘성장’이 이뤄지면 살기 좋을 거라는 막연한 환상이 무너집니다.
이 재난이 열어젖히는 질문의 깊이는 문명 전체의 심연까지도 내려갈 수 있습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물음이죠.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세계 유일의 핵폭탄 피해국이자, 세계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가 ‘원자력 발전’을 기치로 내걸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 든 욕망은 누구의 어떤 욕망일까요? 패전 후의 국가 재건의 열망, 에너지의 갈망, 미국의 아시아 패권 확대 등 수많은 방향으로 생각의 가지를 뻗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의 욕망을 생ㅇ각해 볼 수 있죠. 리스크가 얼마나 치명적이든, 그것이 성장을 약속하고 이윤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일단 감행하는 것이죠. 후쿠시마는,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의 행복이나 안전이나 존엄에는 전혀 아무 관심도 없음을 그대로 폭로하는 사건입니다. 단순한 인재가 아니라, 자본적 재난인 것이죠.
나아가 원자력 재난은 그 영향력에 있어서 다른 재난과 같은 층위에서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수해, 기아, 이민자 등 막막한 사태들이 벌어지지만, 그것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완화할 수 있는 재난입니다. 하지만 방사능이 퍼져나간다는 것은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오염이지만, 가장 비가시적이고 가장 광범위하게 펴져나갑니다. 몇 세대, 몇 번의 생물축적 걸쳐서 일어나는 이 유독함은 포착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피해자인데 누구도 모금하거나 배상하지 않습니다. 증상은 금방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후쿠시마 하청노동자들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이라크전 참전 병사들은 배상받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이미 항존하며, 언제 불쑥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방사능재난은 마치 죽음과도 닮았습니다.
폐허를 쓴다는 것 그리고 강해진다는 것
“도쿄를 위해서 쉬지 않고 전기를 보냈던 후쿠시마. 우리의 생활은 그 땅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속죄의 마음이 커져만 갔다.”(21쪽)
“앞으로 40년, 50년 혹은 100년 이상 걸릴지도 모르는 수습작업의 역사적 진행에 한시라도 빨리 참여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정년퇴직은 절호의 기회였다. 후쿠시마를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60세라는 전기를 맞이한 나의 제2의 인생이 후쿠시마에 있다고 생각했다.”(32쪽)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는 아주 진솔하고 조금은 투박하면서 담담한 일지입니다. 도쿄에서 평생을 우체국 배달부로 살아온 저자 이케다 미노루는 정년을 앞두고 3.11을 겪습니다. “그때까지 후쿠시마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도쿄까지 보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10쪽)지만, 원전 사고 이후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몇 2년 뒤인 2013년, 60세 나이로 우체국을 정년퇴직하고 후쿠시마 하청 노동에 자원합니다. 저희는 어떻게 이런 전환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 했습니다. 후쿠시마를 복구하고 싶다는 동기가 잠깐 등장하는데, 그게 전부일까 생각이 듭니다. 사실상 배달부로 살아왔기에, 금전적인 문제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제염 작업 및 제1원전 청소를 지원하게 되었을까. 여전히 쉽지 않고 조금 복잡하죠.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놀라운 것은, 열악한 하청 조건 안에서도 자신의 일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작가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고 아마추어조차 아닌데다가 어떻게 보면 글도 처음 써보는 듯한 수준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적어내는 일은 분명히 그를 바꿨습니다. 노동 조건이 달라져서 갖게 되는 그런 자동적인 변화와는 다른 차원에서요. 은동샘께서는, 이 책의 논조가 처음과 후반이 굉장히 달라지는 것 같다고 짚어주셨는데 굉장히 공감되었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문체에 드러나는 시야가 더 넓어져집니다. 구체적 작업 방식이 기술되거나 부분부분의 관찰들(풀들, 동물들, 사람들)이 기록되었던 초반과 달리, 하청 노동의 현실들, 도쿄 전력과의 권력관계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의문과 사유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들을 한 사람의 노동자로가 아니라, 쓰고 버리는 작업원으로 보는 의식이 있다.”(244쪽)
“다중 하청 구조를 근본부터 개선해야 한다.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이 아니므로 나라가 일괄적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근로자의 신분을 보장해야 한다.”(261쪽)
