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홉스봄의 <자본의 시대>를 끝내고, 이번 시간부터는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함께 읽었습니다. ‘역알못’인 저에게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었는데요. 하지만 선생님들과 토론하면서 몰랐던 배경 지식들을 주워들으면서 에드워드 파머 톰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이번에 책에 적응이 됐으니, 다음 시간부터는 한결 편안하게 읽어올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기대해봅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우선, 저는 이 책의 머리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에드워드 파머 톰슨이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란 제목의 뜻을 하나씩 세세하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단어 하나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왜 ‘형성’(making)이라는 말을 쓴 걸까요? ‘노동계급’이라는 게 원래부터 있었다거나 어떤 시기에 갑자기 출현했다거나 권력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서 ‘너희는 노동계급’이라고 명명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노동계급’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즉, 특정한 ‘조건’과 활동의 ‘주체’가 뒤엉키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톰슨에게 ‘형성’ 개념에서 특별한 점은 노동계급 주체의 능동성을 보려고 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읽어가면서 노동계급의 어떤 움직임들이 역사를 이끌어갔는지 주목하는 게 핵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왜 ‘노동계급들’이 아니라 ‘노동계급’이라고 말했는지 설명해줍니다. ‘노동계급들’이라고 말하게 되면, “따로따로 분리된 일군의 현상들을 느슨하게 한데 묶는 말”이 됩니다. “이곳에 있는 양복제조공들과 저곳에 있는 직조공들” 이들이 다 합쳐진 게 ‘노동계급들’입니다. 제 방식으로 이해하면 ‘노동계급들’이라는 단어는 ‘노동하는 사람들’을 구조화(structure)하고, 범주화(category)하도록, 즉 고정적인 이미지로 만듭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생생한 경험자료 상으로나 의식 상으로나 서로 분리되어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여러 사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현상”입니다. 톰슨은 ‘계급’을 인간관계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어떤 것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톰슨이 말하는 ‘계급’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제게는 확-! 이해되지 않는 듯합니다. 왜 ‘노동계급’인가? 또 계급을 구조나 범주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그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은 앞으로 읽어나가면서 계속 고민해보고 싶네요.
제한 없는 회원수
지금 저희에게는 ‘투표권’이 있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성인이 되면 부자든, 가난하든, 권력을 가졌든,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든 상관없이 모두 투표권을 행사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투표할 권리’는 이전 역사에서도 당연했던 걸까요? 18세기-19세기 이전에만 해도 ‘정치적 권리’라는 것은 황제와 귀족 엘리트, 재산 소유 집단에게만 주어진 권리였습니다. 하지만 1790년대 “잉글랜드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지는 ‘생득권’은 <인간의 권리>에서 등장”하는데요! 이 ‘생득권’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파되고, 이 개념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존의 ‘정치적 권리’를 의심하게 합니다. 왜 왕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병사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는가? 왜 가난한 자들에게도 아무런 권리가 없는 것인가? 그런 의문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조직이 탄생합니다. ‘런던교신협회’라는 조직인데, 이 조직의 독특한 성격은 ‘우리 회원의 수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직종인, 상점주, 숙련직인, 부자, 빈민 상관없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생명을 가진 누구든 권리를 가진다는 ‘생득권’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주었고, 사람들이 자신들이 구성한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변화의 씨앗이 움트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무제한의’ 방식으로 선정과 선동에 문을 활짝 연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뜻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는 케케묵은 금기사항들을 내던져버리고 일반민중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활동과정과 자발적 조직과정을 신뢰하는 것이었다.”
크리스천과 아폴리언
그리고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동시적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18세기는 사회적으로 ‘유니테리언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유니테리언주의’는 ‘합리성’을 강조하는 교파였는데요. 하지만 빈민들에게는 너무 차갑고, 세련된 교파이기에 인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인간의 권리>와 함께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번연의 <천로역정>이 등장하는데요. 이 책은 국가권력을 아폴리언(마왕)으로 표현하고, 크리스천은 그들과 싸우는 존재로 그려냅니다. 이는 “미천한 사람이 자신이 받을 ‘보상’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했을 뿐 아니라 압제자들이 장차 당할 고통을 상상함으로써 일종의 복수를 즐기는 것” 또한 가능했습니다.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권력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번연의 교파는 ‘감리교’로 발전하는데, ‘감리교’는 빈민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조직을 구성하는 훈련의 장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에 어떤 역사적인 동력으로 작용할까요?
자유에 대한 감각 변화
앞에서는 민중들이 종교의 영향을 받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후에는 법률의 영향을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헌법’에서 ‘생득권’을 보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귀족문벌파, 선동정치가, 민중들 모두 ‘자유’라는 개념을 찬미했는데요. 그들은 자신들을 ‘자유인으로 태어난 잉글랜드인’이라 칭하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전환시켜준 사상가 페인이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위에서 소개한 <인간의 권리>라는 책을 쓴 인물인데요. “페인은 거의 100년 동안 급진주의의 영역을 테두리짓게 된 새로운 틀을 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틀은 그것에 밀려나 자리를 물려준 입헌주의만큼이나 명확하고 훌륭하게 규정된 것”이었습니다. 페인은 군주정 원칙 및 세습 원칙에 대해 경멸했고, 인간본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낙관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믿음 속에서 “정치적으로는 사회 내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의 시민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의 말은 ‘자유인으로 태어난 잉글랜드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도시 노동자들이 가졌던 ‘잠재적 정치’적 태도에 스며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노동계급’이 형성되는 흐름의 ‘씨앗’ 부분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영역, 빈민의 영역, 헌법의 영역 등등 각 부분의 어떤 움직임들이 ‘노동계급’을 형성하도록 만들었는지 잘 쫓아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6주차 공지입니다.
- 다음 시간에는 E. P 톰슨이 쓴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상)권 5장, 6장, 7장(327쪽)까지 읽어옵니다.
- 발제와 간식은 미영샘(5장)과 현정샘(6,7장)입니다. 후기담당은 현정샘입니다~
영국의 반국교도운동이 엄청나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는데요. 한편으로 민중들이 회합에서 토론을 통해 교육,의식화되고 문화적활동을 향유하면서 자발성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특히 감리교가 영적평등주의로 빈민들을 위한다면서 자기표현이 불분명한 사람들을 궁핍하고 불안정한 삶과 노동의 고통에 대해 참고 견딜 수 있게 내세나 도래할 천년왕국으로 피신시켰다는 점에서 종교의 역할을 다시 환기하게 됩니다. 톰슨은 부흥운동에서 나오는 18세기 빈민들의 히스테리적인 가난과 절망의 표현을, 억눌린 에너지가 어떻게 분출되는지 잘 지켜보라는 것 같습니다. 이번 텍스트는 실제적 사건들이 씨줄날줄처럼 엮이며 설명되어 있어서인지 복잡한 과정을 대충 넘어갈 수 없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