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첫 시간에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제도권 밖에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제도권 밖에서 만들어지는 역사와 관련한 담론이 무력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확신이 의아해졌다. 제도권 밖의 역사공부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역사를 제도권의 전유물로 보는 나는 권위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역사 서술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여러 단계의 검증 절차를 거쳐 그들이 확정한 것이야말로 ‘참된’ 역사의 기록이 된다. 거짓이나 허구를 제거해낼 수 있는 집단으로 학위와 공권력에 대한 나의 믿음이 대단히 굳건했다. 참된 것으로 서술되어야 한다는 역사에 대한 나의 태도는 참된 삶이나 세상이 따로 있다는 나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그 판단의 몫을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내맡겨버리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허위문서가 만들어졌다는 것, (...) 즉 기이한 역설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과거를 숭앙한 나머지 과거가 당연히 그렇게 존재했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된 대로 과거를 재구성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마르크 블로크, 『봉건사회Ⅰ』, 251쪽)
어떤 역사서술을 절대적인 것처럼 여기는 나를 한방 먹인다. 과거는 재구성된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존재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된 대로. 허위인 줄 알면서도 숭앙할 수 있는 과거를 만들고 싶어서 과거를 그렇게 재구성한 봉건시대의 단면. 과거를 그렇게 재구성하고 기록을 했을 것이라는 봉건시대 기록물에 대한 마르크 블로크의 ‘재구성’. 기록이 곧 사실이 아니다. 기록은 재구성이다. 과거란 내가 마땅하다고 생각된 대로 재구성된 것일 수 있다. 나처럼 제도권에 의존하는 사람은 제도권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과거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고.
사료가 되는 기록의 사실성이나 중립성을 깨뜨리는 대목들이 곳곳에 있다. 토착어 대신 라틴어를 사용했기에 생각과 말을 엄청나게 동떨어진 것으로, 근사치로밖에 표현할 수 없게 해버렸다. 그리고 증서 등은 고풍스런 라틴어로 기록돼야 해서 공증인에게 대서를 맡겼다. 오늘날의 역사가가 진실을 알려고 한다면...(224쪽) 정치행위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특유의 도덕적 규범을 정당화했을 뿐 아니라 기록문서를 통해 속임수투성이의 겉치레를 퍼뜨렸다. 이것은 인습에 따른 것이었다.(229쪽) 재판소에서조차 머릿속의 기억에 의존하여 결정을 했으며 쓰는 것에 어두워서 문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토 대제가 영토 소유권을 주겠다고 교황에게 보낸 문서조차도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당시 문서의 기록과 행위는 무관한 것이었다. 왜곡된 기록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231쪽) 최근의 정보를 얻기도 어렵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정확하지 못해 역사 저작 대부분에 ‘희한한 잡동사니’가 끼어들었다고 한다.(247쪽) 집착하는 편견에 저술가들의 마음이 짓눌려있기도 했다.(248쪽) 과거와 현재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어 과거와 현재 사이의 차이점들이 은폐되었다.(250쪽) 위 내용들은 봉건시대 역사서술이나 기록에 대한 마르크 블로크의 견해다. 그리고 봉건시대의 특이성이다. 그럼에도 기록이 개인의 심리적 상태나 놓여진 요건, 사회적 요청이나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것들과 무관한 ‘사실’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과거의 기억을 전승한다는 의미에서 역사구성이 기록에 의존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위에서 법정에서조차 머릿속의 기억에 의존해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봉건시대에 유랑가객에 의해 서사시 형태의 이야기로 전승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문서에 의해 전승되는 시기로 변한다. 그리고 문서에 의한 전승도 처음에는 운문형태로 기록된다. 문서에 의한 전승은 서사시로 전승되던 것과 달리 전설과 뒤죽박죽 섞이는 경우는 줄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런 무훈시의 이야기들이 진짜 사료인 양 참조되는 경우도 있었다.(274쪽)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연대기에서도 한 해의 기점이 여러 가지로 달랐다. 기독교회가 1월 1일을 이교도의 축일이라고 배척한 덕에 1000년도라고 칭하는 해가 지방에 따라 6,7일씩의 차이를 두고 시작됐다고 한다. 오늘날의 책력으로 보면 999년 3월 25일부터 1000년 3월 31일까지, 유럽 각지역이 1000년이라는 해를 순차적으로 맞이했던 것이다. 기독교에서 1000년은 심판의 날이 아니던가.
확고부동한 진리를 상실한 이런 기록과 서술에서 우리는 어떤 사실을 길어낼 수 있을까. 또한 그럴 때 과거란 무엇인가, 혼란스럽다. 아직 그것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저자인 블로크가 쓴 이 대목이 눈에 띈다.
역사 서술이 좀더 후기 시대부터 시작되는 경우에도 이야기는 비망록 기록자가 기억할 수 있는 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시작됨을 흔히 볼 수 있다. 비록 이러한 서문들을 작성하는 데에 바탕이 된 독서물이라는 것들은 종종 잘못 정리되고 잘못 이해된 것들이었으며 따라서 아주 오래된 사실들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고 자처하면서도 실제로는 이같은 사실에 대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었음이 사실이지만, 그 대신 이 서문들은 그것들이 작성된 당대의 의식구조를 알려주는 데에는 귀중한 증거가 된다. 또한 이 서문들은 우리에게 봉건 유럽이 스스로의 과거에 대하여 가졌던 상(像)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이들 편년지나 연대기의 작자들이 일부러라도 편협한 시야를 가지지 않으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준다. (위의 책, 245-246쪽)
제도권 밖의 역사공부와 관련한 학인의 고민에 내가 맺고 있는 역사와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일부만이 혹은 역사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 별도로 있다고 생각했다. 기록이나 역사로서 제시된 것의 진위여부를 따졌었는데, 기록된 모든 것, 전해지는 모든 것이 역사란 생각이 든다. 진위를 따지고 권위와 권력에 의존하는 태도는 강력한 중심부를 만든다. 자신이 만든 그 중심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 중심이 실체화된다. 제도권 밖 역사공부에 대한 나의 판단, 그것이 무력할 것이라는 생각은 역사가 마치 삶과 세계의 진위를 가리는 것으로 인식한데서 비롯된 듯 하다.
구성되는 것으로서의 사실이란 무엇일까. 위에 인용한 마이크 블로크의 글에는 사실이란 말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사실들이 다른 층위에서 제각각 구성되고 모두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후기를 쓰기 전에도 쓰는 중에도 그리고 쓰고 나서도 혼란이 가중된다. 역사, 사실, 기록 등 그 혼란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을만큼. 같이 배우는 이들이 말하는 궁금증과 질문에 의지해 이번 이역만리 공부를 해나가게 될 것 같다.
마르크 블로크는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 없음을 잘 이야기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교과서(주류적 역사 서술)를 진실이라고 믿지만, 사실 역사는 그 역사를 서술하는 이에 의해서 재구성된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오염된 수많은 과거 기록들(사료) 속에서 봉건 시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낸다는 게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공부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후대에 무언가를 남기기 위함이란 측면도 분명 있겠지만, 역사를 쓰는 것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리고 블로크는 그런 측면에 좀 더 주목해서, 역사야말로 지성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는 본성적 활동이라고 얘기한 것 같고요. <봉건사회>를 따라가다 보면, 블로크도 중세 봉건사회로 내려가서 본 모습이 편견과 다르다는 것에 적잖이 놀라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요. 다음 세미나에서는 저희도 블로크처럼 봉건사회를 보고 놀라고, 흥미를 느끼면 좋겠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