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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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 팀은 지난 6주 동안 마르크 블로크(1886-1944)의 《봉건사회,(1939)》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몹쓸 고질병이 도져 2주간 결석한 탓에, 진도를 따라잡는 데 마음이 조급해져 그만 ‘드라마 1.5배속으로 보기’를 시전하고 말았습죠. 그렇게 텍스트의 마지막 장을 향해 막 달리고 나니 머릿속엔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들로 뒤죽박죽…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피날레에서 맛보는 묘한 감동도 있었습니다. 그 감동이란 ‘마르크 블로크’가 누군지도 몰랐던 이가 그의 저서 한 권을 거칠게나마 읽고, 새롭게 알게 된 뒤통수 맞는 기쁨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느낀 블로크의 《봉건사회》의 가장 큰 매력은 ‘그러나’로 함축되기 때문입니다. 세미나에 참여한 팀원들 뒷머리를 때리고, 불확실성의 세계, 브라운 운동에 던진 그 ‘그러나’ 맞습니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는 모든 문단이 ‘그러나’로 시작하는 것을 보고 결국 웃음이 났죠. ‘그래서’라는 인과적 설명과 단일한 이해 용법에 너무나 익숙한 저 스스로를 치유할 특효약-블로크의 《봉건사회》, 이 약발이 잘 작동되길 빌어 봅니다.
“마르크 블로크는 1886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때 보병대위로 참전였고, 종전 후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기적을 행하는 왕,(1924)》,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 성격,(1931)》을 저술. 1936년 소르본대학교 경제사 교수로 임명, 《봉건사회, (1939)》를 저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발발했을 때 53세의 나이로 자원입대하여 참전, 프랑스군이 무력화된 뒤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 1944년 독일군에 체포되어 총살당하였다. 사후에 《이상한 패배,(1946)》와 《역사를 위한 변명,(1949)》이 출간되었다.”
이와 같이 블로크의 생애를 굵직한 연대순으로 나열하는 것도 역사 서술의 하나이고, 그동안 자료에 근거한 서술 방식이 역사 연구의 객관성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습니다. 이 객관성을 ‘사실’과 동의어로 써왔다면, 그 반대로 주관적 견해는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사료의 객관성을 검증하는 것이 역사 연구가의 역할일까요? 그런데 블로크는 문헌숭배를 경계하면서 “모든 역사 연구는 일정한 탐구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사료의 객관성, 주관성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고, 분명한 자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사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업이 그에게는 중요해 보입니다. 처음엔 이 부분이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수도사들의 기록, 무훈시, saga 등에 담긴 작성자의 의도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 주제의식을 찾아야 한다는 일반적 생각처럼, 사료를 분석할 때 작성자의 의도가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어떤 정답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그 답을 잘 찾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블로크에 따르면 중세 성인이야기는 “실제 성인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 해주지 못하지만 그러한 성인전을 양산하였던 중세인들의 의식구조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 준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블로크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쓰여진 그대로 읽지 않습니다. 사료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여 도식적인 답이 아닌, 현상의 발생적 차원으로 가 거기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역사를 발생적 차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을 때 무엇이 다르게 보일까요?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실체화된 역사적 관념들인 국가의식, 국민감정, 민족성, 조국애 같은 것들이 그 자체로 실체가 없었고, 필연적 진보도 아니며, 어떤 조건에서 발생된 심리 현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놀라웠습니다.
“블로크에게서 유럽 봉건 사회는 내적 필연성에 따르는 역사적 단계로서 출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당시의 특수한 상황의 복합적 작용에 의한 (거의 ‘우연’이라고 까지 할 만한)산물이라고 파악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건사회 1, 53쪽]
이러한 블로크의 분석이 모든 역사적 국면에 적용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내적 필연성에 따르는 역사적 단계로서 출현은 역사는 ‘진보’한다는 관념과 이어지고, 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진보 개념으로 이해하는 방식과 일맥상통해 보입니다. 지금의 지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필연적 진보적 진화의 정점일까요?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질문을 변용해 이렇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죠.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듯 역사를 어떤 시점으로 되돌린다면 같은 역사가 반복될까… 굴드의 말에 따르면, “진화는 진보가 아니며, 진화는 다양성의 증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간같이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 고등한 생물들 역시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성의 증가에서 나온 진화의 부산물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지금의 지본주의와 민주주의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블로크는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금방 눈에 띄는 풍경이나 연장·기계 따위의 너머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차디차게 식은 듯한 문서나 그것을 만든 자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제도의 너머에서, 역사학이 파악해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봉건사회 1, 35쪽]
예술과 역사 모두 우리 삶의 문제를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든 예술 작품이 기존 예술의 정의에 대해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각각의 정의를 생산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로크의 역사책은 전통적인 역사 연구에 대항하여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에 쓰이는 학문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블로크 질문이 그의 문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면, 그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역사적 힘을 믿고 있고 그 마음을 연구하는 역사학을 탐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실마리를 블로크가 언급한 ‘브라운 운동’의 원리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결과로부터 원인을 소급할 수 없는, 단일한 인과적 관계로 파악될 수 없는 사회 현상의 비유로만 이해했죠. 왜냐하면 ‘브라운 운동’은 “꽃가루와 같은 미소입자들이 액체나 기체 속에서 불규칙하게 운동하는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험에서 살아있는 생물의 움직임 때문에 불규칙한 운동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는 부분에서 다른 생각이 이어집니다.
