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의 주제를 안다고 착각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이역만리를 시작합니다. 역시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 읍읍~
과거는 어디에,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 걸까요? 과거의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게 있을까요? 또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것 뭘까요? 어떤 사료를, 어떤 인과에 따라, 어떤 관점에서 기술하느냐에 따라 과거는 다른 방식으로 출현합니다. 그렇다면, 역사history는 이야기story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그리는 것이 가능한 걸까요? 이런 질문들을 품고 ‘이역만리’ 세미나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역만리 공지글 중>
세미나가 끝난 후 공지글을 다시 읽어보았어요. 읽으며 왜 이리 생소한지.. 글을 또 대충 읽었고, 내 마음대로 해석/스킵했으며, 글의 의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음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역사서를 대하는 자세와 역사서를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역만리 첫번째 시간 후기글을 올립니다.
19세기 독일 역사학은 역사학을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분과로 독립시켰고, ‘사고의 역사화’를 강화하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역사학의 대상은 독자성을 지니는 개체(individuum)로서 그 내면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하는 존재이고, 이 이해의 방법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인간의식의 산물인 기록문서라는 것이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 경향으로 인해 문서숭배벽을 낳았으며, 한편으로는 하나의 개체로서의 국가의 역할 및 정치 외교사를 중시하는 사건사 위주의 역사 서술의 전통을 낳았습니다 (<봉건사회1> p33). 이러한 문서숭배적인 역사학 흐름에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에 쓰는 학문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했던 블로크는 <봉건사회>를 통해 그가 생각하는 역사와 역사학에 대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몇몇 진본 사료의 도움을 빌려보면, 노르만인들이 정주한 뒤 몇 세대가 지났을 때에는 이미 정주 당시의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얼마나 심각한 망각과 왜곡을 겪게 되었던가를 헤아릴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동(Doon)의 이 저작은 특정한 한 사회의 환경과 특정한 한 시대의 의식구조를 들추어 내는 데에는 한없이 귀중한 증언이겠지만, 거기에 씌어진 사실 자체는, 적어도 노르망디 공국의 초창기 역사에 관한 한, 증언으로서 거의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봉건사회1> p131)
블로크는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이 태어난다고 보았다. 블로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환경 전체가 어떻게 작용하여 어떠한 인간관계의 전체적인 망이 형성되고 또 변화하는가’라는 문제였다 (<봉건사회1> p52)
그래서 <봉건사회>는 여느 역사서와는 다른 형태를 가집니다. 보통의 역사서에서 흔히 사용되는 통치자들의 업적 나열, 혹은 굵직굵직하게 일어났던 어느 시대를 대변하는 혹은 한 나라의 향방을 바꾸었다고 판단되는 특정 연도의 사건사 위주의 역사서술은 이 책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사건사 위주의 역사서를 기대하며 펼쳐든 책에서 사건의 나열이 아닌 어느 고전 사가saga처럼 흘러가는 이야기에 저는 줄곧 길을 잃고 헤매며 반복하며 다시 읽는 일들이... ㅜㅠ 이런 저의 혼란은 ‘132쪽에 나오는 롤로(Rollo)는 누구인가요?’란 제 첫 질문으로 드러납니다. 저에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어떤 특정한 사건과 그 사건으로 인해 발생된 결과에 대한 한줄로 주욱 나열된 인과관계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본질적으로 상이한 두 계열의 현상을 수세기에 걸친 발전 과정에 비추어 비교한 후, '한쪽에는 모든 원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모든 결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이분법도 없을 것이다. 정신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조직이 아닐까 (51-52)
9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서유럽을 연구하여 내놓은 블로크의 <봉건사회> 1부는 인적 종속관계의 형성을 이루게 된 당시 유럽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침략은 동시에 세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즉 남쪽에서는 이슬람 교도들, 곧 아랍인들 또는 아랍화한 복속민들이, 동쪽에서는 헝가리인들이, 그리고 북쪽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침입해왔다. (<봉건사회1> p78)
그에 따르면 ‘유럽’의 형성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이민족들로 인해 성립되었습니다. 동시 다발적으로 유럽을 침입했던 헝가리인들과 스카디나비아인들은 곧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약탈의 전통을 포기하고 정주(식민정주)를 하며 서유럽 문명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만.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자리잡은 이슬람 세력은 약 800년간 해당 지역을 지배하게 되지요. 탄생한지 백년도 되지 않은 이슬람이 사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아프리카, 스페인을 넘어 프랑스 남부까지 진격해오자 위기를 느낀 유럽인들은 프랑크 왕국의 카를 마르텔을 중심으로 연합군을 이루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유럽 연합군입니다. 즉 점령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유럽’은 탄생된 것이라고 그래서 블로크는 '유럽'의 형성은 사방에서 침입하는 이민족들로 인해 성립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슬람 교도들에 승리를 거둔 카를 마르텔 휘하의 프랑크인들을 기꺼이 ‘유럽인’이라고 불렀던 8세기의 어느 에스파냐인 연대기 작가, 또는 그때부터 약 200년 뒤 헝가리인들을 물리친 오토 대제를 ‘유럽’의 해방자라고 열렬히 찬미하였던 작센의 수도사 비두킨트 등은 이미 다소 어렴풋하게나마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역사적인 내용을 가장 충실하게 담고 있는 바로 이같은 의미에서의 유럽은 중세 전기(前期)의 소산이었다. 유럽에서 진정한 의미의 봉건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유럽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봉건사회1> pp66-67)
여기까지가 저희가 읽은 부분이며 <봉건사회>를 읽으면서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책에 나오는 문장들을 가지고 서로의 세계사 무지랭이력을 자랑하기도 하였습니다. ㅎㅎㅎ
혜원쌤의 이슬람의 역사, 특징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지도와 함께 하니 조금 눈이 트이더군요. 고맙습니다.
