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원자력 마을은 쇼리키가 전시회를 열던 시절부터 대중 여론이 반대자들의 외침에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완벽하고 절대적인 안전'이라는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제시해 왔다. 이 메시지는 원자력 산업이 다른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에 "안전성 신화"라고도 알려졌다. 절대적인 안전이란 규제 당국이 그러한 정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이해 속에 성취하려 애쓰는 이상적이고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막연한 목표다. 일본 전역의 전력회사들은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도 이 신화와 다른 믿음들을 주입하기 위해 1970년부터 2011년까지 광고와 홍보에 총 175억 달러 이상을 썼으며 특히 도쿄전력이 가장 많은 돈을 퍼부었다. 정부가 지출한 비용까지 포함하면 연간 홍보비가 24억달러를 넘어선다. 비교를 위해 예를 들면 후쿠시마 참사가 일어나기 바로 전인 회계 연도 2010년에 일본에서 홍보비를 가장 많이 쓴 기업은 8억8천만 달러를 넘긴 파나소닉이었다.(앤드류 레더바로우, <후쿠시마>, 안혜림 옮김, 145쪽, 브레인스토어, 2022)
국무총리는 기준에만 부합하면 오염수를 마셔 보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염수(뻔뻔하게 처리수라고 부르려다 제지당한 그 물)를 방류하자는 정부(일본이 아니라 한국정부)의 기막힌 태도는 변함이 없고 다양한 비난이 쏟아지지만 사태는 요점을 계속 빗나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문제의 구도가 '안전하다'와 '안전하지 않다'로 설정되는 것은, '외교적 능력이다'와 '외교적 수치다'의 대립 만큼이나 많은 함정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반대하는 이유가 '안전'인 만큼이나 골빈 사람들이 방류를 찬성하며 나서는 근거도 수치에 의존한 '안전'입니다. 그러나 안전은 대체 누구의 안전일까요? 기준은 누구의 기준일까요? 그 기준을 정하는 일에는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는 과연 어느 정도로 후쿠시마를 알까요? 원자력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그는 일본의 원자력 산업이 어떤 열망과 가시밭길 위를 걸어왔는지 이해해 본 적 있을까요? 아주 잠깐이라도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논리를 의심해 본 적 있을까요?
생각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다른 이야기들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뉴스와 유튜브가 퍼나르는 자극적인 이슈들로는 부족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 난리통에 할 수 있는 제가 말이 별로 없음을 느낍니다. 시끄럽게 들려오는 소리들 중 뭘 붙잡아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기회가, 특유한 역사와 촘촘한 배경을 보여주는 텍스트를 만날 기회가 생겨서 기쁩니다. 겁에 질리거나 한 가닥 정보에 신봉하거나, 두 가지 무력한 길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생-기 세미나 세 번째 시즌에는 <후쿠시마>를 읽으며 오염수의 시대를 살아나갈 배움의 연대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첫 시간(6.20)에는 원전 사고의 모든 전조가 남아 있는 1990년대까지를 다루는 1~5장(16~213쪽)을 읽고 모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우리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들, 충격들, 놀람들을 A4 한 장 이내로 간략히 적어와 이야기의 재료로 삼아보아요.
그럼 화요일 저녁 6시 30분, 줌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