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와 역사로 만리를 주유하는” ‘이역만리’ 세미나가 드디어 끝이 났네요! 12주 간의 길고도 짧았던-여정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이슬람 역사와 <봉건 사회>, 송 나라 역사와 <수호전>을 찐득하게 읽고 토론한 것 같네요.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때론 즐겁게, 때론 유쾌하게, 때론 침묵 속에서 세미나를 이어온 기억이 납니다. 촘촘하고 디테일한 <봉건 사회>, 6권의 방대한 분량이었던 <수호전> 읽기는 선생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수호전>의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으로 아쉽긴했지만, 어찌됐든 도적은 도적으로 보겠다는 김성탄다운 마무리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세미나 때까지 양산박 호걸을 단지 ‘도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서도 ‘덕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는 저희 간에는 합의가 안 됐지만, 각자의 지평 속에서 자유롭게 해석해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미나 때는 혼란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하나의 해석으로 합의되지 않는 점이 수호전의 매력 아닐까 싶네요!
송은 왜 멸망했는가?
먼저, 브리핑의 내용입니다. 이번주 저의 브리핑 주제는 ‘송(宋, 960년 ~ 1279년)의 멸망’이었습니다. 송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사실 하나의 체제가 ‘멸망’에 이르는 게 된 명백한 원인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무능한 황제가 집권했다고 하여 망하는 것도 아니고, 부패한 관리들이 권력을 차지한다고 망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 재해를 크게 겪는다고 하여 나라가 붕괴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대체 제국의 멸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걸까요? 역사를 공부할수록 어떤 ‘결과’를 하나의 원인으로는 도저히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복합적인 층위의 문제들이 엮여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인간이 도저히 인식할 수 없을만큼요! 그러므로 결국은 멸망이라는 사건은 멸망할 때가 됐으니, 멸망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역사적 사건이 우리가 인식할 수 없을만큼 복잡한 원인에 의해 발생했다고 해서 그 사건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고 내버려둔다면 그 사건은 영영 어두운 영역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겠지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와 노력이 그 사건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제가 송이 어떻게 멸망에 이르게 됐는지 자신있게 원인을 말할 수는 없지만, 제가 공부하고 이해한 선에서 최대한 정리해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송대 멸망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것은 ‘강력한 외부의 등장’입니다. 당대까지는 당 외부의 세력이 당 나라를 집어삼킬만큼 강한 힘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아니면 당 외부의 세력은 중국 땅에 대한 욕망이 그리 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송대에는 외부 세력들이 중국의 땅을 지속적으로 넘보고, 이후에는 전영토를 집어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송대의 멸망에는 물론 내부적인 혼란과 분란이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그와 더불어서 강력한 외부의 등장도 커다란 몫을 했다고 보여집니다. 송나라를 크게 뒤흔든 외부 세력으로는 금 제국과 몽골 제국이 있는데요. 이 두 막강한 제국의 등장은 송 나라를 어떻게 흔들고 파괴에 이르도록 만들었을까요?
금 제국이 등장할 당시 송 나라는 휘종이 제위하고 있었습니다. 휘종은 관료들에게 정치를 맡기고 예술 활동에 전념하여 정사에 소홀했던 황제로 유명합니다. 휘종 시기 대규모 민란이 일어날 정도로 정치가 혼란스러웠는데, 그와 동시에 금 제국이 강력한 기병 부대로 밀고 내려오기까지 합니다. 이전처럼 세폐를 주는 방식으로 평화를 얻으려고 했지만, 일시적일뿐 그들은 계속 침략했습니다. 결국에는 수도인 ‘개봉’을 빼앗기도 휘종과 그의 아들 흠종까지 포로가 되어 북송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북송과 남송이 나눠지는 이유는 황제 계승에 단절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후 휘종의 9번째 아들, 조구가 가까스로 도망쳐 근거지를 남쪽으로 옮기며 자신을 황제라 칭하고 남송을 건국합니다. 금 나라는 남송까지는 정벌하지 못했습니다. 양자강 이남 지역의 환경은 기병-유목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어서 정벌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장대한 강들과 광활한 호수, 진흙바닥인 논, 고온다습하기까지 한 기후, 기생충과 모기 그리고 전염병까지. 유목민족의 기마대는 남쪽의 기온과 땅에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남송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금 제국이 양자강 이남 지역까지는 넘보지 못하고 있을 때, 초원에서는 몽골족이라는 빠른 속도와 잔혹함을 장착한 전쟁-기계들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몽골 제국이 본격적으로 남송을 정벌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쿠빌라이 칸이 재위하면서부터인데요. 쿠빌라이는 독특하게도 남중국을 점령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습니다. 그는 유목민의 칸이자 동시에 중국의 황제가 되고 싶었고, 남중국의 비옥한 땅을 갖고 싶었으며, 동남아시아-인도-중동을 잇는 해상 무역로를 차지하고 싶었습니다. 쿠빌라이는 몽골-기마병뿐만 아니라 중국인 장군, 위구르인 사령관, 이슬람교도, 고려인, 여진인 등등 연합군을 형성하여 총 공격을 했고, 남송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다른 무엇보다도 유목민이면서 중국의 황제가 되고자 했던 ‘쿠빌라이 칸’이라는 독특한 인물의 등장이 송 나라의 멸망을 앞당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도적을 다르게 그리기