“환경부를 최상으로, 대형 건설사(제네콘)를 비롯하여 계층화되어 있는 하청 구조에서 제염 노동자는 무법 상태에 놓여 있다. (...) 수당에서 돈 떼기 및 산업재해 은폐, 이중 파견 등 위법 사례는 4차, 5차 하청 구조를 가진 현 상황에서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청 노동의 현실을 그냥 겪었다면, 그 1여년의 기간은 그에게 분노나 억울함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도쿄의 LED 앞에서 체념이나 원한이 이어졌겠죠. 어떤 체험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길은 어떻게든 그것을 소화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일입니다. 그 중 하나는 글로 남기는 것입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문제들을 적어내려 갈 때, 그곳이 폐허든 천국이든 자신과 자기 세계와의 관계를 계속해서 물을 수 있게 됩니다. 그 과정은 분명히 쓰는 자신을 바꿔놓지요. 보이는 폭이 같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는 이케다 미노루를 따라 저희의 자리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떠안았습니다. 도쿄의 불빛을 밝히는 것은 후쿠시마에서 온 전기입니다. 그렇다면 서울도 마찬가지겠죠. 저희는 노동하고 먹고 즐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딘가는 폭발하고 피폭되고 곪아갑니다. 그리고 지금은 글로벌 시대입니다. 어느 행위도 지구의 반과 연결되어 있죠. 그렇기에 누군가가 비참한 삶을 사는 한, 나의 삶도 비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각을 하는 한,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뭐라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누구라도 읽고 듣고 쓰고 말할 수 있죠. 또한 미세한 것부터 과감한 것까지 하던 것을 하지 않거나 하지 않던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들과 함께 살면서, 나의 앎과 삶이 다른 이들의 불행을 원하지 않는 앎과 삶이 되도록 만드는 일. 이건 작은 일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생-기 세미나3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고, 다음으로 샘들의 진심어린 후기들을 만나볼까요?
후쿠시마 원전이 처음 터지던 날, 사실 나는 일과 관련하여 도쿄에 있었다. 그때, 외출하지 말고 호텔에 머무르라는 회사 지시에 따라 호텔방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일본 방송을 내내 틀어 놓고 원전 뚜껑이 폭발하는 영상을 반복해서 내보내는 것을 쳐다보며 이게 무슨 일이지 의아해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난 나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빨리 이 방사능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일본을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후쿠시마>책을 읽으며 2011년 3월 11일 그당시, 4~5일간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어떤 이들의 흔적과 기록을 보며 그 당시 내가 겪은 후쿠시마 상황은 나와 상관없는 완벽하게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젠 남의 일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방사능 오염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비용이 덜 들게 처리할지) 궁리 끝에 바다로 방류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마 방류하고 나서도 우리의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은 금방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질 일들처럼 신기루같다. 한때 시끄럽지만 망각의 쓰나미가 휩쓸고 가면 우리는 또 그저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라며 사는 것에 대해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계속 달린다. 나는 어떻게 그날의 후쿠시마와 지금의 상황을 겪고 있을까? 과연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이 세미나를 하게 된 계기는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구와 나누고 싶어서였다. 세미나를 하면서 바다 저 멀리에 있는 예전 미나마타와 지금의 후쿠시마는 우리에게 ‘근대'와 ‘성장'이라는 단어를 던지며 질문을 한다. 너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서 무엇이냐는 근원적인 물음과 지금처럼 살아도 되는지를… 내 살갗이 뽀송뽀송하기 위해, 내 다리가 편히 쉬기 위해 내 몸이 안온하기 위해 나는 다른 존재들에 대한 착취와 희생을 외면하고 돈만 내면 그만한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걸로 생각하며 자본의 군림에 철저히 무감각하게 살아오고 있는 내 삶을… <후쿠시마>는 일본이 지금까지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달려온 역사에 에너지 자원의 자립화를 꿈꾸며 원자폭탄의 최초의 희생국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쌓아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무너져가는 지를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원자력의 “경제적", “안전", “클린" 이라는 기치 아래에는 인간은 없었다. 생명도 없었다. 세계도 없다. ‘성장', ’발전'이라는 욕망의 허상만 맴돌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성공신화'의 견고한 틀을 유지하고자 하는 힘(언론매체, 미디어 등)은 우리를 계속 현혹시킨다. 자본의 환상을 끊임없이 꿈꾸게 하며 타자와의 고리를 없애나간다. 또 다른 이유는 자본주의 하에서 재난의 시간과 공간은 각자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의 재난과 다른 이의 재난은 같지 않으며 모두가 재난을 일률적으로 겪는 것이 아니다. 안전한 원자력 에너지를 찬양하던 국가, 정부,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이 재난을 자기의 살갗으로 겪고 있을까? 미나마타병을 누가 앓았는가를 생각해보면 이 차별적인 재난경험은 분명해진다.
