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주 ‘이역만리’ 세미나는 ‘송나라의 경제’를 주제로 공부하고, <수호전> 3권을 함께 읽었습니다. ‘송나라의 경제’를 <수호전>과 함께 공부하니, <수호전>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것들이 막 눈에 들어옵니다.^^ 술과 고기를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고, 금과 은 그리고 동전을 화폐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왠지 반갑습니다. 그리고 식당, 객잔, 술집 등등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부분이, 이제 송 나라의 경제를 보여주는 모습으로 포착되기 시작합니다! 이야기와 역사가 얽히면서 <수호전>은 저에게 좀더 친숙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먼저, 다음 세미나 공지를 하자면, 다음 10주차에는 ‘송나라의 도시 풍경’을 주제로 혜원샘이 브리핑을 진행하고, <수호전> 4권을 함께 읽습니다! 송나라의 도시 풍경을 배우면 <수호전>이 또 어떤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북방 유목민
1. 문화 강대국, 그러나 연약한 군사력
송(宋, 960년 ~ 1279년)은 대단히 독특한 제국입니다. 저희는 보통 문화적으로 세련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면 군사력도 함께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송 제국은 문화적으로는 꽃을 피웠지만, 언제나 연약한 군사력 때문에 문제가 됐는데요. 역사학자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전 왕조와 비교합니다. 이전 왕조까지는 무인 권력이 주축으로 통치가 이루어졌다면, 송대부터는 ‘문인 권력’ = ‘사대부(士大夫)’를 주축으로 권력이 새롭게 재편되는 것을 말입니다. 문인들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면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변화가 많아집니다. 실험적인 예술 형식이 등장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지적인 관심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문인 권력의 등장과 무인 권력의 공백으로 군사력의 약화를 겪게 됩니다. 물론, 송대에 군사력이 약했던 이유를 단순히 ‘문인 권력’의 등장으로 환원할 수는 없습니다. 북방 유목민들의 전투력이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에 송 군대가 약해보였을 수도 있고, 기후와 전염병 등의 다른 조건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을 겁니다. 송나라는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 북방 유목 군대에게 쉽게 무너지는 약한 군사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송 나라는 군사력이 약했지만, 그래로 송 나라는 300년 간 왕조를 지켜냅니다. 취약한 군사력으로 그들은 어떻게 왕조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요? 송 왕조가 북방 유목 군대를 방어하는 방식은 이전 왕조와 달랐습니다. 송 왕조는 자신들이 보유한 군대로는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북방 기병 부대를 막을 수 없기에 싸우지 않고 평화로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민족 정부에게 세폐(歲幣)를 지급하는 방식을 만드는 겁니다. 해마다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세폐로 지불하여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겁니다. 이러한 방식의 관계는 요, 금, 몽골과도 반복됐습니다. 송 왕조가 세폐로 지불한 공물은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송 왕조 입장에서는 그리 큰 지출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한 해에 거둬들인 조세 수입에서 1.5퍼센트 정도 되는 양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관료들은 전쟁을 주장하는 자(주전파)들과 평화를 주장하는 자(주화파)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언제나 장기적인 전쟁에 재정을 쏟아붓는 것보다 세폐를 주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판단하고, 그러한 정책을 유지했다. 거기에는 경제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송나라의 경제가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효율적인 호구 등록 제도’ 덕분입니다. 행정적인 노력으로 농작지를 관리하고, 세금을 효과적으로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효율적인 운송 체계의 발달’ 덕분입니다. 송대에 육로 교통, 수로 교통의 체계적인 발달로 지역 간에 생산품을 활발하게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정교한 기계의 발전’입니다. 방직기, 방적기, 물레방아, 광업 기술 등등의 발전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구조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원인 이외에도 다양한 원인들 속에서 송나라는 물질적으로 아주 풍요로운 시기를 맞이합니다. 송 나라는 풍요로움으로 전쟁을 일시적으로 평화로 바꾼 시기였습니다. 문화적으로 화려하고, 세련됐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군사력이 약했던 시대로 송나라의 이미지를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호랑이를 맨 손으로 때려잡는 거친 남자, 무송
2. 용맹하지만, 난폭한 남자 무송(武松)
