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 친구와의 다툼.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함. 나는 그걸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혼자서는 정말로 내가 남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슬퍼짐.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동안 배웠던 번뇌심소들 중 아주 많은 것들이 스쳐간 것 같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엉성하게 적어본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네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청각 혹은 이식의 경우이다. 청각적 대경이 근과 식과 만난 촉의 작용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의 뉘앙스가 불편하게 느껴졌으므로 수(그중에서도 마음의 느낌에서의 불편)가 일어났다. 그리고 쟤가 나에게 어떤 불만을 이야기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온 마음이 쏠렸다. 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의식의 경우로 넘어갔다. ‘내가 이해를 못할 뿐 아니라 하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이르자 우선 거슬림, 즉 진의 마음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 마음의 방향이 ‘누가 다른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에 쏠리다가(사) 그 다음에 ‘나는 정말 연민이란 것이 없구나’라는 쪽으로도 쏠렸다(사). 첫 번째 생각에 머물 때는 처음에는 만심이 일었다. 내가 높고 옳다는 생각(견취견)이 가득차서, 네가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있다는 식이었다. 이때는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절대 그리고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식(변집견-단견)으로, 전체를 작은 이미지에 동일시하였다. 그러나 나에게 저렇게 말하는 친구에 대해 분의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괴로움을 줄 목적으로 ‘그런 사람은 없다’라고 말했으니 해의 마음이 일었던 거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으로 넘어갈 때는 의심이 들었다. 정말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을까? 내가 유별난 게 아닌가? 이 의심이 번뇌인 의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혼동스러웠다. 그러다가 자조하기 시작했다. 연민하지 못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식으로. 이 역시 만이었다. 나는 다 이기는데 조금 모자라는 게 있다는 식의 ‘조금으로 여기는 만’이었다. 그리고 더 미세하게는, 내가 약간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그런 애정조차 없는 인간인 것처럼 나를 과장해서 비하했다. 있는 것을 없다하는 광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친구의 말을 잘 잊지 않는 한의 상태가 있었고, 이후 하루동안 산란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