다음 책 <후쿠시마 하청 노동일지>를 통해서는 실제로 재난을 살갗으로 겪는 사람들의 목소리, 발자국을 따라간다. 그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의 노동현장을 본다. 원청과 하청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 2차,3차,4차,N차 하청 노동자들의 몸은 전쟁 속의 총알받이같다. 가장 최전선에서 방사능 피폭을 감내하며 현장에 몸을 내맡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이 어느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서 선량 계측기에 경보음이 울리는 것조차 성가신 일이며 숨겨야 할 일이다. 이 때 그들의 몸은 노동하는 몸일 뿐 피폭을 우려하며 보호해야 할 몸이 아니다. 현장에서 노동하는 몸과 그 노동밖의 몸은 다르게 취급되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자본의 논리다. ‘위험수당'이라는 이상한 명목으로 몸을 담보로 하는 노동은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다. 이렇듯 자본은 우리의 몸의 미세한 틈까지 깊이 파고들어 몸과 영혼을 잠식해 버린다.
생계와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하는 미물같은 존재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적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건만 계속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소름끼칠 정도의 진지함(니체의 말)도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여기에 논리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물나는 자본의 논리에 치여 자포자기로 몸을 맡기는 게 아니라 감정적이고 회의적이기 쉬운 이런 문제를 가지고 계속 붙들고 나의 논리를 만들어 반박해 나가고 싶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차원에서 한 발걸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의 논리를 치밀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 불편한 문제일수록 계속 대면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한다.(양희욱 선생님)
요즘 내게 가장 큰 관심사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에 관한 이슈이다. 핵오염수 방류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번의 서명과 몇 번의 집회 참여 외에는 없었다. 바다에 인접한 도시에 살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걸까? 아니면 걱정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이 번져나갈 무렵 생기 세미나에서 ‘후쿠시마’ 주제를 다룬다기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세미나에서 읽은 도서는 『후쿠시마』(앤드류 레더바로우)와 『후쿠시마 하청노동일지』(이케다미노루)였다. 첫 번째 책 『후쿠시마』는 원자폭탄 피폭 국가인 일본이 원자력발전을 맹신하게 되고 그 믿음을 퍼트리는 과정,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현장과 수습 과정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 끊임없이 발생되어 온 원전사고에서 하청노동자들이 희생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한데 이 책은 이를 제3자가 기록하고 있다면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는 하청노동자가 직접 보고 겪은 경험들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어서 재난을 누가 겪고 수습하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들을 보는 동안 재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기도 하고 비극적인 현장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에 대한 이슈에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면서 정작 원자력 발전과 관련해 참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나도 교과서와 매체에서 원자력이 깨끗하고 경제적인 대안 에너지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제는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원전이 결코 안전하다고 (일부를 제외하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지고 유지되는 과정, 사고가 터지면 이를 수습하는 하청 노동자(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목숨을 걸고 이를 수습하는 하청 노동자들을 자살 특공대라고 했다), 그 지역 주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고와 위험은 기본값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전사고는 안전한 매뉴얼이 있다고 해서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재난이 되고 있다.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미국이 1950년대 원자력 기술을 홍보하고 공유하기 위한 캠페인에 붙인 이름이다. ‘평화’와 ‘원자력’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나열된 슬로건 앞에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1950년대 초 미국이 벌인 원자력 실험 직후 그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일본 참치잡이 배 선원들이다. 그들은 일을 하다가 폭발의 낙진(하얗고 고운 재)을 맞았고 그날 저녁의 심각한 고통을 시작으로 그 방사선으로 인해 죽어갔다. 재난은 이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겪게 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60년이 흐른 뒤 더 큰 재난이 발생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자력 기술에 대한 맹신과 자본주의 성장 신화가 가져온 재난이다. 성장과 안전에 대한 신화를 바탕으로 폭주하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재난은 사회적 약자를 방패막이로 내세우지만 결국 우리에게 그 결과가 도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을까. 