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최후의 목적을 미리 정해놓고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만약 그런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다."
드디어 <자기 조직하는 우주>를 다 읽었습니다. 얀치는 마지막으로 창조적 과정과 개방성의 차원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창조와 개방성이라고 하면 바로 와닿질 않죠. 우리는 창조를 알게 모르게 기독교적으로, 하나의 닫힌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니까요. 하지만 얀치는 창조적 과정은 완성된 뭔가를 향해 다가서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는 공명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글쓰기를 예로 듭니다. "한 개의 문장을 ㅈ거는다. 그것은 여전히 자유로이 선택된다. 하지만 그것은 즉시 또 다른 문장들을 끌어들이고, 그에 따라 첫번째 문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와 같은 문장들의 연속이 일정한 질서-비평형 구조라고 할 수도 있다-를 이룬다면, 이 질서에 다시 의문이 제기되고, 새로운 구조로 진화한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작가는 한 번도 영속적인 질서에 도달함이 없이 그와 같은 불안정 문턱을 수없이 넘어서 끌려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창조는 결코 정태적일 수 없습니다. 역동적 틀에서의 개방성에 이루어지는 '새로움'과 '확인'이 계속 연쇄되는 과정으로서만 창조가 있을 수 있는 것이죠. 다층적 수준들의 동시적인 떨림이 바로 창조인 것입니다. '목표' 없는 창조.
이런 창조적 과정을 통해 생명은 새로운 수준의 '상승'을 합니다. 이때 유념해야 하는 것은, 상승이란 '보다 낮은 것'에서 '보다 높은 것'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저 수많은 의식 수준들의 다수준적 떨림, 그리고 그 떨림으로 인한 풍요를 '상승'이라 하는 것이죠. 이러한 떨림은 환경과의 관계를 중단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하게 됩니다. 그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진화'라고 할 수 있죠.
<아프리카의 신화와 전설>은 과정으로서의 창조가 펼쳐지는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는 인간과 동물의 위계가 없습니다. 인간도 얼마든지 동물로 변할 수 있고, 동물도 인간보다 훨씬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세계죠. 동물들은 점술가, 농부, 도예가 같은 기능적인 역할도 담당합니다. 이번에 저희를 열광(?)시킨 것은 거미였습니다. 아프리카 전설에 표범이나 재규어가 나오는 건, 그럴 만한 환경이라고 생각해서 놀랍지 않은데, 의외로 거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거미는 꾀가 많고, 그 꾀로 자기보다 훨씬 큰 맹수를 혼내주는 지혜로운 동물로 나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신성한 동물로 등장하지요. 그리고 다른 동물들과 소통하지만, 조금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이런 거미의 특징은 역시 거미줄에 있겠죠. 어둡고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갑자기 출몰하는 거미는, 줄에 매달려 일견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거미는 살아있는 현실공간과 하늘나라를 연결하고 다른 가능성을 펼쳐내는 존재로 등장하는 게 아닐까요.
다음 시간은 <말리도마> 읽고 공통과제 써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