이번에 수호전을 함께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이야기가 모아진 것은 ‘도적’의 이미지를 새롭게 그려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적’이라고 하면 저희는 거칠고, 무질서한 무리들이 산 속에 모여사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송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양산박’의 호걸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적의 모습과는 다른데요. 양산박의 호걸들은 일단 각자의 지위와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위계 관계가 확실하고, 능력에 맞게 위치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때는 마구잡이로 싸우는 게 아니라 뛰어난 전략전술을 이용합니다. 무력으로든, 지력으로든 관군을 압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그리고 허술한 장비를 갖고 전투에 임하는 게 아니라 ‘철갑기병’까지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전투 모습을 보면 누가 관군이고, 누가 도적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관군 장수들이 포로가 되고, 너무도 쉽게 양산박의 무리가 되는 것도 관군과 양산박 사이에 큰 격차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질문이 듭니다. <수호전>은 어떻게 이렇게 강한 ‘도적’을 그리고 있는 걸까요? 저희는 <수호전>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이리저리 생각해보았습니다. <수호전>의 역사적 배경은 송 나라 때이고, 송 나라는 ‘관군’ 이외에 다른 군사 조직이 없었던 나라입니다. 이전(당 나라)에는 관군 이외에도 지방 절도사들이 개인적으로 군사집단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중앙권력에 위협을 가한다는 생각에 조광윤은 송을 건국하면서 관군 이외의 무력집단을 제거하기로 합니다. 여기서 저희는 상상해보았습니다. 관군이 되지 못한 ‘무사 집단’은 무엇을 하는가? 송 나라 때는 관군에서 배제된 혹은 관군이 되지 못한 ‘무사 집단’이 ‘도적’으로 묶여서 불린 게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관군과 맞서 싸울만큼, 아니 그들보다 강력한 군사 집단을 형성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요?
송강에게 대체 어떤 매력이…?
수호전 6권을 읽는내내 제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송강’이라는 인물이 대체 어떤 매력을 지녔기에 도적들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지에 관한 의문입니다. 제가 평가하는 송강은 이런 인물입니다.(지극히 주관적입니다!) 겉으로는 사람의 목숨을 귀중하게 여긴다고 말하면서, 인재들을 양산박으로 영입하기 위해 사람을 살해하는 건 눈 감고. 자신의 효심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효심은 크게 중요하게 보지 않고, 양산박의 수령 자리에 욕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야심을 품고 있는 사람처엄 보였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우리들의 모습이지만, 소설 속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송강이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니까 정말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성탄의 인물 평가처럼 저에게도 하하(下下)의 인물처럼만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호전의 호걸들에게는 인기가 많습니다. 왜 일까요? 송강의 매력을 아시는 분은 제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권에 가서 송강의 장점을 발견한 게 있다면, 그것은 그의 포용력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송강의 탁월함은 그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규와 같이 대책없는 캐릭터에서부터 오용과 같은 꾀돌이 캐릭터 그리고 노지심 같은 독고다이형 캐릭터까지! 그는 온갖 호걸들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곁에 두는 게 아니라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과 함께 갑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송강을 리더로 만들어주는 덕목이 아닐까요?
<수호전>의 마지막 후기들~♬
- 경희샘
노지심과 이규. 1권을 재밌게 열어 준 노지심에게도 마음이 끌리지만 시간 속에서 읽은 내용이 가물가물해진 탓인지 저의 마지막 결정은 ‘이규’입니다. 제게 살인귀같은 그의 행동이 문제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의 행동(말)은 드러난 것 외에 다른 의도나 계산이 없단 느낌을 주지요. 그의 모습은 양산박에서 권위의 상징이자 권력의 중심인 송강을 향해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는데요. 사람들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나 금기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이규의 언행에 통쾌했어요. 이규야말로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본능을 드러내는 것에 잉여가 없는 삶을 살았죠. 수호전에 108명의 호걸들이 생사를 넘어 신의를 지키고 있지요. 그럼에도 이규가(자신과 타인을 포함한 뭇 사람들의) 느끼는 죽음의 무게는 유독 가벼워 보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삶과 동일하게 다루는 이였던 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가 잉여없는 시간을 살게 했던 걸까요. 늘 싸움의 선두에 서고자 했던 이규의 모습이 벌써 그립네요.
수호전에 밀려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에 대한 감상을 적지 않을 수 없네요. 이젠 유럽의 봉건사회에서 농노-기사-왕으로 구분되는 피라미드식 사회구조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던 관계들이 그려져요. 새롭게 생긴 이미지를 아직 설명할 수는 없어 혼란스럽지만 기존의 앎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은 좋네요.
