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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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규문에서 창조적 진화 강좌를 듣던 마지막 날 마음에서 울림이 세게 일어나 정아샘께 구구절절 개인톡을 남겼었다.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그 톡이 인상적이었다고 하시며 이번 채운샘의 인트로 강의 후기를 맡기실 줄이야! 오 마이 갓!^^ 자료로 올려주신 책들도 낯설었고 돌아서면 기억이 사라지는 나로선 후기작성 부담이 꽤나 됐지만, 그럼에도 강의와 더 찐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이렇게 올려본다.
그동안 겪은 팬데믹을 통해 우리의 힘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자 강의를 신청했다. 일상의 소중함을 간절히 염원하던 때를 하얗게 잊고 팬데믹을 겪기 전보다 더 빠르고 거칠게 일상을 살고 있는 현재를 돌아보고 싶었다.
채운샘은 강의 초반 두 소설을 소개해주셨다. 보카치아의 데카메론과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극인데, 이 둘은 각각 흑사병과 콜레라라는 전염병이 강타한 시기를 배경삼아 쓰였다. (물론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콜레라 대유행 10년후쯤 쓰임)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주인공들의 삶의 태도를 보면서 팬데믹을 겪고 있는 우리의 삶의 태도와 비교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데카메론에서는 남녀 귀족들 10명이 감염환자들을 피해 달아나 자기들끼리 열흘 동안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하층민으로선 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하층계급은 흑사병에 걸리면 누구의 도움도 받기 어려웠으며 무관심속에서 밤낮으로 죽어갔다.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주인공 프로스페로 공이 건강하고 쾌활한 친구 천명을 소집하여 데카메론에서 보여지듯 환자들을 피해 성처럼 지어진 수도원으로 피신한다. 이들 역시 바깥걱정은 부질없다고 여기고 즐거움을 누리며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있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도피해봤자 누구나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죽음 또한 기꺼이 통과해야하는 삶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를 어느 쪽의 삶에 귀 기울이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전염병은 상류층, 하류층할 것 없이 누구나 감염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돌봄도 받기 어렵고 생계유지를 위해 사람들과 접촉이 많은 직종에 종사하는 하층민들의 피해는 데카메론과 붉은 죽음의 가면에 나온 귀족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크다. 강의에서 본 사진 중 라스베이거스에서 코로나 감염 노숙자들을 주차장 칸칸에 질서정연하게 눕힌 모습은 인간의 존엄성을 과감하게 박탈한 모습이어서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그렇게나 화려하고 수많은 호텔이 즐비한 곳에서 빈방을 내어주는 어떤 이도 없었다니.
하물며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흑사병과 콜레라가 돌던 시기 전염병의 공포와 더불어 드러낸 사람들의 행동 중 그 원인을 타자에게서 찾으려 하고 지목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증오심과 혐오감을 가졌다는데 결국 그들의 희생자가 된 자들은 흑인과 유대인이었다고.
팬데믹 시기에 미국에서 지내며 타 인종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했다는 채운샘 친구분이야기를 통해 우리시대나 중세시대나 사람들의 행동 패턴 또한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을 떠올릴 만큼 전염병의 확산보다 더욱 공포스럽고 잔인한 일일 것이다.
이런 연유로 전염병을 사회학적인 학살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사회학자의 이야기는 매우 일리가 있어 보였다. 인간은 왜 인종이나 민족 또는 종교가 다를 경우 그 타자에 대해 끊임없이 증오심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증오와 분열의 근본 원인을 우리는 과연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인류를 정복하려는 뿌리깊은 의식을 내려놓지 않으면 힘들 것이고, 공존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 시기에도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작은 실천을 하며 타자와 연대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함께 공존하고자 노력했던 분들의 이야기는 많은 귀감이 되어주었다.
그럼 다음번 주제 ‘호모 딜리베리쿠스의 딜레마’ 강좌를 기대하며 이상으로 후기를 마친다.
저도 시대를 막론하고 전염병이 돌 때마다 패턴이 비슷하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타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고, 같은 전염병을 겪으면서도 그걸 겪는 모습은 천차만별이고...
하지만 '모든 사건은 반전의 계기이기도 하다'는 샘의 말씀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찰나적으로 경험한 '공통적 삶'에 대한 시도들이 그 씨앗이겠지요.^^
어떻게 그 씨앗들을 키워갈 수 있을지, 남은 강의들을 들으면서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후기 감사해요!😊
이렇게 놀라우리만큼 항상 같은 패턴으로 (국경, 빈부격차, 종교, 피부색등의 차이를 갖고 구분지어 혐오하고 증오하는 이런 현상들) 나타나는 이유가... 개별주체에만 매여 그것만이 전부라고 믿고 개별주체의 경계를 넘어서서 사유하려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같네요.ㅜ 정아샘 말씀처럼 공동체나 네트워크에 결합해서 공통적 삶에 대한 여러 시도들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씨앗이라 저도 믿습니다. ^^
참 이번 강의에서 또 전 세계에서 맥도날드를 쉽게 접할 수 있던 환경이 된 그 이면에는 거대자본이 아마존 농업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사실이 숨어있었다니. 이번 팬데믹으로 뭘 끊을건지 물으신다면 평소에도 거의 먹지않지만, 맥도날드 버거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