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세미나의 첫 번째 주제는 ‘디지털’이었습니다. 저희는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라는 책을 함께 읽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만난 책 중 가장 충격적이었고, 피부에 와닿는 고민들과 질문들을 일으켰으며, 무엇보다도 나와 우리의 일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만큼 함께 읽고 고민을 나누고 싶은 텍스트였습니다. 세미나도 흥미진진했는데, 경덕샘이 후기에 잘 정리해주셨으니, 저는 제 나름대로 오갔던 이야기와 들었던 생각들을 주섬주섬 모아 적어보겠습니다.
디지털의 하부구조를 지각하기
“디지털 산업의 성장은 아닌 게 아니라 세쿼이아 숲의 성장 혹은 대양의 산성화에 비견할 만하다. 분명 실제로 존재하지만 육안을 통해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으니까. 지각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이해하기도 어렵다.”(17쪽)
사실 디지털이라는 것은 우리 시대의 그 어떤 사안들보다 문제화하기가 어려운 영역입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범주화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죠. 대체 ‘디지털’이 뭘까요? 우리는 곧바로 온라인, 웹사이트, 가상공간, 서버, 네트워크, 클라우드 등의 모호한 말들과 함께 무형적이고 무한한 허공과도 같은 영역을 떠올립니다. 손에 만져지지도 않고 이런저런 부산물도 남기지 않는 탈물질화된 순수 정보의 공간. 하지만 과연 ‘비물질’이라는 것이 물질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정보나 데이터라고 불리는 그 어떤 코드도 그것을 담아내는 물리적 구조물 없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탈물질화된 영역이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주입된 환상입니다. 우리가 한 번도 ‘온라인’을 가능케 하는 ‘오프라인’, ‘클라우드’를 가능케 하는 ‘데이터센터’, ‘서버’를 가동시키는 막대한 물, 가스, 광물, 대기인력에 대해 질문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조건들 때문에 생겨난 환상입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디지털은 자신의 비물질적 차원을 유지하기 위해 소모하는 무시무시한 물질적 하부구조를 필요로 합니다. 사실 우리로서는 디지털이 뿌리내린 인프라를 한 번에 지각할 방법이 없는데, 그것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전 지구에 퍼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듣는 것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기기들의 스크린입니다. 우리는 보고, 터치하고, 듣고, 말할 뿐이죠. 하지만 그 기기들은 어딘가에서 만들어져야 했고, 충전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벌써 디지털은 거대한 제조산업체와 닿아 있고 수많은 광산과 발전소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지털은 데이터를 전송받고 전송해야 합니다. 그 데이터는 어디에 저장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이동할까요? 우리는 종종 카카오 서비스가 잠시 정지되어 관련된 서비스 전부가 먹통이 되는 상황을 겪는데요, 이는 카카오사가 기반한 데이터센터에 불이나거나 전기 및 냉각 자원이 조달되지 않아서입니다. 우리의 기기들로 쏟아지는 모든 이미지, 영상, 웹페이지 등의 데이터는 ‘저장소’에서 오는데, 그 저장소는 희토류 광물들과 전선들로 제조된 단단하고 무거운 기계장치인 ‘서버’입니다. 데이터센터는 그 서버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건물이고, 상상할 수 없는 양의 전기를 먹고 뜨거운 열을 내뿜습니다. “데이터센터를 구성하는 몇몇 부품들의 온도는 섭씨 60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최적화된 작업 환경에서라면 데이터 농장은 상온 20도에서 27도 사이로 유지되어야 한다.”(163쪽) 사람 한 명 살지 않는 건물을 식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는가를 이해한다면 디지털의 탈물질화가 허구임은 명백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환상을 부추기는 강력한 오해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데이터의 ‘전송’이 허공에서, 무선으로, 통로 없이 이뤄진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중 압도적 다수는 우리가 하는 통화며 우리가 주고받는 사진, 동영상 등이 우리 머리 위로 날아다닌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 오늘날 전 세계 트래픽의 거의 99퍼센트가 공중이 아닌 지하, 그리고 바닷속에 펼쳐진 벨트를 통해서 이루어진다.”(245쪽)
