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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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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세미나’ 시즌4가 시작됐습니다. 지난 시즌에 비해 참여하시는 분들이 두 배로 늘었어요.@@
크크랩 팀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요. ‘크크랩’ 그러면…뭔가 게 무리들이 옆으로 경쾌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늘 연상됩니다. 생동하는 팀명입니다.
이번 시즌의 메인 텍스트인 <생동하는 물질>을 저는 수많은 개념의 바다에 던져져 가라앉기 위해 배영을 하는데 또 다른 개념의 빗방울이 우수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느낌으로 읽어가고 있어요. 채운 샘 말씀처럼 저자가 주장하는 바의 맥락에서 그 개념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잘 파악해 보며 너무 겁먹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민호샘은 책을 읽을 때 꼭 짚고 가야 하는 여러 핵심 개념을 완벽하게 정리해서 후기로 올려주셨어요.
음…책을 분명히 꼼꼼하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꼭 붙들고 가야 하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저는 완전히 놓치고 있었더라고요. 서론에서부터 저자는 분명히 볼드체까지 동원해서 이를 강조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세미나 멤버들도 조금씩은 혼돈을 겪고 있는 듯했습니다. 물질, 생기, 정동 개념들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어요. 특히 ‘정동’에 대해서 각자 느끼고 있었던 생각들이 참 다양했어요. 특정 단어에 관해서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개념들은 책을 읽는 과정을 통해 수정되었고, 세미나 시간에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도 여러 번 즉각적인 변형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생기성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냐?”부터 “정동은 배치의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사건인가?”, “상호작용의 문제는?” “물질들의 정동은 우리가 물질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정동도 물질이 느낀다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정동은 너무 인간 중심주의적으로만 해석한 게 아닐까?”, “정동은 인식 전에 이미 네트워크로 존재하는 가능성이지 않을까?”, “사물의 정동은 인간의 인식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외-부에 존재하는 것인가?”, “정동에서 상호작용성이 중요한데 그럼 나는 돌에게 무슨 정동을 일으켰는가?”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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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인간의 신체에 제한되지 않는 ‘정동’으로 나아갈 것이다” (p16)
“황홀함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두 방향을 강조한다. 첫 번째 방향은 황홀함을 느끼고 그럼으로써 행위 역량이 강화되기도 하는 인간을 향한다. 두 번째 방향은 인간과 다른 신체에 효과를 만들어 내는 사물의 행위성을 향한다.” (p17)
“유기적 신체와 비유기적 신체, 자연의 대상과 문화적 대상 모두가 정동적이다.”(p17)
“나는 물리적 신체에 들어가 그것에 영혼을 불어넣는 별개의 힘을 상정하지 않으며, 정동을 물질성과 동일시한다."(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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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에서 1장에 이르는 부분에서 ‘정동’에 대한 저자의 주장만 유의해 살펴보아도, 인간 중심적이고 주체 중심적이고 일방향성으로 인식되었던 ‘정동’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생기와 정동을 원래 있는 것으로,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실체화하는(17세기 생기론) 전제부터 잘못되었고, 그 잘못된 전제에서 시작된 각자의 의문은 적절하지 않은 방향의 질문으로 흘러갔습니다.
채운 샘은 특별히 다음 항목들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였어요.
1.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쓰는 ‘생기 혹은 활기’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볼 것
2.‘비유기적 생명’이란 말에서 의심 없이 쓰인 ‘유기적=생명’의 공식을 의심해 볼 것
생기를 불어넣는, 어떠한 행위를 하는, 극적이고 미묘한 효과를 생산해 내는, 활기 없는 사물들의 기이한 능력(p46)에 주목하자며, 채운 샘은 앞서 큰 논란거리였던 무기물의 대표주자 ‘돌'을 우리 앞으로 굴려오셨습니다. 내가 큰 돌을 밀었을 때 돌이 안 밀리는 것은 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돌이 나에게 작용하는 것으로, 결국 돌과 내가 함께 작동한 결과라는 거죠. 내가 미는 힘은 나를 미는 다른 힘과의 작용 속에서 나타나요. 그러나 나의 힘과 돌의 힘의 단순한 ‘상호작용’하고는 또 조금은 미묘하게 다르다고 합니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는, 능동만도 수동만도 아닌, 동시적으로 펼쳐지는 세계에서, 끊임없이 창발되는 정동 속에서, 우리의 ‘천지만물-되기’는 어떤 또 다른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집 앞마당 배롱나무는 저를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요?
궁금합니다.
'배롱나무는 나를 좋아할까?'
이 질문과 더불어 사물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달라지기 시작할까요?
정동을 정확히 물질과 동일시하면서, 존재들이 따로 또 같이 참여하고 참여시키고 있는 장-배치에 들어선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행동을 어떻게 바꿀까요?
개념 비가 우수수 내리는<생동하는 물질>을 지나가 무지개가 뜬 세계를 조금이나마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정성 어린 후기 잘 읽었습니다!
은동샘 특유의 '하하' 웃음소리가 들리는 후기 잘 읽었어요~~ 개념의 바다에서 배영 중, 개념의 비를 맞는 기분!!! ⊙﹏⊙∥
샘의 절묘한 표현에 100% 공감하면서 얼른 자세를 바꿔 헤엄쳐 나가야 하겠군요! 서투르고 헤매더라도 함께하면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기도 하죠. ( *^-^)ρ(*╯^╰)
샘이 정리해 주신 대로 저희가 놓친 중요 지점들을 복기하면서 나머지 장을 접근해 보면, 제인 베넷의 문제 의식과 주장의 맥락을 놓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과제가, 오히려 저에겐 늘 생각하는 죽음을 다르게 사유하게 해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또 지금까지 인간중심주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여겨왔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삶이 인간-비인간 요소의 연합으로서 영위되고 있다면, 도덕적 책무와 정치적 책임에 대한 기존의 개념이 어떻게 진화될 수 있을까요?
한편으론 저라는 존재의 규정성이 확~~확장되는 기분이 드는 동시에, 저의 공감능력의 진실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저희가 요즘 배우고 있는 [논어]에서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仁'한 마음을 갖는 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함께 생각해 보면서요.
만물에 대한 '仁'한 마음과 실천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오늘 줌에서 만나여! o(* ̄▽ ̄*)ブ( ̄▽ ̄* )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