- 은정샘
수호전.. 제가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라면 읽을 생각조차 못했을 것 같아요. 이역만리 세미나 하면서 쌤들이랑 읽어서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매력적인 인물은? 저는 노지심이랑 이규가 처음에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거든요. 저희반에 자기 자신에게 무척 솔직하지만 주변을 휩쓰는 태풍의 눈 같은 아이들이 떠올라서 뒤치닥거리 하느라 힘든 제가 이입이 됐던 것 같아요. 마지막 권까지 읽고 보니 적어도 걔들은 행복하고 자기자신에게 속임이 없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구나를 느꼈어요. 양산박은 저는 또 다른 국가처럼 느껴졌어요. 체계화되고, 사람을 배치하고, 역할을 나누고, 결국 국가를 향해 싸운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규창샘
꽃보다 노지심 : 성은 노(魯), 이름은 달(達). 온 몸에 꽃문신을 했기 때문에 화화상(花和尙)이라고도 불린다. 군관 출신이지만 죄를 짓고 도망치다 승려가 됐다. 출가하면서 지심(智深)이란 법명을 받았지만 승려로서의 자각은 전혀 없다. 머리를 밀고 절에 머물렀지만 개고기를 먹고,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셔서 끊임없이 사고를 쳤다. 다른 절로 쫓겨났을 때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들을 휘어잡아 두목이 됐다. 군대에 있었을 때는 그나마 ‘질서’를 따랐으나, 군대에서 벗어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태생적 양아치다.
운명은 우리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겪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운명 안에서 사건을 어떻게 겪을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노지심의 스승 지진 장로가 예고했듯, 노지심은 양산박의 두령이 될 운명이었다. 손에 피를 묻히고, 다른 사람이 힘겹게 모은 재물을 갈취하는 도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지심이 양산박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면, 단지 사리사욕을 좇는 소인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힘 없는 민초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지언정 노지심은 한 번도 그들을 갈취하거나 억압한 적이 없다. 오히려 (맨 정신에 한해서) 언제나 민초들을 괴롭히는 도적이나 도적 같은 관리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죄를 짓고 도망치게 된 것도 약자를 괴롭히던 사람을 실수로 때려 죽였기 때문이다. 비록 무례하고 성급하지만, 한 번도 이기적이거나 남을 해치려는 마음으로 움직인 적이 없었다. <수호전>에 그려진 그의 길은 도적들을 소탕하고, 억울하게 죽을 뻔한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 혜원샘
<수호전>은 결국 어떤 이야기였을까요? 여섯 권을 내리 읽으면서 거침없는 인물들의 기행과 악행에 놀라면서도 웃었고, 넷플릭스 저리가라 할 정도의 긴장감 넘치는 클리프행어 구성으로 손에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만, 결국 저는 김성탄이 편집한 '도적집단 양산박' 버전을 쪼끔 맛보았을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버전이 있게 한 이탁오의 <충의(忠義) 수호전>도 보고 싶고, 이 땀내 나고 불온한 이야기를 놓고 어떤 말이 오갔을지 그 역사도 궁금해지면서... 솔직히 말해 송나라 역사를 알기 위해 <수호전>을 다 읽어서 재밌었다~는 느낌보다는, 광인집단 양산박과 풍요로우면서도 두 번 망한 송나라를 하나하나를 뜯어먹으며 떠들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역사를 알려고 시작했는데 시작점에 선 느낌이랄까요. ("우리의 모험은 이제 시작"?) 아...더 보고 싶다~!
- 산풍샘
공부를 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방향추라고나 할까요.. 블로크의 <봉건사회>나 <수호전>을 읽으면서 잠시 그 시대의 렌즈를 빌려 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기엔 터무니없어보이고, 경악을 금치못하는 것들도 그 시대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 나도 모르게 어느 부분은 그 시대의 사고방식을 이유도 모르는채 따라하고 있다는 것 또한 배웠구요. 잠시 타임머신하듯, 중세시대를 겪었습니다. 무협지였던 수호지를 이렇게 접근할 수 있어서 반가웠으며, 뭔가 그저 아스라히 멋지게 보였던 기사도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늘 재미나고, 머리 아프지만 또 하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동안 같이해서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이 우리가 인식할 수 없을만큼 복잡한 원인에 의해 발생했다고 해서 그 사건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고 내버려둔다면 그 사건은 영영 어두운 영역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명확한 원인은 알 수 없겠지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와 노력이 그 사건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지난 주 역사 브리핑 원고에서와 마찬가지로 후기를 읽으면서도 밑줄 긋게 하는 말이에요. 역사적 사건의 발생을 복합적인 힘들의 작용으로 보려는 노력과 더불어, 그럼에도 나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 자신의 입장을 부단히 벼리는 과정의 병행을 스스로에게 요청하게 됩니다.
이역만리 과정 내내 역사 브리핑을 해 주신 세 분 선생님, 덕분에 시간이 풍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