우리는 ‘모바일’ 기기를 들고 다닙니다. 그래서 쏟아지는 데이터와 우리가 쏘아보내는 데이터가 마치 인공위성을 향해 하늘로 뻗어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무선 통신은 데이터의 여정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할 뿐입니다. 무선 통신은 지하철 한 정거장도 가지 못하고 안테나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안테나는 모두 ‘유선’으로 이어져 있지요. 어디서든 초고속 인터넷이 터지는 한국은 셀 수 없이 많은 거대한 안테나가 심어져 있는데, 5G를 네트워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거의 100미터마다, 그러니까 버스 정류장이며 가로등 혹은 광고판 등마다 하나씩 설치되어야”(200쪽) 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땅 속에서 거미줄 같은 유선으로 연결되어 데이터센터로 이어지고, 저 멀리 대양을 건너 또 다른 유저들의 단말기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바닷속에는 해저케이블이 깔려 있습니다. 북극의 빙하 아래로까지 무수한 가닥의 해저케이블이 촉수처럼 늘어져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누른 ‘좋아요’는 그 수륙양용 고속도로를 따라 태평양을 건너 미국 서해안에 도착하고 육로를 따라 페이스북의 데이터센터로 달려갑니다. 여기에 비물질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그 모든 통로는 광섬유와 구리와 알루미늄과 폴리에틸렌과 고무로 만들어진 ‘전선’입니다. 그리고 길어야 수명이 25년밖에 안 되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심해 속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케이블이 노후화되어 방치되고 또 설치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의 혈관이자 신경입니다.
디지털은 그 인터페이스들의 물리적 제조 산업뿐 아니라 통신망을 가동시키기 위한 유선 연결망과 서버, 전기, 물, 희토류, 전문인력, 전부를 포괄합니다. 우리가 ‘클라우드’로만 묘사했던 디지털 세계는 “데이터센터, 수력발전용 댐, 화력발전소, 전략 금속 광산 등으로 형성된 ‘인프라 월드’”이며, 그 시설들을 작동시키기 위한 “사업가들과 어부, 광부, 컴퓨터 과학자, 석공, 전기기술자, 청소부, 수차 운송업자들을 태운 해저케이블 부설선과 초대형 유조선들”(19쪽) 모두가 ‘직접적인’ 디지털 왕국의 역군들입니다. 디지털 산업이 생태 문제에 있어서 가장 묵직한 무게를 차지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지각되지 않는 것과는 싸우기가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웹에서는 도처에서 자신을 드러내면서 오프라인, 즉 현실 세계에서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171쪽)으려고 온갖 전략을 사용합니다. 디지털 기업들은 “물리적 실체를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는 전략들”을 감행하는데, 데이터센터를 지을 때는 병풍 회사를 세워두고 시공사나 지자체 공무원들에게는 기밀 유지 조건을 내겁니다. 자신들의 물질적 흔적을 지워내는 것이죠. “그래야만 데이터 사업 기업들의 물이며 전기 소비량 등이 공개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172쪽) 반생태적이라는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그 산업시설의 가동에 조금의 제동도 없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래야만 데이터센터의 에너지를 대기 위한 수력 발전소로 인해 지역의 강이 말라버려도 주민들이 기업에 항의하거나 센터를 공격하는 마찰이 빚어져서 “생산 리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반대 움직임이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172쪽)입니다.
이 책은 좀처럼 지각되지 않는 디지털의 물질성을, 그것도 막대한 생태발자국을 남기는 치명적 물질 소모적 성격을 가시화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어떤 조건들과 전략들이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지각하기 어렵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물론 지각의 어려움은 단지 기업 때문만은 아닌데요. 거기에는 분명히 우리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빨리빨리’의 욕망, 예쁘고 편리한 것에 대한 추구, 새 기기에 대한 소비욕구, 자극적 컨텐츠에 대한 끌림 등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산업을 만들어 낸 것도 결국 우리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실천은 도처에 있다, 감염시키자!
