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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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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더해가는 <수호전>입니다. 다음 권은 대체 어떤 사건이 터질지!
다음주는 <수호전> 5권 읽고 만납니다~~
중국의 경계: 화북과 화남
오늘날 송나라 백성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수호전>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여기서 <수호전>의 허구적 요소는 접어두고 그 내용만을 잠시 들여다본다면, 소설 속 대장부들이 부득불 양산박에 들어가야 했던 이유는 타인의 박해를 받았거나 죄를 지어서 혹은 잡히거나 꾐에 넘어가서였다. 그들 중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서 혹은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농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 (샤오젠성, <송나라의 슬픔>, 글항아리, 327쪽)
중국은 회수를 중심으로 북과 남으로 나뉩니다. 화북과 화남 지방이라고 하지요. 황하강을 중심으로 한 화북지방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수도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장안, 낙양, 북경, 개봉... 우리가 아는 중국의 도읍은 늘 중국대륙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죠. 그중 중국의 고도(古都) 동아시아 도시 배치의 모범인 장안 또한 화북지방의 중심에서 ‘중원’을 다스리며 천하를 어루만지는 역할을 했지요. 우주의 모습을 닮은 정방형 도시는 황제는 남면(南面)해야 한다는 예에 따라 북쪽 중앙에 위치한 황궁을 중심으로 대칭적인 격자식 구조로 짜여져 있었습니다. 장안은 그곳에 사는 사람도 우주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게끔 했습니다. 5품 이상의 관리는 시장에서 평민들과 어울릴 수 없었죠. 신분과 직업에 따라 통행 구역 및 시간이 제한되었고, 종사할 수 있는 직업도 나뉘었습니다. 황제는 남면하고, 황제의 시야 안에서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 이것이 중국의 우주관이었고, 중국의 도시는 그런 우주관을 반영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정방형 도시 장안
그렇다면 황제가 위치한 화북의 맞은편, 화남은 어땠을까요? 전통적으로 중국인은 남방을 밀림이 우거진 곳, 야만의 땅으로 취급했습니다. 문화와 정치의 중심인 화북에 비해 화남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발좌임(被髮左衽)하던 오랑캐 티를 겨우 벗은 것으로 봤던 것이죠. 하지만 이런 사고와는 별개로, 양자강 일대는 전한(前漢) 시대부터 활발하게 개발되었습니다. 확실히 화남지방이 화북에 비해 우월한 자연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황하 유역에 비해 일정한 강수량, 하천 지류 유역의 비옥한 토지, 풍부한 자연 항구는 농사와 어업과 교역에 유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대에 들어 화남지방의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 중국 역사상 가장 높은 농업 생산량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송대에도 여전히 수도는 북쪽 개봉이었습니다. 경제의 중심은 강남으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문화의 중심은 회수 유역과 개봉을 연결한 변하(汴河)로 강남의 생산물을 유입한 개봉이었지요.
개봉은 장안에 비해 훨씬 개방적인 도시였습니다. 정방형, 격자형이 아니었고, 성을 둘러싼 해자와 연결된 운하, 변하를 통해 막대한 화물이 오갔습니다. 개방된 부동산 정책으로 자금이 허락하는 한 누구나 토지를 매입하여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고, 통금이 없어 불야성을 이루었지요. 도시는 매번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거리와 다리마다 가게가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장택단의 <청명상하도>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5미터가 넘는 이 그림은 중국의 명절 청명절(清明節)의 떠들썩한 도시 모습과 한적한 농촌의 연결을 한 폭에 담았습니다.
