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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 6주차 후기: 노동계급의 '형성'
‘노동계급’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은연중에 ‘노동계급’이 이미 있고, 그들이 어느날 모여 일치단결하여 ‘자본가’에 맞서는 역사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래 그러한’ ‘노동자’와 ‘자본가’는 없습니다. 그런 계급 성향이란 역사적 조건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소되는 공유지, 사유재산권의 강조, 가난에 대한 경멸과 무시, 기계의 발전...이것들과 무관한 노동계급의 형성은 없습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역사적 조건과 결부되어 ‘형성’되는 노동계급을 추적합니다. 저자인 톰슨은 ‘계급’이란 마치 ‘사물’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이 책은 1892년 8명으로 시작한 ‘런던교신협회’의 결성에서 시작합니다. 이들은 하루가 끝나고 늘 가던 주점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의회 개혁’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제한 없는 회원수’를 받기로 결의한 이 협회의 자격요건은 하나입니다. “이 왕국들(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의 복지를 위해서는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범죄로 인해 자격을 상실하지 않은 모든 성인이 의원선출을 위한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것이죠.
이 ‘회원수 제한 없는’ 협회의 결성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노동자’라는 계급이 최근에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훗날 ‘대역죄’로 체포되고 ‘급진파’로 낙인찍히는 런던교신협회의 구성원들은 지금으로 치면 ‘노동자’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직종인, 상점주, 숙련직...지금으로 치면 차라리 ‘고용주’ 혹은 ‘프리랜서’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죠. 생각해보면 ‘노동자’란 ‘자본이 있는 사람이 전유할 수 있다’라는 관념 없이 성립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그 일에 오랫동안 종사한 사람이 숙련되어 다른 도제를 받을 정도의 ‘장인(master)’가 되어야 누군가를 거느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가 되고 기계가 들어서면서 기계를 돌리는 사람과 그들을 고용한 사람이 분리되기 시작했죠. 그 분리가 지금의 ‘자본가=고용인/노동자=피고용인’이라는 관념을 낳은 것이고요.
두 번째는 당시 영국인들의 ‘생득권’에 대한 감각입니다. 평범한 기술자들이 모여서 술 마시다 말고 ‘우리도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들고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1688년 명예혁명에서 시작된, 의회와 헌법 앞에 모든 사람은 ‘자유인’이라 자부하는 영국적 전통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영국의 ‘반(反)국교’ 전통도 한몫 했습니다. 각자의 교리를 외치는 교회에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인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생각을 모으고 단결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은 영국인 스스로 ‘생득권’을 가진 자유로운 국민이라는 감각, 그리고 부패한 귀족과 왕족에 대한 회의를 낳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숙련직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재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국왕이 되는 데는 오직 인간의 동물적 특징-곧 일종의 숨쉬는 자동장치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톰슨은 이때를 전후하여 가난한 사람에 대한 멸시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풍조가 있었음을 예리하게 잡아냅니다. 산업화 전까지는 온정의 대상이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잠재적인 폭도, 질서를 잡아줘야 하는 존재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산계급의 반응은 역으로 노동계급의 자생적인 힘과 주먹구구식 국가법의 대립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산계급이 인식한 빈민들의 ‘무질서’는 사실 민중 사이에서 용인되는 불문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일반 민중은 국가의 공식 법과 다른, 자신들 특유의 견해로 범죄를 다루어 왔습니다. 화폐 위조, 밀렵, 세금 포탈, 강제징병 회피 같은 것은 민중들에게 오히려 적극적으로 용인받은 행위였죠. 하지만 상업이 팽창하고 인클로저가 진행되면서 민중은 땅(공유지)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리고 빈곤에 처합니다. 그것이 본격적이게 된 18세기부터 국가법과 민중의 불문율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톰슨은 그때 빈번하게 들고 일어난 ‘폭도’는 사실 ‘혁명적 군중’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권리’가 ‘사유재산의 보호’와 동일한 개념이 되어가는 것에 제동을 걸고 ‘전통적인 온정주의적 도덕경제’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고 말입니다.
‘온정주의적 도덕경제’라는 말이 ‘사유재산의 보호’와 대립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재산이 있으나 없으나 권리는 곧 재산에 대한 권리라는 감각이 앞서니까요. ‘온정주의’는 ‘권리’의 경계를 흐리는 불순물 취급을 당하지요. 하지만 사실 모든 관계는 권리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나 불문율이 작동합니다. 이것들이 모두 무시되거나 ‘무질서’로 치부될 때 남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대신 다른 모든 관계로부터는 ‘뿌리 뽑힌’ 감각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이 모든 노력을 뒤로 하고 나타난 자유주의적 경제의 소산인 걸까요? 아니면 전통적 민중의 힘과 자발성을 이어받은 것일까요? 톰슨은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동참한 노동자들의 주체적 역할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노동 계급’이란 자본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민중적 힘이 발휘되는 역사 가운데 ‘형성’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저항의 힘은 어떻게 응집되고 발휘될까요? 이런저런 질문이 남습니다~
E.P 톰슨은 영국노동자가 계급적 의식을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를 1790-1830년으로 추적하는데요. 저 역시, 동네 선술집에서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하며 시작되었을 다양한 직종의 조그마한 모임이 1실링을 내면 회원수에 제한없는 협회를 구성하게 되고, 규모가 커지면서 강령을 만들고, 정부에 저항메세지를 내고 폭력과 구속, 다시 반복하는 개혁운동 등 일련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노동계급’ 자체를 ‘생산직 공장노동자’라고 전제하고 모든 논의를 해왔던 것을 돌이켜보게 되었네요. “계급이란 관계이지 사물이 아니다”
'온정주의경제'라는 것도 누가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보여집니다. '스피넘랜드'나오면서 다음 시간에도 계속 얘기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