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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방학 기간에도 불구하고 화요일 저녁은 팬데믹 특강으로 지적 열기가 뜨거운데요. 3주차에는 정옥샘께서 <코로나 블루, 마음과 관계의 락다운>를 주제로 진솔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3년 4개월만에 ‘23년 5월 11일 엔데믹이 선언되었고,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우린 마치 코로나19 팬데믹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간 듯합니다. 전 세계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던 팬데믹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고 어떻게 변한 걸까요? 이렇게 큰 사건이 너무 빨리,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잊히고 있지만, 저는 이번 특강을 통해 다시 한번 팬데믹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코로나 블루에 대해서는 제가 무심하게 지나갔던 지점을 반추할 수 있어서 강의가 저에게 매우 소중히 다가왔습니다. 어제 샘들이 각자가 겪은 코로나 블루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정말 각양각색의 폭넓은 얘기들이 오갔지요.
정옥샘은 딸의 얘기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딸이 겪은 상황을 통해 팬데믹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해요. 샘은 연구실과 집이라는 동선을 벗어날 필요가 없었기에, 연구실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지는 정도로만 주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저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떠올려보면, 정옥샘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수준으로 조심했던 것 같아요. 동선을 최소화하고, 대중교통 수단이나 식당 이용시 마스크를 철저하게 착용하며, 모임이나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회사에 출근했고, 주말에는 규문에 공부하러 왔기에 관계 단절, 공간의 차단 등에서 불거지는 우울증은 저에게는 머나먼 얘기였지요. 그런 만큼 단절, 고립에 노출된 많은 이들의 우울감, 고통에 대해서는 무심했음을 느꼈습니다. 정옥샘 딸은 프랑스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극심한 혐오, 배타주의로 더 고립감과 단절을 심하게 겪은 것인데, 그런 상황에 놓이면 정말 답답하고 막막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정옥샘은 강의 첫 부분에 딸의 뿌리 깊은 위생 관념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고립적인 환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이는 타인에 대한 공포와 배타주의와 관련된다고 설명해주셨어요. 또한 딸의 배타주의는 프랑스인들의 배타주의와 만나면서 더 강해졌다고 합니다. 초반에 확진자 및 코로나 사망자가 급속도로 늘었던 유럽지역에서 동양인에 대한 혐오, 배타주의가 무척 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코로나가 발생한 곳이 중국 우한이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같은 동양권에서도 중국인에 대한 증오, 배제가 확대되었습니다. 저는 우한 폐렴 얘기가 뉴스에 한창 등장했을 무렵인 ’20년 1월에 중국에 짧게 여행을 갔었고, 매일 관광지가 폐쇄되고 거리가 봉쇄되는 걸 목격했었지요. 돌아와서 중국에 다녀왔다고 하니, 사람들이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제 곁을 멀리하는 경험도 했는데,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 기간에 유럽에서 고립과 배제를 겪은 분들은 훨씬 강한 우울감이 왔을 것 같네요. 정옥샘은 팬데믹이 우리의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척 공감이 갔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표면적으로 이질적인 타자를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극한 상황에 부딪히니 타자에 대한 배타성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차단되고 봉쇄되는 건 신체만이 아니라 마음도 해당하고요. 신체와 정신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작동되는 걸 고려할 때, 정도의 차이는 크겠지만 우린 3년간 고립과 단절을 경험했습니다. 마스크를 쓰더라도 회사, 규문을 통해 사람들과 접속하며 저는 고립 또는 단절되었다는 느낌을 거의 못 받았지만, 코로나 관련 단어 노출 빈도를 종합한 결과는 1위가 코로나, 2위가 우울, 그 다음이 우울증, 블루, 우울감으로 5위까지 모두 ‘코로나 블루’와 관련됩니다. 실제 병원을 통해 집계한 통계 자료를 보더라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우울증 환자가 33% 증가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기존에 우울증을 앓던 환자들의 폐쇄성은 더욱 악화되었고요. 그렇다면 중세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 등 역사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전염병에서도 우울증이 넘쳐났을까요? 역사적 기록, 소설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그 시대에는 우울증이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정옥샘은 ‘코로나 블루’는 바이러스를 원인으로 한다기보다 우리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보셨지요. 앞에서도 얘기되었듯이 우리의 타자에 대한 배타성은 더욱 강화되고 관계 역량은 떨어진 만큼 코로나라는 전염병은 우리에게 심한 우울감을 유발했습니다. 호흡기 질환이고 비말을 통해 전염되기에 우린 되도록 타인을 멀리하고 대면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며 거리를 두어야 했고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우리는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나는 정서를 신체의 행위 역량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고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신체의 변용들임과 동시에 이러한 변용들의 관념들인 것으로 이해한다.” (스피노자, 에티카 3부 정의3)
“기쁨의 정서가 정신과 신체에 동시에 관계할 때 나는 이를 쾌감이나 희열이라 부르고, 슬픔의 정서는 고통이나 우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쾌감과 고통은 인간의 부분들 중 하나가 다른 부분들에 비해 더 많이 변용되는 경우에 인간과 관련되는 반면, 희열과 우울은 신체 전체가 동등하게 변용되는 경우와 관련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스피노자, 에티카 3부 정리 11의 주석)