처음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원자력이 아니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를 어떻게 생산할 거야?, 오염수에 6250억년 노출돼도 인체에 영향이 없다는데?’ 등등 원자력 발전을 비롯한 기후 위기, 환경 문제에 수치를 근거로 과학적이며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논리는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면, 지금의 사회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을 전제로 한 주장들이다. 이 전제 자체도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하나도 놓지 않겠다는 마음, 인간 중심적으로 세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 한다면 우리는 재난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다. 세미나에서 우리가 각자 겪은 재난에 대한 경험, 위기의식, 재난에 대해 갖는 감정, 재난의 최전선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과의 연결고리 등 내가 있는 자리로부터 생각을 확장해가며 이야기 나눈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채운 샘께서 세미나 말미에서 해주셨던 말씀들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재난을 겪는 이들과 고통을 공유하겠다는 마음, 내 삶을 인간의 삶만이 아니라 몇 십만 년의 삶으로 확장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바로 당장 무엇을 바꿀 수 없다면 시도하지 않겠다는 무기력, 패배감에서 벗어나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승현 선생님)
언젠가부터 뉴스나 신문을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는데 이런 저런 사건들을 알게 되는 것이 소모적이라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관해서도 기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길가에 걸린 정치인들의 현수막과 환경단체 계정에서 스치듯 알게 된 것이 전부다. 생기 세미나에서는 <후쿠시마>와 <후쿠시마 하청 노동 일지>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기사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제에 관해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이야기할 때는 분노를 동력 삼은 대화가 쭉쭉 이어졌던 것 같다. 문제를 각자의 삶 가까이로 끌고 와 그 연결 지점을 짚어볼 때에는 왠지 모를 무력함에 대화가 축축 쳐졌다. 그리고 그 막막함이 마음에 남았다. 원자력을 둘러싼 성장신화, 자본주의적 욕망, 하청노동 구조의 문제를 말할 때와는 다른 종류의 갑갑함이었는데 그 정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나누면서 이런 저런 질문으로 바뀌는 과정이 상쾌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더 감각하기 어려운 재난을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일상적 활동이 누군가의 죽음을 담보로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존엄함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는 감각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누군가의 삶이 비참하다면 그것과 연결된 나의 삶도 비참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여전히 잘 모르겠는 부분이 많지만, 질문이 또 다른 질문으로 옮겨가는 길을 이리 저리 휘청거리며 함께 걸어가다 보면 지금과는 다른 위치에서 또 헤매고 있겠지? 함께 걸을 사람이 있다는 것, 지금과는 다른 위치일 것이라는 것이 위안이 된다. 그리고 최근에 들은 친구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목적지를 모른 채 헤매는 나 뒤에는 내가 걸어온 길이 있을 것이고, 그 길을 잘 기록하면서 걸어가면 그건 또 하나의 지도가 되어있을 것이다.(허해민 선생님)
3.11 후쿠시마 참사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늦은 봄쯤이었다. 서울환경영화제가 상암CGV에서 열렸다. 자전거로 그곳까지 이동했는데, 사실 나는 아주 서투른 라이더였다.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다큐멘터리 '영원한 봉인’을 봤다. 다큐멘터리는 핀란드의 방사성 폐기물 보관소 '온칼로' 건설 과정에 관한 이야기로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자다 깨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원한 봉인’은 분명 다큐멘터리였지만, 현실에선 절대 있을 법하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마치 지구와 아주 먼 행성을 무대로, 진지한 농담을 대사로 주고 받는 배우들이 등장하는 SF 블랙코미디처럼 말이다. 물론 온칼로 이야기는 리얼다큐다.
후쿠시마 문제를 다룬 생기세미나의 첫 번째 책인 [후쿠시마]는 3.11 후쿠시마 참사를 기점으로 과거로 돌아가 일본 원자력 발전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두 번째 책인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는 사고 후 원전 복구 작업에 동원된 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찾아본 '영원한 봉인'은 핵폐기물을 떠안게 될 미래 세대의 문제를 같이 고민해 보자고 제안을 한다.
[후쿠시마]에서는 피폭당한 지 10년밖에 안 된 나라가 어떻게 원전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는지, 어떤 분야보다 철저함이 필요했을 원전 건설 과정에서 불확실성에 근거한 판단이 어떻게 그리 빈번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채운 샘의 지적대로 ‘자본주의’가 그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후쿠시마 하청노동 일지]는 위험을 외주화하는 다중의 하청구조 속에서 노동자 인권이 얼마나 비참하게 파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곳에서도 자본의 논리는 제1의 원칙이 된다. 예를 들어 회수 작업을 다 끝낸 방사능 쓰레기를 담은 봉투가 새 소각로 입구에 맞지 않아 다시 새 봉투에 나눠 담는 어처구니없고 위험한 작업에 노동자들이 투입되는데, 소각로 입구를 보수하는 것보단 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이유 때문이다.
