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의 ‘문치주의’와 ‘세폐’
6권의 수호전 중 벌써 3권을 읽었습니다. 수호전 1권과 함께 시작한 중국 송(宋, 960년~1297년)대의 역사공부도 세 번째였습니다. 이번에는 송대의 상업과 생활양식을 공부는데요, 이번에는 문빈샘이 송왕조가 ‘문치주의’를 정치이념으로 내세운 배경을 그 전 왕조인 당(唐, 618년~907년)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해주었습니다. 당과 송의 교체기에 새 왕조는 지방의 세력이자 무관이었던 절도사를 해체해야 했고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집단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유학자 집단. 당 시대의 예술이 귀족중심적이고 형식적(?)이었다면 송대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예술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지적인 관심사와 과학기술이 발달해 역사상 획기적이라 할만한 발명품들이 송대에 만들어졌다고 해요. ‘활자 인쇄, 화기 제조, 나침반’. 사대부라 하면 기술을 등한시하고 책만 읽으며 정쟁을 일삼았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송대에 과학기술의 발전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연암일파도 있었군요.
송의 주변국에 유목민들이 세운 나라들이 유독 많았어요. 거란족이 세운 요, 탕구트 서하 왕국, 대리 왕국, 안남(베트남) 왕국, 티베트와 토욕혼 등. 1127년에는 여진족이 세운 금의 침략으로 수도인 개봉을 포기하고 남쪽 항주로 피난을 떠나지요. 천도 후에도 남송은 152년간 유지됐다고 해요. 송대가 중국의 다른 왕조에 비해 힘이 약했기 때문인지, 아님 유목민들이 그당시 유독 강력한 통일왕조를 만들어 송을 위협한 탓인지 송 왕조는 허약하다거나 군사력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요.
그런데 경제력이 꼭 군사력과 함께 가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공부를 하면서 ‘세폐’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요. 송대에는 군사력이 취약해서 주변국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세폐(歲幣)를 주변국에 주었다고 해요. 전쟁이나 침략을 당한 이후 평화협정에서 현물 보상을 약속한 것이지요. 전쟁보다는 안정을 통한 경제번영을 유지하고 싶었겠지요. 평화를 돈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해야할까요? 경제적 번영을 일궈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한 거지요. 요 나라에게만 해마다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냥(3739kg)을 지불했다고 해요. 다른 이민족의 침략시에도 세폐를 보냈구요. 그런데 이 세폐가 차지하는 비율이 조세 수입의 1.5% 수준이었다고 하니 경제규모가 상당했나 봅니다. 문빈샘 말마따나 경제적 부심을 가질 만한 상황이 세폐와 같은 방식을 선택하게 했겠지요?
수호전은 원말명초에 쓰인 책인데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송대 휘종의 시기죠. 등장인물들이 고기와 술을 밥 먹듯이 하는데요. 이것은 송대의 부유함이 반영된 것이라고 이야기 나누었어요.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주막에서 한 명이 고기 몇 근을 먹고, 산채나 장객에서는 각종 짐승을 잡아 손님을 대접하죠. 이것은 주리고 못먹던 사람들의 배부르고자 하는 욕구를 대리충족시키는 차원보다는 부유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해석이지요.
인육 또는 자기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요지경 세상
고기를 떠올리다 보니 사람고기로 만든 만두를 파는 주점이 떠오르네요. 앞선 책에서도 등장했던 부부 손이랑과 장청이 운영하는 주점에 무송과 무송을 유배지에 압송하는 공인 둘이 들러요. 손이랑에게 이 세 사람은 “오늘 물건을 셋이나 잡았으니 여러 날 동안 만두를 만들” 만두속의 재료. 무송을 잡아 고깃감으로 삼으려던 손이랑의 무례에 호걸을 몰라봤다며 양해를 구하는 장청의 말. “큰 덩어리의 좋은 고기는 잘라 황소고기로 팔고, 자질구레한 작은 고기는 만두소로 만들었습니다. 소인이 매일 마을에 가지고 가서 팔면서 살았습니다.” 길손을 죽여 사람고기를 파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삶. 인간의 삶에서 성인과는 정확히 반대 벡터에 있다. 도대체 시내암은 난데없이 이런 인간의 삶을 이야기 속에 집어넣었을까요?
인육을 먹는 행위는 심심찮게 문학작품이나 영화, 회화의 소재나 모티브가 되곤 했지요. 이런 극단적인 인간의 행위를 마주하는 순간 인간의 인간다움을 묻게 되는데요. 이런 질문 외에도 현실을 지탱하는 잔인함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을 죽임으로써 삶과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비단 이들 부부만 그럴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사형집행인, 죽임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들, 군인이나 경찰, 교사 등. 제도 유지란 명분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처형과 처벌을 대단히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만들지만 폭력을 행사하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인간고기라는 말에는 경을 치면서도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물고기라는 말들에서는 잔인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이러니네요.