사실 이 책을 읽어갈 때에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고 맙니다. 이미 우리의 생활과 일, 공부, 여가, 쇼핑, 금융, 소통 등 모든 일상이 디지털 산업 없이는 아예 운영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파괴적인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그것의 성장에 있어서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세미나 때에는 그러한 막막함을 함께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뭐라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어플 몇 개를 지워보지만 이내 다른 어플을 깔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나왔죠. 결국 자기 자신의 욕망과의 싸움이겠구나, 하는 다소 기운 없는 고백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디지털 산업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개개인의 욕망을 자제하고 가책하며 인내심을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을까요?
그것은 함정입니다. 물론 무분별한 접속과 소비 습관을 문제 삼는 것은 중요합니다만, 그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부당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망 역시 배치 속에서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업들은 모든 자본력을 동원해 공학, 예술, 디자인, 심리학 분야의 엘리트들을 데려다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접속하고 클릭하고 소비하게 만들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적어도 휴대폰을 150회 들여다보게 하려는 목적에서 개발자들이 다듬어 놓은 ‘조작의 틀’”(210쪽)은 엄청나게 방대하고 디테일합니다. 우리의 말초적 감각을 작극하는 미세한 색깔과 편안한 캘리그래피를 연구하고, 미적인 디자인을 만들고, 매년 새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도록 ‘계획적 구식화’를 하고, 일체형으로 만들어 고쳐 쓰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지요. 또한 묻지도 않은 채 5G를 설치해서 말도 안 되는 속도 감각에 중독되게 합니다. ‘수요 없는 공급’을 쏟아부으며, 어떻게든 서비스에 휩쓸리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업대표들은 뻔뻔하게도 각자의 ‘자유의지’ 운운하며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203쪽)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신을 단도리하기에 앞서, 디지털 산업의 이러한 집요함과 후안무치, 자본의 생리와 뻔뻔함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이 어떤 조건에서 불거지고 있는지 알고 나누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중요한 한 스텝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책을 혼자서 열심히 읽는다 해도, 현실로 돌아오면 유튜브를 채운 새로운 컨텐츠들과 울려대는 SNS의 메시지들, OTT의 영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디지털 산업이 발생시키는 탄소량과 물질 소비를 알고 있는 채로 이러한 현실을 혼자 맞이한다는 것은 쓰라린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앎을 무시하거나 삶을 무시하고 말 것입니다. 함께 하는 공부가 실천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러한 문제화를 같이 시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습관, 경험, 충격, 걸려 넘어지는 지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데이터 소비량, 우리가 활용 중인 기기들과 그것을 구매하게 된 계기, 사용하는 웹페이지, 클라우드와 원드라이브에 저장된 파일들의 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지금 누리는 매끈한 서비스들과 기기들에 생략된 하부구조나 투입된 물질량(MIPS)을 함께 상상할 수 있습니다. 원치도 않는 소비의 경험과 기쁘지 않은 컨텐츠 시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욕망과 속도 감각이 생산되고 부추겨지는 배치에 대해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다른 감각을, 느림을 견디는 것이 더 멋있고, 데이터를 덜 소비하는 삶이 더 생태적일 뿐만 아니라 자유롭다는 감수성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과 주의를 온전히 내어주지 않을 훈련은, 그 폭풍들을 혼자 맞이하지 않는 데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읽고 듣고 나눈 이야기들을 퍼뜨리기. 공부의 실천, 공부로서의 실천은 ‘감염’에 있습니다.
출발의 지점은 기쁨/슬픔의 정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디지털이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지구와 우리의 감각에 파괴적인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상상 이상의 해방과 복지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이라는 문제를 실감하고 함께 공부하는 일 조차도 이 세미나를 통해서 이뤄졌으며,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라는 이 책 자체도 인터넷과 서비스들을 경유하지 않고는 우리 손에 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도 하고 부자유하게도 하는 이 디지털 서비스에 대해 어느 수준에서 맞서고, 어느 포인트에서 제동을 걸어야 할까요?