후쿠시마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계속 의식하게 되었던 건 ‘시간’의 문제였다. 단 한 번의 원전 사고의 시간적 공간적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고가 아니어도 원전에 의해 생산된 전기는 무시무시한 핵 폐기물을 남긴다. 그 폐기물의 방사능물질이 무해한 수준으로 바뀌는 시간은 약 십만 년이다. 즉, 우리가 현재 쓰는 전기의 상당한 부분은 먼 미래 시간에 속하게 될 생명체들의 죽음을 담보로 하고 있다. ‘십만 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인식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그 시간이 끔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기도 한다. 감각을 벼리며 무력감과 패배감에 지지 않으면서, '윤리’의 문제를 집요하게 생각하고 현실적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일이 어렵지만, 꼭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어려운 숙제니 동무들과 꼭 함께 풀어야겠다.(은동 선생님)
우리 생-기 세미나는 세계와 내가 맺고 있는 상호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이 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생태문제고민상담’이라 자부한다. 왜냐하면 함께 공부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방식의 질문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함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매시간 윤리적 실천을 도출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댔던 이유도, 자신이 하는 행위가 곧 자기 존재라는, 즉 행위와 존재는 분리될 수 없다는 배움에서다. 우리는 문제와 답이 일대일 항으로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지만 모른척 쓱 넘어가는 게 맘 편하다.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외면하지 않는 것, 우리에게는 어떤 사안에 관해 ‘답’이 아니라, ‘문제’가 필요하다는데, 그게 정말 어렵다. ‘나쁘니까 없애자, 좋으니까 지키자’라고 접근하는 방식이 모두 폭력적일 수 있으며, 그 폭력이 작동되는 곳은 저기 사회 문제에만 있지 않고, 여기 매순간 내 마음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아는 게 중요하다. 누구에게 또 어디에 좋고 나쁨인지 숙고한다는 것은, 인간-자기 중심적 가치 판단이라는 폭력이 어떤 폭력을 못 보게 하는지 안다는 것이고, 문제의 근원적 질문까지 가야 겨우 보인다. 어쩌면 ‘문제화’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워나가는 과정이 배움이고, 생태 문제를 통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문제화하느 냐에 따라 답은 우리의 실천 속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될 것이다. 그러므로 실천적 윤리란 내가 막 연히 원하는 이념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사소하고 구체적인 것 하나하나의 삶을 통해 구성되는 됨을 의미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 사안에 관련된 것들을 그 자체로 선/악, 좋음/나쁨 이라고 실체화하여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후쿠시마]의 저자 앤드류 레더바로우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면, “원자 력을 반대하거나 혹은 옹호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모든 기술과 산업, 정부, 국가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가 찾아낸 가장 흥미로운 정보들을 조합했을 뿐이다 (서문, 15쪽)” 우리는 그 정보들을 어떻게 문제화할 것인가? 아마도 생-기 세미나에서 함께 읽고 고민한 텍스트들은 답이 아니라 문제=질문(=실천)으로 던져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시즌 3을 마치고, 스스로에게 풀리지 않은 지점에서 좀 답답했다. 그 답답한 심정에서 생각이 딱 멈추 었는데, 원자력에 대해서는 닥치고 나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 렸을 적부터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관념, ‘원전은 무조건 세상에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감정에 여전히 압도돼, 스스로의 견해를 확장하는 방식의 문제화로 넘어가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 까? 나 자신의 습관적 판단이 작동됐을 때, 생각이 멈췄을 때, 거기서부터 생각이란 것을 다시 해보기로 했다.
지난 시즌에서 디지털 기술을 지정학적 문제로, 육식-동물살해를 성정치의 문제로, 이분법적 판단에 매몰되지 않고 근원적 질문을 통해 사안이 입체적으로 문제화되는 과정을 배웠다. 그렇다면 전 세계 바다로 흘러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점에서 원자력을 어떻게 문제화시켜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핵물질 이면을 파헤치고 드러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갈래의 문제를 직면했다.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인 성장 담론의 환상, 자본주의 토대에서 노동의 가치가 돈의 가치로- 모든 존재가 돈으로 환원되는 폭력이 착취와 재난을 끝없이 재생산하고 있음을 목도했다. 나 자신이 그 폭력에 어떻게 저항할지, 자기 혁명을 이루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다. 부정적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할 뿐 아니라, 무조건적인 비난과 비판도 폭력이며, 또 무지와 무능이라는 점을 스스로 반성해 볼 것이다. (채운샘이 질문도 다 떠먹여 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스스로 문제화하는 법을 모른다는 의미에서 갈 길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가는 이들이 있으니, 그 덕분에 나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어 참 다행이다. 우리 모두 파이팅!(나인영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