장택단, <청명상하도>
행재(行在), 그리고 ‘천상의 도시’ 항주
막대한 재력, 빈약한 군사력의 나라 송은 1127년 여진족의 금(金)에 밀려 중원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밀려납니다. 남송(南宋)의 시작이죠. 1129년 남송의 고종은 항주를 ‘행궁(行宮)’지로 정합니다. 그리고 1138년에는 항주를 ‘행재’로 정하죠. 아무튼 곧죽어도 항주를 도읍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주적인 상서로운 모양도 없고 황제가 남면할 수도 없는 항주는 제국의 수도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송나라의 독특한 점은, 이렇게까지 아래로 밀려났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경제적으로 부유했다는 겁니다. 항주는 남송 세력이 행재로 정하기 전부터 활발한 상업도시였고, 그건 송이 중원을 포기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085년까지 항주는 20만 이상의 호, 1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등록되어 있었고, 환경 탓에 2층짜리 건물을 짓는 것이 표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상인을 불명예스러운 존재로 여겼던 전통적인 중국의 인식과 달리 항주는 상인들의 천국이었습니다. 도시의 모든 곳에서 장사가 이루어졌고, 상인들은 행(行)이라는 상인조합을 만들어 도시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주민들의 삶 또한 확대된 소비자 시장에 걸맞게 바뀌었습니다. 주민들은 마치 지금의 우리처럼 매일 아침 ‘활기찬 아침을 도와주는 물약’을 먹으며 출근했고 점심시간마다 어떤 가게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으며, 생필품만이 아니라 온갖 문화생활과 사치품을 즐기는 소비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책입니다. 송대 전까지만 해도 책은 그 출판되는 장르가 제한적이었습니다. 불서(佛書)와 달력, 그리고 점복서 정도였지요. 하지만 송대에는 드디어 소비자의 수요에 맞춘 서적이 출판, 유통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금과의 긴장상태에 놓인 정세를 설명하는 시사잡지, 통속문학, 정부에서 발행된 관보, ‘고전’이 아닌 당대의 시인과 소설가가 집필한 문학작품이 출판되어 사람들이 사서 보았지요. 재밌게도, 상업에 비판적인 주자학 역시 이런 상업적인 출판 시장의 활기에 힘입어 크게 성장합니다. 송대에 책이 널리 보급되면서 일반인의 생활 윤리를 설명하는 것이 경서(經書) 읽기에 요구되었고, 그 응답이 주자학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주자학의 본거지는 복건(福建) 즉 화남 지역 출판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소비재 발달의 끝에 책의 상품화가 있는 게 재밌는 거 같습니다. 생필품과 가장 멀지만, 사람들은 돈을 주고서라도 지식과 이야기를 얻고자 했던 것입니다.
1276년 항주는 쿠빌라이 칸에 의해 무혈 함락 됩니다. 그 이후에도 항주는 상업도시로서의 생기를 이어갑니다. 항주를 방문한 마르코 폴로는 ‘천상의 도시’라는 감상을 남겼습니다.
천진난만 천방지축, 이규 등장
이규를 묘사한 문장들이 모두 절묘한 것은 단락마다 송강 다음에 묘사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자는 송강의 간사함을 몹시 증오했을 것이다. 그래서 송강이 사악함을 드러내는 곳곳마다 이규의 순박함으로 대비시켰다. 송강의 사악함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생각지도 못하게 이규의 천진난만함을 부각시키게 된 것이다. -김성탄
4권의 주인공은 비중으로만 보면 송강...입니다만, 제일 눈에 띄는 인물은 이규입니다. 3권 말 집에 찾아갔다가 체포된 송강은 강주로 귀양을 가고, 그곳에서 대종과 이규를 만납니다. 사람 좋은 호걸 대종과 달리 이규는 천방지축,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다짜고짜 쌍도끼를 휘두르는 사람입니다. 어딘가 상식인(?)인 대종과 이규가 함께 다닌다는 것도 재밌죠. 대종은 이규가 날뛸 때마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규는 1권의 노지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생각 없는(^^)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둘은 의형제이고, 이규는 어쨌든 호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무예와 정의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노지심이 <수호전>판 장비인줄 알았는데요, 이규에 비하면 노지심은 넘나 멋있는 다크 히어로였습니다...) 같은 편조차 땀 삐질 나는 천방지축인 이규에게도 큰 매력이 있는데요, 바로 솔직함입니다. 김성탄에 따르면 이규에게서 발견한 천진난만함은 지금까지 다른 캐릭터들이 ‘급시우(及時雨)’라 치켜세워주는 송강의 속내를 비추는 역할을 합니다. 가령 이번 권에서 송강이 반역의 뜻을 담은 시를 술김에 지어 게재하여 큰 위기에 처합니다. 송강은 그때까지 ‘호걸’을 돕긴 해도 ‘도적’의 무리는 되지 않으려 하며 국가에 충성하며 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송강이 당나라 시절 나라를 뒤집어놓은 역도, 황소의 이름을 들먹인 것입니다.