“곱게 갈아낸 무기물, 유리, 금속, 바위 등을 액체에 뿌려 관찰한 결과 꽃가루와 똑같은 불규칙 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고, 이처럼 운동의 원인이 생물에 의한 것이 아닌 물리적인 것에 있다...” [위키백과 참조]
‘브라운 운동’의 원리를 이해해 보면서, 인간의 마음과 그 마음들이 만들어 낸 세계와의 상호 물리적 운동 관계를 상상해 보게 됩니다. 블로크도 그런 의미에서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는 블로크의 문제 의식과 연결해 보고 싶습니다. 시공간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이 세계 전체가 서로 함께! 물적토대, 제도로 환원하여 설명될 수 없는 인간들의 마음과 이 세계가 함께 만들고, 이 세계가 나아가는 것이 역사는 아닐까. 그러니 우리의 머릿속 인과적 이해란 어쩌면 무지에 가까운 것인지도. 어느 한쪽의 의지와 의도와 어느 한쪽의 결과와 책임으로 해명될 수 없는 이 운동에서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변화, 그게 역사이겠죠... 예술이 우리 삶의 문제와 떨어질 수 없듯이, 역사도 같은 맥락에서 물적토대의 변화, 제도의 변화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기록됨으로 기록되지 않은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 심층을 들여다 보는 시도들이 역사 공부를 통해 이어지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철학이든 예술이든 우리가 대면하는 어떤 사건, 문제들을 이해할 때 하나의 관점이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이해하기’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진짜 그 말을 이해하고 그것이 제 머릿속에서 작동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이해하기’란 ‘상호연관 속에서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당위적이고, 수사적 표현으로 써왔을 뿐, 저는 여전히 그 뜻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진짜 구체적인 현행적 문제와 함께 끝까지 파고들어 머리 터지게 고민해보지는 않았다는 점, 그리고 자기 생각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매우 뜨끔합니다.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역사에서는 무엇이 중요한지 질문은 해 본적이 있었을까…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사’라는 관념도 별로 구체적이지 않으면서 역사책이라는 문헌에 부여한 권위는 막연히 가지고 있었죠. 모든 경전은 역사서일 수 있다는 점에는 끄덕이면서, 오히려 역사서를 경전으로 도외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학창시절 시험 볼 때 외운 사건 중심의 역사조차 다 까먹어버려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쫄리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싶어, 앞으로 조금씩 암기해 보는 게 목표입니다. 각자 읽고 있는 텍스트가 공부의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블로크의 말을 덧붙이며 후기를 마칩니다.
"역사책은 갈망을, 즉 배우고자 하는 갈망을, 그리고 무엇보다 탐구하고자 하는 갈망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이 책이... 그러한 욕구를 불러일으켜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봉건사회1, 69쪽]
브라운 운동으로서의 인과, '그러나'로서의 역사, 배우고 탐구하고자 하는 갈망... 블로크라는 사람의 내공이 뿜뿜하고 있군요... 드디어 <봉건사회>를 독파한 이역만리팀 대단!
인영샘의 후기를 보니 감개가 무량하네요. 봉건사회를 다 읽었는데 많은 걸 알았다기보다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선 느낌이 듭니다. 과거를 다루는 것은 사실 현재를 다루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잘 드러난 텍스트 아니었을까...지금 나는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봉건사회보다는 봉건사회를 통해 블로크의 역사론을 공부하신 것 같군요. ㅎㅎ 확실히 블로크의 역사 서술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봉건사회를 읽기란 어렵죠. 왜 사료를 이렇게 취급하고, 역사적 진실을 구성하는 근거는 무엇이고,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지 등등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함께 던지지 않으면, 왜 이렇게 쓰는지 불만만 가득하게 되죠. ㅋㅋ 일단 앞으로 굵직한 사건을 공부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겠다는 발심은 접수했습니다! 천년만년 쭈욱 같이 이역만리에서 역사를 공부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