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특강 두 번째 후기입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들을 흥미롭게 곱씹고 있었는데요. 지나가시던 정아샘이 “오늘 강의 재밌었지! 그럼 이번 주 후기는 샘이 쓰면 되겠다~” 하셔서 이렇게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무려 14장이나 되는 강의안과 감속의 윤리를 말하기 속도로 실천한 민호의 강의방식 덕분에 중간 중간 엉덩이가 들썩거리기도 했는데요. 어렴풋하게 넘겨짚고 그냥 흘려보냈던 지점들을 진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팬데믹이 활성화시킨 배달, 택배, 온라인 쇼핑 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감수성을 바꾸어 놓았는지, 그리고 그 감각이 어떻게 다시 팬데믹을 가능케 한 배치들을 활성화시키는지를 살펴보았는데요. 덕분에 끊어져 있던 고리들이 연결되고, 블러 처리되어 있던 영역들이 선명해졌습니다.
자본은 얽혀있던 것들을 끊어내고, 가속화에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지우는 경향이 있는데, 구체적인 지점에서 어떻게 그 경향이 드러나고 강화되는지를 볼 수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이런 강의를 들으면서도 혹했던 어플인 테무였습니다. 테무는 사기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렴한 가격의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 앱인데요. 작년 하반기 미국, 한국, 일본에서 쇼핑앱 순위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해외 배송임에도 불구하고 무료 배송, 무료 환불이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그런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는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 공급망을 단순화하고, 판매 수수료율을 대폭 감축하고, 인건비와 환율이 저렴한 중국에서 제조부터 포장까지의 과정을 마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테무와 같은 이커머스 기업들은 유통되는 국가의 유통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에 유통망을 단순화하고 확대하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국내 도.소매 업체가 줄도산했고, 대다수의 배달업 종사자들이 플랫폼 노동자로 전환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쉽고 빠르고 저렴한 소비가 가능해지면서 대량 소비를 촉진했고, 그것이 대량 생산을 부추기면서 그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열대림을 밀게 되고,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들을 서식지를 잃게 되고, 그렇게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가 퍼지기 쉬운 상황이 되고, 팬데믹이 또 다시 이런 경향을 강화하는... 기묘한 풍경들의 연쇄작용을 볼 수 있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저렴한 가격이 가능하지?’라는 질문만 던져도 줄줄이 딸려나오는 것들이 있고, 거기서 제거되었던 맥락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감히 알려고 하는 시도”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탈맥락화의 과정에서 서사가 소거된 자리를 앙상한 이미지들이 채운다는 부분도 흥미로웠는데요. 정말이지 얄팍한 광고 이미지는 그 뒤의 과정들을 가리고, 생각할 의무와 계기를 빼앗아 가는 것 같아요. 친구 중 한 명이 홍보를 위한 통계 자료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데요. 기업으로부터 홍보할 제품을 받아 최소 200명의 사람들에게 사용하게 하고, 적절한 홍보 대상과 가격 선정을 돕는 일을 합니다. 친구는 일을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얼마나 불필요한 노동이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이미지를 생산하는 노동의 일부만 해도 이렇게 많은 노동력이 동원되는데, 그 전체의 규모는 어떨지...
시간을 넘겨서까지 진행되었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질문과 소감을 남기셨어요. 그 중 남순샘의 질문이 기억에 남는데요. 배달이 어려운 지역이라 시켜먹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배달음식은 시켜먹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도대체 왜 배달을 시켜먹는지 진심으로 궁금해 하셨어요. 요리를 직접 하거나, 누군가 차려준 음식을 먹을 때와는 달리 배달 음식을 먹을 때에는 스스로를 홀대하는 것 같은, 내팽개쳐 버리는 기분이 들지 않냐고 하시면서요. 종종 엄마와 맥주 한 캔에 자극적인 배달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하는 저로서는 멈춰 서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민호가 자세히 묘사했던 미묘한 불쾌함(약간 말랑해져 있는 플라스틱 용기와 깔끔하게 뜯기지 않는 비닐, 배달앱의 사진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을까요? 광고의 이미지와 중독적이고 자극적인 맛으로 포장되지 않는, 가만 멈춰 서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묘한 그 지점이 지도 그리기의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쏟아지는 컨텐츠와 광고들이 멈춰 있을 틈을 주지 않아 어렵긴 하지만, 그 속도에 휩쓸려가지 않을 수 있는 힘들을 차곡 차곡 쌓아가고 싶어요. 다른 종류의 기쁨과 유쾌함을 발명하기! 간디의 물레질과 민호의 손때 묻힌 지도 그리기에서 실천의 방향을 어렴풋하게 그려볼 수 있었어요. 강의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어떤 지도가 펼쳐질지 기대가 됩니다!
우리가 막연하게 띄엄띄엄 알고 있던 상황들이 구체화되고 재맥락화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샘이 적은 것처럼, 우리가 무심하게 넘겼던 기묘한 지점들 앞에서 멈춰 서서 생각해보는 일이 그런 재맥락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속도에 휩쓸려 가지 않을 힘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다른 종류의 기쁨과 유쾌함 발명하기'도 마음에 잘 담아봅니다.^^ 다음 강의도 기대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민호샘께서 강의를 알차게 준비해주신덕에 저도 샘들처럼 그동안 모호하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앞으로 욕망을 어떻게 조율해가고 현재의 위치에서 즉각적으로 어떤 실천을 해나가는게 좋을지 세심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강의 후기도 잘 읽었습니다! 후기 올려주신 샘 말씀처럼 속도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다른 배치속에서 다른 실험들을 해나가며 그 힘들을 차곡차곡 쌓아가야겠다 다짐해봅니다~. 그럼 내일 있을 코로나 블루 강의때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