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가 너무 늦었네요! 후다닥 정리해보겠습니다. 마지막 6권 읽고 만나요~
<수호전>의 임팩트가 강렬해선지 사실 <봉건사회>는 희미한 추억처럼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봉건사회>를 통해 하나의 사회를 보는 관점을 조금 익힐 수 있게 됐고, 덕분에 <수호전>을 읽을 때도 단순히 인물들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엉성하게나마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누가 도적이 되고, 관리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고,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등등 조금씩 정보로만 남아 있는 송나라가 조금씩 생생해지고 있습니다. <수호전>을 통해 ‘송나라’를 이해해보죠!
송나라와 사대부(士大夫)
할 수 있는 말은 나눠드린 자료에 다 정리한지라, 간단하게 다시 복습하겠습니다! 중국에는 다른 문명에 없는 전통적 정체성이 있습니다. 여러 왕조가 바뀌는 동안 끈질기게 살아남는 엘리트 집단, 바로 사대부입니다. 사대부는 독서인으로서의 사(士)와 통치자로서의 대부(大夫)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사대부는 역할과 구성원, 기능 등이 계속해서 변화해왔습니다. 당장 당나라와 송나라의 사대부만 비교하더라도 ‘글을 읽는다’는 것을 빼면 공통점이 딱히 없습니다. 특권층이라는 점에서 동일했으나, 그 특권을 유지하는 방식은 달랐습니다. 당나라 때의 사대부는 정부를 유지하는 일종의 부품으로 기능했지만, 송나라 때는 지방 유지로서 자신들만의 영향력을 다졌죠. 당나라 때의 사대부가 혈통으로 이어지는 귀족계급이었다면, 송나라 때는 과거시험을 통과하거나 재력이나 인맥 등으로 구축되고 확장되는 신흥 세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송나라에 이르러 사대부에서의 ‘사’, 즉 무엇을 배우고 써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제기됐습니다.
사대부의 존재 근거였던 학문이 의심되고 새로워지기를 요구받으면서 송나라의 사대부는 그 외연이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사대부가 더 이상 혈통으로 제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대부가 배워야 할 것을 배웠다면, 그리하여 관직에 나아갔다면, 지방 평민 출신의 인물도 사대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과거시험에 통과하려면 어마어마한 노력과 끈기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재력이 필요합니다. 명목상 누구나 ‘사대부’가 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상류층에게만 가능한 일인 것이죠) 이런 식의 변화는 ‘사’에 대한 담론, 특히 ‘사’가 배워야만 하는 ‘문(文)’에 대한 담론이 내부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분기하고 있었습니다. 당나라 때 한유를 중심으로 전개된 고문운동이 다시 부활하기도 했고, 소식, 구양수, 왕부지 등 제각각 다른 이론이 제시되기도 했죠. 성리학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여러 사유가 복잡하게 뒤섞이고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은 사대부가 이미 ‘문’을 질문하며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송나라는 모든 것을 새롭게 건설하고,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랑캐들한테 쫓겨 남쪽으로 몰리고, 기존의 기득권층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상인이 성장함에 따라 사농공상의 위계가 흔들리는 등등. 기존의 ‘중국’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 모조리 허물어졌죠.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게 위태로울 정도로 변화하는 시대에서 사유 또한 보다 활발하게 작동할 수 있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합니다. 피터 볼 선생님은 송나라의 지식사회를 춘추전국시대와 비교하셨는데, 혼란스러움을 겪는 정도 또한 두 시대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호걸들은 누구일까?
이번에도 저희는 경악하고야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 도적-호걸놈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매번 고민이에요. 저희가 공통적으로 경악한 장면은, 순진무구한 이규가 평화롭게 유배 생활을 하고 있던 주동이란 사람 한 명을 동료로 만들기 위해 5살 어린아이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송강은... 보면 볼수록 이보다 더 악독한 인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호걸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동이 데리고 있던 아이를 죽인 것은 모두 급시우(及時雨)라는 어마어마한 호를 갖고 있는 송강의 생각입니다. 전근대 중국에서 시우(時雨)란 ‘때에 맞춰 비가 내린다’는 뜻이고, 이건 적재적소에 필요한 것을 해내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표현한 단어였죠. 거기에 ‘미치다’라는 뜻의 급(及)자를 붙여서, 이르는 곳마다 적절한 도움을 베푼다는 것처럼 호가 완성됐습니다. 그런 송강이 실제로 보여주는 건, 이르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켜서 사람들을 도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게다가 어쩔 수 없이 그런다기보다 권이 지날수록 아예 작정하고 사람들을 도적으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람 한 명 도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계책을 내는 사람이나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이나 그리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분명 멋있는 점들도 많지만, 이렇게 경악할 만한 모습들도 있으니 어떻게 이 호걸들을 봐야 할지 계속 고민됩니다.
