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식해서 배우러 왔습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오던 날 만났던 선생님들께 드렸던 이야기입니다. 너무 날 것의 표현이었나 싶은 생각에 살짝 움찔했지만 사실인 것을 어찌.. 그리고 두 주가 지나고 나서야 느즈막히 ‘후기’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후기를 보았고) 선생님들의 필력에 너무 놀랐습니다.” 이번 규문 세미나가 끝난 후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드렸던 말씀이었습니다. 내심 ‘후기쓰기’를 조금 유예해달라는 간절한? 뜻을 전하고 싶었는데.. 흑흑.. 대실패. 이번 후기를 올리라는 답변을 듣고 적잖이 당황하며 “노노노”를 외쳤지만 어찌 대항? 반항?할 수 있으리오. 워낙 졸필이기도 한 까닭에 먼저 양해를 구하며 간략한 후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역사브리핑 시간들은 저에게 매우 소중했습니다. 익숙한 형식(즉, 듣고 배우는 형식) 안에서 다소 익숙하지 않은 소재로서의 역사적 사실, ‘십자군 원정’을 기존(물론 제 기준의 기존이겠습니다만.)과는 다른 각도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다른 관점’이라 언급하는 것 보다 그저 몰랐던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십자군 원정은 오랜기간 지속된 ‘종교전쟁’이라고만 알고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종교적 이념과 상관없이 발발하곤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문명의 방향성을 유럽에서 동방세계로 흐르는 것이 아닌, 동방문명과의 접촉/이식을 통하여 유럽이 오히려 확장/발전할 수 있었다고 보는 관점도 그러했습니다.
이번(5회차) 세미나 진행 범위(봉건사회II, 제1책) 앞쪽 부분에 ‘십자군 원정’이라는 단어가 두어번 출현합니다. 귀족의 본분이랄 수 있는 전쟁을 이야기하는 챕터에서 였습니다. 단어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반가웠고 문득 ‘(여행에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이번 배움이 없었으면 “~~ 이슬람…… 십자군 원정~~~”으로 이어지는 문장은 저에게서 그저 스쳐지나쳤을 겁니다.
다음은 봉건사회 세미나 시간들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형식입니다. 30여년전 선배에게 이끌려 세미나에 참석하곤 했던 시절. 놀러다니느라 슬슬 내빼지않았더라면 이 시간이 좀더 친숙했으려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이번 시간에 읽어냈어야 하는 부분은 가신제와 장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백하건대 이역만리 세미나가 끝나기 전까지 반드시 책 전체를 다 읽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지난 부분들도 아직 진행중이긴 합니다.)
오늘 제가 나누고 싶은 주제는 ‘책을 읽어내는 방식’에 대한 반성 입니다. 어려운 책이기에, 모르는 분야이기에, 또 이중부정이 많은 번역체이기에 쉽게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좀 더 잘, 천천히, 하나하나 읽어야만 했는데, 오히려 이러한 접근이 큰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단 두 문장을 근기로 단순화한 봉건제와 장원에 대한 관계도 였습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고 또 다시 생각해 보니, 매우 부끄럽습니다만 저로서는 느낀 바가 컸던 부분이라 이렇게 남겨봅니다.
문제의 두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p557) ……중세에는 봉건제가 확산되지는 않았으면서도 장원은 광범하게 보급된 그런 사회도 존재하고 있었으니… --> ‘오호라. 봉건제가 미처 닿지 않는 곳에도 장원은 널리 보급되어 있구나~~’
(p557) …… 그와는 반대로 장원이 없는 지방은 모두 가신제 또한 없는 지방이었다…… -->'오호라. 장원이라는 큰 집합안에 가신제(봉건제)가 있는 것이로구나~~'
더 이상 열심히 코끼리의 코나 다리만 만질 수는 없겠습니다. 또 나무나 곁가지에 붙어있는 잎사귀만 쳐다보는 것도 그만해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숲을 보는 것 처럼, 소설의 큰 줄기를 읽어내려가듯 읽어보니 더 재미있게 읽혀집니다. 다시한번 고백하건대 우리의 세미나가 끝나기 전에 완독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곧 뵙죠.
진열샘께서 알아가시는 부분이 쏙쏙 보입니다 ㅎㅎ <봉건사회>는 혼자 읽다보면 알았던 내용도 어라? 하게 되는 구간이 너무 많지요. 그게 같이 모여서 떠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함께 코끼리 다리를 만져가며 봉건사회를 알아가 보자구요~!
ㅋㅋㅋㅋ 웃게 되는 후기로군요! 내용이 웃겨서가 아니라 진열쌤께서 어떻게 공부 중이신지 너무 잘 느껴져서 웃고 말았습니다. 블로크의 분석을 따라가는 건 물론 쉬운 건 아니지만, 그 가운데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는 건 순전히 읽기 능력인 것 같습니다. ㅋ 봉건제와 장원이 같은 게 아님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블로크의 분석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죠. 게다가 이런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계속해서 새로운 게 발견될 겁니다. 저도 아직 한 번 밖에 읽지 않아서 자신할 순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단 말이죠? ㅎㅎ 적어도 이번에는 놀러다니느라 빠지진 않으시니까, 먼 훗날 후회하지 않으실 순 있겠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