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수빈입니다.
서프라이즈로 제안 받은 후기 작성이라 빠진 내용이 많습니다. 모자란 부분은 편하게 댓글로 메워주시어, 우리의 두번째 세미나가 보다 알차게 기록 될 수 있도록 도움 부탁드립니다. ^^
<우리에게 던져진 세 가지 질문>
- 물질에 대한 '생기적 유물론'적 이해가 인간을 이해하는데 어떤 다른 실마리를 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생태적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아주셨습니다. 비인간물질들 역시 사물-권력을 통해 인간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생기적 물질이라는 동일한 층위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비인간인 동물, 식물, 지구, 상품을 폭력적으로 착취,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 '생동하는 물질'이라는 개념으로 핵발전과 핵무기를 본다면 뭐가 다르게 보일까?
우리는 인간이 '발견/발명'해낸 것에 대해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생동하는 물질이 계획이나 의도를 갖지 않고 다른 사물과 결합하고 교호 작용을 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오만함을 버리고 핵발전과 핵무기가 행위소로서 발휘할 힘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갖고 조심스러워질 것입니다.
시국과 맞물려 후쿠시마 핵 폐기수 방류,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과 맞물려 핵의 위험성을 더욱 실감하고 염려하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다른 물질들보다 더 큰 사물-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 ’핵’을 어떻게 다뤄야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는데요, 이에 대해 핵 물질의 ‘더 큰’ 사물-권력은 그 자체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행위소들과 맺어지는 교호작용의 결과라는 의견을 중심으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채운선생님이 세미나 말미에 던져주신 맺음 질문 부분에서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과학이 '물질'을 다룬다고 할 때 물질의 범위가 어디까지고 그게 어떤 점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을까?"
생기적 관점에서 물질은 다양한 배치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 영향을 발휘합니다. 따라서 행위소로서 작용하는, 인간-비인간을 막론한 모든 물질이 생기적 존재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그 범위 또한 확장될 것입니다. 이는 기존의 정치관에서의 인간으로 한정지었던 이해당사자를 모든 물질로 확대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은연중에 인간계와 생태계로 분리하여 생각했던 정치의 장을 전 지구적으로 확대해야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생태의 문제가 곧 정치적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다시 2번문제와 이어서, 원자력, 핵발전 문제 또한 기존의 정치적 관점이 아닌 확장된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얼마 전 생기 세미나에서 참석한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에 갔을 때 집회의 구호가 양당 정치의 판에서 도구적으로 이용되거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생기적 유물론이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본다면, 보다 다양한 주체의 시각이 등장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물질에 대한 나의 이해가 어떻게 바뀌었는가?’_마무리 질문>
‘생동하는 물질’을 마무리하며, 채운 선생님께서는 염두에 두어야 할 한가지 질문을 주셨습니다. 물질과 생기를 언어적으로 다루다보면 마치 생기가 물질이 가진 성질인 것처럼 이해하기 쉬운데, 사실 생동 자체가 물질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실재하는 고정된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운동, 과정, 사유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가령 원자가 운동한다는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원자가 있다는 것을요.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보, 글이라는 것도 끊임없이 흐르는 생각 속에서 붙들린 것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생태계는 상호 변환의 장이며, 물질은 이러한 배치,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핵을 이야기할 때도, 우라늄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발견되는 과정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배치속에서 그 자체로 영향을 발휘하는 효과가 곧 사물-권력이며, 이 권력/작용은 변화하는 배치의 국면속에서 계속해서 달라진 다는 것이죠.
물질이 독립적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다는 것. 보이지 않는 배치과 관계 속에서 엉켜 있는 생동하는 물질-권력을 느낀다면, 이 지구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새로운 감각으로 느껴질 것 같습니다.
확실히, 농축 우라늄을 '강력한 행위소'로 볼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중성자 연쇄반응은 너무나 무섭지만, 그런 반응조차 그 폭발을 감행하게 하기 위한 어마어마한 실험실과 실험장과 대학들과 국가 등의 행위소와 배치들(오펜하이머 영화에서 봤던 맨해튼 프로젝트) 전쟁, 이데올로기, 신화, 심지어 투하지를 히로시마로 정하게 된 이유, 방사능에 대한 규제법 등등 의 복잡한 배치 등이 있었습니다. 객관적 과학 기술 자체는 없으며, 그 기술을 만들어내고 원하고 상업화하여 현실화하는 배치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핵을 둘러싼 모든 연구와 산업은 정치적이지만, 그것 역시도 인간만의 정치는 아니라는 점이 저희가 뼈저리게 기억해야 할 점인듯 합니다. 그 정치에는 핵실험과 오염수로부터 더 직접적인 피해를 받아야 하는 바다의 비인간 존재들이 이미 참여하고 있고, 점점 더 많이 참여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떼죽음'과 '독성'으로 인간 밖에 모르던 정치를 뒤흔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넷의 사유는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말에 섞인 위계와 친연성을 계속 유보하고, 소리내고 꿈틀거리는 존재들의 힘에 주목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로 바쁜 주간에도 이렇게 갑작스런 후기 부탁을 받아주시고 적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