채운샘께서는 저항의 출발점은 바로 우리의 감각이라고 하셨습니다. ‘불쾌감’, 그것이 임계점입니다. 모르는 개념을 검색하러 인터넷을 켰다가 엉뚱하게 그릇을 주문하고 나오는 경험, 10초짜리 유튜브 쇼츠 영상들을 넘기며 두 시간을 훌쩍 보내는 경험은 결코 기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쾌감을 줍니다. 이것은 마음먹고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때에는 느껴지지 않는 불쾌함입니다. 대체 이 기분 나쁨의 정체는 뭘까요? 이용을 한 게 아니라 이용을 당한 느낌, 자신이 바보 같고 한심하다는 느낌. 수동성이 능동성을 압도하는 지점, 바로 여기가 출발 지점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슬픔의 정서입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온갖 기술적 조작에 의해 오직 우리의 시선을 뺏으려는 목적 하나만 있는 컨텐츠에 그저 반응을 하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은 숨도 편안히 쉬지 못할 정도로 최소한의 움직임(눈동자)만을 취했고, 아무런 새로움도 생산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 미세한 정서적 경험에 주목하면서 도구들과 관계할 때, 실천의 길은 다르게 열릴 수 있습니다.
‘한계’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데이터 무제한, 초스피드, 광속 등의 용어들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자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신체는 무제한이 아니라 제한 앞에서 훨씬 더 활발하고 유연하게 깨어납니다. 데이터가 충분치 않을 때, 우리의 ‘온라인’ 접속은 줄어들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오프라인’ 접속이 활성화됩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보게 되고, 사람들을 보게 되고, 찾아오는 생각들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핸드폰을 끌 때, 셋톱박스를 뽑을 때, 디지털 생활이 정지할 때 시작되는 상당히 풍성한 관계들이 있습니다. 데이터의 양과 접속의 속도에 있어서 한계를 둔다는 것이 주는 긍정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자유나 능동의 느낌은 한계 없음보다도 한계 있음에서 더 많이 시작되지 않을까요.
오호~~ 민호샘, 후기 잘 읽었어요! 민호샘이 올해 만난 책 중 가장 충격을 준 책!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를 함께 읽은 팀원으로, 이 후기의 단어, 문장, 호흡과 정서까지 모두 쏙쏙 읽히고 맘 깊이 느껴진다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ㅋㅋ 시간이 지나 이렇게 후기글로 복습하니, 세미나 팀원들과 함께 진지하게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새록새록 합니다. 이후 우리들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의 지점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 스스로 해이해졌다 싶을 때마다 이 후기글을 다시 읽기로!
o(*^▽^*)┛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디지털 다이어트 기록을 시작했는데, 조금 써보면요...༼ つ ◕_◕ ༽つ
이용하지 않는 사이트 계정에서 구매 기록을 지우고 탈퇴하기
장바구니와 위시 리스트에 상품 담아 놓지 않기 --> 새 물건 구매하기 보다, 가지고 있는 물건 오래 쓰기로!!!
유튭 영상 테이터 절약 모드(360 P)로 설정해 놓기 --> 요즘 기기들 디스플레이가 넘 좋아 굳이 1080P로 보지 않아도 화질이 좋다는 것을 알았음!!!
인터넷 상에서 취합되고 있는 검색과 위치 기록 알고리즘을 나 자신을 관리해 주고 유용한 정보 제공해 주는 무료 천재 비서라고 착각하지 않기
--> 검색기록을 하지 않는 '덕덕고'를 컴, 모바일에 깔고 이용하기
앞으로 ❤️👍좋아요 누르면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거나 스스로 그런 느낌에 속기 보다는,
세상에 기쁨이 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 그 좋음을 함께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_-)db(-_^)
민호샘, 후기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