또 하나의 국가로서의 양산박!?
지난 혜원누나가 공지에 썼던 것처럼, 도적들이란 도시의 질서로 포획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아무도 모른다는 점, 이들이 변장하는 계층이 상인이나 약장수, 거지, 짐꾼처럼 항상 어딘가를 떠도는 사람들이라는 점 등이 바로 그렇죠. 동시에 이런 질문도 듭니다. 겉보기에 이들은 분명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섞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도주로를 그린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편으로 이들은 양산박에서 그 무엇보다 가장 ‘국가적인 질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큰 사건을 겪거나 인재가 대거 들어왔을 때마다, 송강은 사람들 간의 서열을 정리하고,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산채를 재정비했죠. 거의 하나의 국가처럼 산채를 정비하는데요. 문제는 이때가 ‘송나라’라는 것입니다.
브리핑에서 자주 나왔듯, 송나라는 문치주의를 기본 골격으로 삼은 나라입니다. 지방에서 사적으로 군대를 양성하고 체계를 세우는 건 반역이나 다름없죠. 그런 시대에서 양산박은 세를 불리고, 더욱 체계를 잡아갑니다. 게다가 이들은 점점 세가 커진 만큼 작은 도시도 함락하기 시작하는데요. 만약 이들이 충의(忠義)를 좇는 자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충의’를 지우고 본다면 이들보다 더욱 위험한 집단이 없습니다. 태조 조광윤이 가장 우려했던 건 지방에서 권력을 가진 절도사 같은 존재들의 탄생이었는데요. 양산박은 조광윤이 가장 우려했던 집단에 딱 들어맞습니다. 송나라 정부 입장에서는 양산박이 가장 위험한 반역 집단인 거죠.
따라서 양산박을, 도적들의 존재를 어떻게 봐야 할지 지금도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은 개인적으로 이들에게서 자기 진실함을 다하고 옳음을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여기는 충의가 느껴지진 않습니다. 여기도 저희끼리 이견의 여지가 매우 분분하죠. 어떻게 볼지 마지막 권까직 달려보죠!
인간 욕망의 다양한 군상을 드러내다
갑자기 토론하다가 든 생각인데요. 다양한 인간 군상 자체를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수호전>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나옵니다. 인물들마다 일으키는 사건이 다 조금씩 다르죠. 가령, 지혜로운 오용이나 송강이 등장할 때는 꼭 누군가가 도적이 됩니다. 이규가 등장하면 피바람이 불고요. 노지심이 등장하면 억울한 사람이 나와서 그의 한을 풀어줍니다. 이렇게 인물들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를 중심으로 보면서, 어떤 인간이 어떤 사건을 만들어내는지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인물들이 만날 때 자아내는 독특한 조합이 있습니다. 가령, 오용과 송강이 만나면 누군가는 도적이 됩니다.(저는 이 둘이 만나면 또 누가 도적이 될지 걱정스러워집니다...) 그런데 송강과 이규가 만나면, 점잖은 송강과 솔직한 이규, 예의를 다한 말과 속내를 드러내는 말로 대사가 이어집니다. 김성탄은 이를 두고 송강의 검은 속내를 솔직한 이규가 대변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죠. 이렇게 인물들 간의 모습, 욕망, 본성을 효과적으로 대비함으로써 인간 군상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읽으면 읽을수록 읽는 맛이 나는 책이 <수호전>인 것 같습니다!
호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양산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수호전이 끝날 때까지 서로 논쟁하고, 길을 헤매는 경험이 흥미로웠네요ㅋㅋ! 호걸들이 형제를 구하러 가는 장면에서는 멋지다고 느껴지지만, 또 이규와 같은 살인-기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멈칫하게 됩니다 ㅋㅋ! 양산박이 국가 질서에 포획되지 않는 자들의 네크워크로 보이다가도 송강과 그 무리들이 위계를 짓고, 체계를 만드는 것을 보면 국가와 무엇이 다른가 고민이 듭니다ㅋㅋ! 수호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