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방학에 모두 평안하셨는지 일찌감치 반짝반짝 빛이 나는 얼굴들이 하나둘 공부방으로 반갑게 모여들었다. 새롭게 정랑샘과, 혜원샘, 이인샘이 합류하시니 자본세미나의 기운생동, 원기충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구분되는 홉스봄은 19세기를 장기 역동의 시대로 분석하여 3권의 시리즈를 저술했다. 혁명의 시대(1830~1848), 자본의 시대(1848~1875), 제국의 시대(1875~1917). 이번에 <자본의 시대>를 읽는다. 홉스봄은 극단의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 고착되지 않았던 근대 자본주의시대 복수의 다양한 원인을 실증적 사실과 연결하고 종합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며, 현재 우리가 애초부터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던 것에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어서 생각해 볼 지점이 상당히 많았다. 왜? 어떻게? 그때 그렇게 되었던가,
왜 1848년 혁명은 실패한 것인가? 왜 혁명을 이끈 자유주의자들은 왜 보수주의로 돌아섰나? 19세기 자본주의는 어떤 과정과 경로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나? 혁명의 실패와 세계화는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어떤 의미인가?
홉스봄의 글을 읽으면 위와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유럽의 역사를 단순하게 연대사암기로 익혀왔던 세계사가 얼마나 미약하고 텅빈 것인지를 확인하게 되는데, 300년간의 혁명과 전쟁의 시간, 그 깊이를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그것이 유럽인들, 나아가 근대인의 사고와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감히 짐작해 보려 한다. 각각의 혁명은 모두 각자의 구체적 삶과 조건에 따라 형태가 달랐다. 대략적으로도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모두가 다른 차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흐름에서 홉스봄은 혁명의 이중성을 말한다. 시민혁명, 부르조아혁명이어야 하는 혁명이 결과적으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노동계급과 더불어 혁명동지였던 부르조아지와 귀족계급이 민주주의적 사회변화, 만인의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혁명의 실패는 여기서 일어나지만, 막후에는 거대한 변화가 연결되어 있었다.
“공화제를 타도하자, 황제만세!” 농민들의 슬로건은 보통선거를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왕정을 향했다. 이 장면은 우리시대에도 반복되는 것이라 기시감이 들 정도다. ‘잘먹고 잘살게 하겠다’라는 허구적 말이 다양한 이견을 압살해버리는 것을 선거판 때마다 만나게 되니. 선거철에만 재래시장과 달동네를 방문하는 의례적 행위를 비판하면서도 무산계급(태극기부대)은 왜 자기존재를 부정하고 자기계급에 반하는 투표를 할까? 농민, 빈민,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며 싸운 투쟁의 단 열매를 자유주의 부르조아들이 따먹을 수 있었던 것은 1848년 대호황에 의해서였다. 지속된 혁명과 전쟁의 피로함에서 안정된 삶을 원하는 것이다. 경제적 안정을 희구하는 마음의 크기가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정치의 시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실 안정된 상태가 허구이고 불확실한 상태가 현실인데? 우리의 무지와 착각을 인지하고 체화하지 못하는 한 불안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틈을 파고들어 변화의 두려움을 더 확대해 공포감을 조성하고 대오를 분열시켜 흐트러뜨리는 이것이 지배권력의 교묘한 선전선동 정치술이다. 1848년 혁명이 실패한 것은 “구체제와 진보적 세력들의 대결이 아니라, 질서와 사회혁명 사이의 결정적 대결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휘감았던 인간의 자유와 평등은 어느 순간 ‘영업의 자유’라는 자기이득을 향한 자유로 방향전환이 되었다. 국가는 간섭하지 말라. 신분제타파. 등 혁명의 혼란과 위협적인 프롤레타리아의 힘에 대한 두려움이 도리어 부르조아계급의 사적소유에 대한 욕망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축적된 자본, 교통통신의 발달, 세계화를 통한 생산과 판매시장의 완성, 등 하나 된 세계는 무에서조차 유를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을 욕망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인간의 욕망이 조건과 배치에 따라 변형된다고 보았을 때 지금은 자본의 시대라 성공의 욕망, 부의 축적을 욕망한다. 우리의 본성 또한 자기를 정립하고자 하고 자기 힘의지를 발현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욕망에 본능이 한 몸처럼 달라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역으로 인간본성 자체가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경제적 인간으로서 시대적 욕망을 본성처럼 당위적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다시 점검해봐야 하지 않을까?
역사라고 지칭되는 어떤 사건과 조건이 획일적, 단선적으로 하나의 시간이라 규정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 혼돈의 시간을 살았던 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조건 속에서 결정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주의, 자유주의 혁명가, 부르조아, 농민, 노동자, 귀족, 절대왕정이 뒤섞여 힘의 차이를 견주고 있는 시대. 샘들이 말씀하셨듯, 자본주의가 본격적 일반화되기 전의 활주로를 닦는 과정, 종잡을 수 없는 혼란과 전환의 시기, 구체제에서 이후 국가주도의 자본주의 이행, 민족과 영토를 기반으로 이른바 제국주의시기로 넘어가기 전, 그래서 홉스봄은 이 시대를 막간극이라 한다. 마치 '서울의 봄'이 연상되는데 모두가 혁명이 끝나고 각자가 고대한 꽃피는 봄을 기다렸던 것처럼 '여러 국민들의 봄'은 각자 다른 생각과 의지의 각축전을 벌이지만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빨려들어가는 중이라는 것.
우리나라 농산물유통의 독점구조를 말하며 모두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책 속의 <산업의 낭만>도 특별했는데, 지금은 노동이 아니라 왜 코인을 하고 싶은가? 연구보다 개발을 요구하는 기술 금융의 시대, 벤처의 모험은 대기업의 먹잇감이 되고 노동이 경시되는 것 같다는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또 재미났던 것은 주역을 공부하신 샘들이 세계사적 변동과 변화를 주역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차면 기운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자연의 법칙과 질서처럼 이런 역사의 오르내림도 우주의 운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답답했던 마음에 변화를 긍정할 수 있는 한줄기 믿음이라! 다음 세미나가 기다려진다.
샘들의 추천-연관해서 보면 좋을 영화
<미안해요, 리키> 자본의 원리
<올드 오크> 영국소도시 시리아 난민의 삶
오! 영화 추천까지 아주 알찬 후기네요!
세미나 때 기억이 다시 새록새록 솟아납니다.
“왜 1848년 혁명은 실패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 하나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게 흥미롭습니다. 홉스봄의 다른 저작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고, 발전과 성공을 바라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돌아보게 되네요!
다음 시간이 또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