<수호전> 3권에서 압도적인 캐릭터는 ‘무송(武松)’입니다. 거구의 몸(키 8척)을 가지고 있고, 힘이 또 얼마나 강한지 호랑이와 홀로 싸워서 이기는 캐릭터입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용맹함(勇)을 말하는데, <수호전>에 ‘무송’ 캐릭터가 용맹함으로 무장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복잡한 사건에 휘말려 죄인이 된 ‘무송’은 감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괜스런 소란 피울 필요 업소. 형틀 위에 올릴 필요 없이 때리려면 그냥 때리시오. 내가 한 대라도 피한다면 호랑이를 잡은 사나이가 아니오. 만일 피하면 이미 몇 대를 때렸건 말건 아무것도 따질 것 없이 처음부터 다시 때리시오. 신음을 한마디라도 내뱉는다면 양곡현에서 일을 벌였던 진정한 사내가 아니오.”(<수호전>3권, 178쪽) 무송은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 심지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습니다. 고통(형벌)을 줄이기 위해 권력자에게 무릎 꿇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죄가 있다면 마땅히 그 죄값을 치르겠다고 다짐합니다. 무송이 용맹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의 강인한 신체성에서도 나타나지만, 저는 특히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멋지다고 느껴지네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송이 ‘용맹함’이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되면, 지나치게 사용되면 ‘난폭함’(暴), ‘잔학함’(虐)으로 변한다는 걸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호전>의 인물이 대부분 술과 고기를 즐기지만, 무송은 특히 술을 좋아하고 술에도 아주 강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인물은 ‘술’이 매개가 되어 커다란 사건들이 벌어지는데요. 호랑이를 만나, 호랑이와 싸움을 하게 된 것도 ‘술’이 하나의 원인이었습니다. 주인장은 호랑이가 나오기에 산을 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무송은 술을 마시고 허세가 가득해지면서 홀로 산을 넘다가 우연히 호랑이를 만난 것입니다.무송이 호랑이를 잡는 장면은 아주 구체적이고 잔혹하게 묘사되는데요. “무송이 왼손으로 호랑이의 정수리 가죽을 꽉 움켜잡고, 철퇴만 한 오른 주먹을 슬그머니 들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정신없이 내려쳤다. 50~70번을 계속해서 내려치자 호랑이가 눈, 입, 코, 귀에서 모두 피를 쏙으며 움직이지 않았고 아직 입으로는 숨을 헐떡거렸다. 호랑이를 잡았던 손을 놓고 소나무 옆에서 부러진 초봉을 찾아 손에 쥐었다. 호랑이가 죽지 않았을까봐 걱정이 되어 또 내려쳤다. 기가 완전히 끊어진 것을 보고 몽둥이를 던져버렸다.”(41쪽) 그의 용맹함은 이렇게 술과 만나면 폭주하게됩니다. 호랑이를 무자비하게 죽였듯이 이후 유사한 사건이 반복해서 그의 삶에 찾아오게 됩니다. 무송의 형(무대)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면서, 그 죽음의 원인이었던 반금련(무대의 아내)과 서문대장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자신을 속여서 함정에 빠트렸던 장도감 무리 + 그들이 연회를 즐기던 주점을 초토화시킵니다. 무송은 장도감에게 복수할 때 그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었던 하녀, 부인들까지 다 죽인 뒤에야 분이 풀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용맹함이라는 미덕이 ‘술’ + ‘분노’가 더해지면서 난폭함이라는 악덕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수호전>을 읽으면서, <수호전>의 등장 인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단지, 이들은 ‘도적’이다!라고 하기에는 인간적으로 멋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들이 ‘영웅’이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난폭한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는 <수호전>의 한 인물, 인물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번 후기를 쓰면서는 저마다의 덕스러움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배치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읽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수호전>의 ‘힘’의 세계가 ‘정주민’인 저희의 눈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긍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을 ‘유목민’적으로 확장해서 상상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앞으로 읽어나가면서, 또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시다!
유목민이 무장한 채로 말 타고 달려오는 것과, 술 취한 채로 날뛰는 무송이 다가오는 것 중에 무엇이 더 공포스러울까요? ㅋㅋㅋ 이놈이고, 저놈이고 공포스럽고 잔혹무도하기 짝이 없을 것 같네요. 다만 무송은 '술에 취하지만 않으면' 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데, 이게 참 그렇단 말이죠? 술에 취하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언제든 눈에 뵈는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학살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이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이 인물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차라리 북쪽 변방에서 전사의 기질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나았을까요? 생각할수록 골때리는 인물입니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