무송의 형수인 반금련, 그리고 그녀와 사통한 서문경, 이 둘은 무송이 처형하듯 목을 베어 살해했지요. 이 둘을 이어준 왕노파는 법의 판결로 능지처참을 당했구요. 무송의 형인 무대를 이 셋이 공모하여 독살시켰고, 무송은 두 사람의 목을 베어 형의 영전에 바칩니다. 말그대로 이야기 곳곳에 죽음이 난무하고 피가 흥건합니다. 반금련의 죽음을 보다보면 2권에 등장했던 염파석이 떠오르는데요. 이 두 사람은 대부분이 남성 캐릭터인 수호전에서 만나기 힘든 귀한 여성 캐릭터예요. 염파석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고향을 떠나 노래와 춤을 보여주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아버지를 잃는데요. 장사 지낼 돈도 없던 모녀는 왕노파의 주선으로 송강의 도움을 얻어 관을 사고 장사를 지내지요. 그중 딸인 염파석이 송강의 첩이 되고 의식주 걱정을 덜게 됩니다. 반면에 반금련은 어느 부자집의 시녀였지요. 자주인의 욕정을 받아들이지 않아 밉보여 무대와 혼인을 당하는데요. 이 부자는 원한으로 세간에서 볼품없다고 소문난 무대에게 반금련을 시집보낸 거지요.
이 두 인물의 삶을 보고 있자면 여성의 젊음과 미모, 그리고 몸은 그야말로 재산이란 생각이 듭니다. 남성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대가로 자신과 어미의 먹을거리와 거처할 곳을 얻지요. 여성의 몸은 여성에게는 재산이고 남편에게는 소유물. 그래서일까요. 여성의 경제활동, 여성에게 허락된 삶은 가정이란 울타리지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몸은 소중하고 정절은 귀했지요. 그래서 여성이 다른 남성과 정을 통하거나 자신의 욕정에 충실한 모습은 단죄해야 할 행위가 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이 나요. 여성의 욕망을 성이라는 단일한 출구로만 흐르게 해 놓은 사회는 그 욕망에 충실한 여성은 부도덕한 인간으로 만들어 여성에게 이중의 족쇄를 채우지요. 여성의 욕망은 흐를 수 없었어요. 염파석과 반금련의 죽음이 억압으로 인한 과하고 억울한 일이었단 생각에 미치자 이탁오가 분서에 쓴 「당귀매전」에 등장한 시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떠올랐어요.
당귀매전은 이탁오가 살았던 당시, 열다섯에 허약하고 가난한 주씨 성을 가진 이에게 시집을 간 당귀매의 효열(孝烈)을 기린 이야기에요. 그녀의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에 부자 장사치와 사통한 적이 있는데 그 장사치가 자신의 며느리인 당귀매를 맘에 들어했지요. 며느리에게 몸을 팔라고 수백 번 꼬드겼지만 말을 듣지 않자 불효하다며 관가에 고발합니다. 뇌물을 받은 관가에서조차 당귀매에게 형벌을 가하고, 당귀매는 결국 매화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합니다. 며느리가 죽은 것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는 시어머니를 향해 사람들이 왜 이제야 통곡을 하느냐고 핀잔하듯 묻자 그녀는 “ 며느리가 살았으면 나 역시 아직은 바랄 게 있어. 하지만 그년이 죽어버렸으니 상인은 반드시 뇌물 준 것을 되찾아갈 게요. 나는 이 때문에 우는 것이지 저 나쁜 년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오.”(이지, 『분서 Ⅱ』, 한길사, 227쪽)라고 말합니다. 당귀매라는 인간의 고귀한 품성이 뇌물을 받은 관에 의해 재갈을 당하자 그것을 알리려고 쓰인 글이 글이 당귀매전이에요. 당귀매의 지조와 품성을 높이 사는 글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시어머니와 당귀매, 둘 다에게 안타까움이 생겼어요. 며느리 시체를 두고도 사람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어머니, 왜 그녀는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녀에게 여성이란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였겠지요.
염파석과 반금련은 여성의 삶을 규정하는 경계의 가까이서 날개짓을 해서 죽은 것만 같아요. 반면 장청과 손이랑은 아예 그런 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삶을 산 이들 같구요. 모두가 위험을 감수한 삶이었네요.
하마터면 만두가 될 뻔한 세상인 게 송나라였고, 먹을 게 부족해서 그랬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유례없이 풍족했던 시대라는 게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었죠.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하나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언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될까요? 수호전의 배경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 물질의 풍요로움이나 빈곤함이 그걸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먹고 살기가 팍팍한 열악한 시대였다면 몰라도, 송나라는 어딜 가든 고기 1근을 먹을 수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은 부스러기를 가지고 있는 풍요로운 시대였죠.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도적이 되고, 길 가는 사람을 벗겨먹을까요? 뭔가 상식을 깨는 지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시대적으로 봤을 때 확실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억압되었던 게 송나라부터였던 것 같아요. 전족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는 건 남송이지만, 이미 수호전의 여성들은 전족을 하고 있었죠. 아마도 시대는 북송이지만 남송의 여성을 모델로 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어쨌든 질문해볼 수 있는 건, 여성이 억압받았음을 조명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우리 눈에 '희생 당한 자들'로 보였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그들이 억압받았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요. 말씀하신 대로, '과연 저 시대 여성들의 욕망이 흐를 수 있었는가?'를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는 또 단순히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죠. 뭔가 어지러워지고 있는데요. ㅋㅋ;; 일단 수호전에서 여성에 주목하며 읽는 것도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