늘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져 있으며, 폭력적이고, 차별의 온상이라고 느꼈던 이슬람이 협의체 (슈라), 정의 (아들), 자율(홀리야), 평등(무싸와)이라는 가치를 움마(이슬람 공동체)속에서 실현시켜었다는 , 일종의 종교적 사회 프로젝트였다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신생국가였던 이슬람이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팽창할 수 있었는지 납득이 되는 부분이였습니다.
제가 질문했던 로마적 사회조직과 게르만적 사회구조에 대한 설명은 미약하나마 52쪽에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봉건제가 로마적인 것과 게르만적인 것의 융합의 산물로 규정되고 있음은 분명하되 이때 로마적인 것과 게르만적인 것이 노예제적 생산양식과 원시공동체적 생산양식이라는 말로써가 아니라 각기 국가와 친족제라는 말로 대표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52p)
뒷부분을 읽어보면 좀 더 나온다고 하셨으니 다음 시간을 기대하며 이만 역사서를 읽는 것이 사건의 나열이 아닌 현재의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주제를 선택하고 이 주제를 천착하면서 현상들의 연관관계를 이해(38p)하여 인간 삶의 총체성을 확보하는 역사학으로서 접근해보고자 노력해보겠습니다.
후기를 써달라나는데 무얼 어떻게 써야하나를 고민하며... 규문으로 돌아왔구나를 실감했다는 말은 남기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첫 시간답게(?) 꽤 헤매고 말았습니다만, 그래도 나름 맥을 잡는 쪽으로 헤맸던 것 같아요. ㅋ 계몽주의자들은 유럽적인 것이 중세 봉건을 극복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유럽'이란 봉건과 함께 등장했죠. 그리고 이 유럽에는 유럽 아닌 것들, 노르만, 헝가리 같은 야만인들이 있었죠. 블로크의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유럽의 뿌리'란 유럽과 유럽 바깥이 얽혀 있는 그 자체란 걸 알게 됩니다. 덕분에 '민족', '국가' 같은 것을 역사에서 찾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알 수 있죠. 그러나 블로크의 작업은 여기서 끝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과거에 찬란한 그 무엇이 없다고 해서 과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게 아예 무의미해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렇다면 블로크는 역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이 두껍고 방대한 책을 읽는 동안 이 질문을 어디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지 한 번 제대로 헤매보죠!
웰컴백 삼풍샘^^ 명성대로 전광석화같은 속도와 핵심을 짚는 내용입니다. 돌아오셨군요~~^^
이슬람과 중세 유럽을 나란히 바라보면 역사란 역시 다른 것들이 섞여들어가는 과정이고 순정(!)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점은 늘 한곳에 고정되어 있고, 그 시선이 편파적이라는 것도 잘 의식하지 못하죠ㅠㅠ 블로크는 그 시각을 깨기 위해 '유럽'이 유럽 아닌 것들에 대한 공포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끈질기게, 반복해서 짚어내고 있으니 잘 따라가 보도록 해요~!
이번에 확실히 마르크 블로크의 독특한 역사서술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연대순으로 중요한 사건을 나열하는 사건사로 역사를 서술하지 않고, 사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서술하려는 노력이 보였던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역사를 단일한 인과가 아니라 다양한 계열의 상호작용 속에서 바라보면 어떨지 블로크를 읽어가면서 함께 찾아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