반시(反詩)는 전제군주 시대에 목이 떨어져도 할 말 없는 대역죄. 송강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런데 이런 송강을 대하는 이규가 재밌습니다. 천방지축 이규는 송강만큼은 깍듯이 모십니다. 사실 이런 인물은 강호에 많습니다. 그런데 이규는 송강이 놓치거나 혹은 못 본 척 하는 요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르면 송강은 자신이 ‘술김에’ 그런 시를 쓰고 취해서 잊어버렸다고 하며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죄 때문에 당황합니다. 이는 호걸과 사귈 뿐 도적은 되지 않으려는 경계인 송강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규는 거침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반시를 읊은 게 뭐가 그리 대단해. 다른 사람들은 모반을 해도 큰 벼슬아치만 잘 되더라.” (<수호전 4>, 140쪽) 이규의 거칠고 파격적인 행보는 ‘나쁜 건 관리이고 황제는 죄가 없음’, ‘관리와 싸워 황제를 구한다’ 등등의 명분으로 ‘도적’이라는 간판을 가린 송강과 양산박 무리의 속내를 보여줍니다. 특히 유독 속내가 드러나지 않고 많은 경우 ‘불운한 상황’에 처하기만 할 뿐인 송강을 비추지요. 그래서 김성탄은 이규를 송강과 대비되는 캐릭터로 설명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탁오와 김성탄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저이지만, 이규에 대해서는 김성탄의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관리에 맞서는 정의의 편을 자처하는 것보다 차라리 ‘반시가 뭐 어떠냐!’하고 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인간적이지 않을까요?
양산박, 광인들의 집합소
강주에 귀양 온 송강이 만난 사람은 총 세 명입니다. 대종, 이규, 그리고 물고기 거간꾼 장순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의 거처가 의미심장합니다. 대종은 “처자식이 없어서 성황당 옆 관음암에서 살고”, 이규는 “정해진 거처가 없고 가족도 없이 아무 데나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주로 감옥에서 살고”, 장순은 “성 밖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호전 4> 122쪽)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성 안에 발붙이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수호전>에 나오는 호걸이라 하는 사람들은 거의 떠돌이, 혹은 마을에 살면서도 보통 사람들과 오랫동안 교류하며 지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수호전>에서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사고를 치고 형벌을 받거나 얼굴에 자자하고 유배되거나 혹은 박차고 나가 도망가 떠돌이가 되지요. 혹은 산채로 들어가 도적이 되고요. 그중에서도 양산박은 황하의 불안정한 물줄기가 만들어낸 천혜의 요새로, 자연스럽게 국가에서 쫓겨난 자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됩니다. 마치 중세 유럽에서 광인들을 한데 모아 배에 태워 흘려보냈다고 하는 것처럼, 양산박에 모인 호걸들은 한가락 하는 광인들인 것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광인들의 배>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이라 불리며 갇힌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난봉꾼, 얼간이, 방탕자, 불구자, 머리가 돈 자, 방종자, 배은망덕한 자식, 재물을 낭비하는 아버지, 매춘부, 미치광이”가 그들입니다. 지금 보면 이 사람들의 일부는 정신병원에 갇힐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이 목록은 ‘광인’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자명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차라리 광기는 당시의 정상성을 만들면서 배척된 자들의 목록에 가깝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도 정신병원, 교도소 등에 갖가지 사람을 이유로 가둡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쪽’에 있으면 위험하다고 낙인 된 사람들입니다. <수호전>을 보는 재미가 있다면, 그런 자들이 어떻게든 모여 하나의 세력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양산박, 그리고 좀 더 크게 잡으면 강호입니다.
반시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한 송강은 잡혀가지 않기 위해 똥오줌을 갈기고 그 위를 뒹굴며 미친 척을 합니다. 그러자 그를 잡으러 온 포졸들이 말합니다. “뭐야, 원래 미친놈이잖아. 이런 놈 잡아가서 뭐하려고?” (<수호전 4>, 135쪽) 반시를 쓴 대역죄를 지어도, 광인은 상대하지 않는다, 인간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이 당시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 안쪽 사람들과 살아가는 길이 아예 다른 사람들인 거죠. 이번에 읽은 <수호전> 4권에는 갖가지 이유로 성 밖으로 밀려나 도적이 된 광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와 ‘우리가 양산박이다!’ 하고 외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역죄로 잡혀 모가지가 날아가기 직전의 송강을 구하는 장면입니다. 약장수, 상인, 거지, 짐꾼들로 변장한 양산박 호걸들이 동서남북으로 들이닥쳐 송강을 구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박진감이 넘칩니다. 장면도 멋있지만, 이들이 변장한 신분들도 의미심장합니다. 위의 네 신분은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고 성 안 사람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의 전형입니다. 마치 똥오줌에서 뒹구는 송강을 상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이 장면을 보면 <수호전>에 나온 도적은 이렇게 성 안에 함께 있을 수 없다고 낙인찍힌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을 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적이고 광인이라서 벌 받고 쫓겨난 게 아니라,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이 도적이 되고 인간이 아니라 완전 다른 종으로 분류된 것이라고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수호전>의 도적들이 왕왕 인육 만두와 해장국을 즐기는 건 단순한 기호 때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