상기 스피노자의 인용문에 따르면 정서는 신체의 행위 역량과 관련합니다. 하나의 신체가 다른 신체와 결합할 때 일어나는 변용들, 그 변용이 유발하는 힘의 느낌이 정서라고 스피노자는 말하죠. 기쁨은 행위 역량의 증대와 연관되는 정서라면, 슬픔은 행위 역량의 감소와 관련되는 정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우울은 슬픔에 해당하는데, 우리의 신체 역량을 전반적으로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정옥샘은 잠깐의 여행이나 한 달 살기, 한 잔의 술이 일시적인 쾌감이라면, 우울은 지속적인 슬픔이라고 말씀하시며 전자가 후자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떠올리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우울증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네요. 우울증은 관계에 대한 무능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가 다른 존재와 마주치면서 기존의 태도와 습관을 고수하는 일이 역량을 감소시키는 걸 잘 보여줍니다. 다른 존재란 내 주변에 나타나는 타인은 물론이요, 코로나 바이러스도 포함할 수 있는데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여 팬데믹이란 상황이 펼쳐졌을 때, 우리가 기존의 방식대로 살거나 안주하던 삶의 방식을 유지하지 못함을 슬퍼하면 우리의 역량은 퇴화하고 우울증이란 늪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팬데믹의 상황을 통해 드러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자기 변용의 계기로 삼아 다른 길로 나아간다면, 우린 충분히 기쁨의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샘들이 코로나 기간에 공부를 더 깊이 하면서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무척 공감이 갔네요. 너무나 분주하게 살았던 저에게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 공부를 집중하면서 제 자신과 깊이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재택근무와 시차출근제, 각종 회식과 워크샵의 실종 등으로 저에게는 이 기간이 우울하기보다는 편안함으로 다가왔지요. 많은 이들이 크게 고통받고 우울했던 이 시기를 자본주의 틀 안에서 나름 명랑하게(?) 보낸 경험담으로, 저는 줌 채팅창이 가득하게 공분을 샀습니다. ㅋㅋ
정옥샘 강의에서 우울증과 자가면역 질환의 연관성 내용도 흥미로웠는데요. 자신의 신체 내에서 정상조직 및 세포에 대해서까지 과도한 면역반응을 보여 자신의 기관, 조직, 세포를 외부 물질로 오인, 공격해 발생하는 게 자가 면역질환이지요. 즉 이 병은 공격을 피하려고 지나치게 방어력을 높이는 데서 비롯됩니다. 이는 몸과 마음, 사회가 작동하는 바탕에 깔린 배타주의와 유사하네요. 타인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어 대인기피증, 히스테리를 유발하는 배타주의를 사회의 자가 면역질환으로 간주해 볼 수도 있지요. 배타주의가 강할수록 우린 사회의 작은 갈등조차 해결할 능력을 상실하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을 공격하는 데에 이르기도 합니다. 타인으로부터 어떤 상처도 받기는 싫으면서 외롭고 고립되는 건 못 견디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면역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팬데믹과 같은 사건은 우리가 이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났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기에 우리가 어떻게 마음의 면역을 기를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역은 위생 관념과 예방주의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극도의 위생과 모든 사건을 막고자 하는 예방은 오히려 우리를 더 철저하게 타자를 배제하고 고립으로 몰아갑니다. 즉 극도의 우울감에 빠질 수 있겠지요. 이와 함께 신체에서는 자가면역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네요. 정옥샘 딸의 경우도 팬데믹 기간에 고립감, 우울증을 겪으면서 신체적으로는 뇌하수체 선종을 앓게 되었는데, 뇌하수체는 우리 몸의 다양한 호르몬 분비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특히 정서와 관계된 육체적 표현 및 자율신경계통에 영향을 주는 곳이라고 합니다.
특강을 듣고 샘들과 각자 코로나를 어떻게 겪었는지 얘기를 나눴는데요. 다양한 현장에 있는 만큼 얘기도 다채로웠습니다. 윤성샘은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할 무렵 50플러스에서 채운샘 강의를 듣게 되었고, 이 시기에 만난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활력을 얻으며 팬데믹 기간을 잘 넘어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순샘은 밀집도가 높은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있어서 통제로 인한 답답함이나 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상대적으로 덜 느꼈던 것 같고, 코로나에 대한 유럽과 우리나라의 코로나에 대한 반응과 대책이 다른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얘기하셨어요. 코로나와 관련된 정책과 국민의 반응은 그 사회의 특징, 관계방식, 문화를 그대로 드러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계신 신우샘은 마스크를 쓰면서 수업하는 일이 처음에는 힘들었고, 획일적인 정책과 대응이 유감스럽다는 의견을 주셨지요. 저도 팬데믹 기간을 떠올려보면, 정부와 회사의 대응 방안이 효과적이라기보다는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네요. 제현샘은 팬데믹 기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요양원에서 근무했었는데, 병약한 노인들에게 코로나가 빠르게 전염되는 걸 목격한 경험을 얘기해주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도 걸리면 고열에 인후통, 근육통, 기침으로 고생한 코로나는 쇠약한 노인들에게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 같아요. 해민샘은 우울감과 관련되어 상담받은 적이 있었는데, 자꾸 어린 시절을 물어보고 이것과 관련한 해석으로 상담은 우울감 해소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었으며 짜증만 유발했다고 얘기했지요. 들뢰즈와 과타리가 비판한 정신분석이 상기되었고,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우울감을 어떻게 어린 시절 경험과 연관 되는 것으로 해석하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저, 윤순샘, 희수샘은 대략 비슷하게 코로나 기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요. 한 마디로 별 일없이 잘 보낸 것인데, 공부와 일을 통해서 고립감이나 단절을 느낄 새도 없었지요.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늘리며, 분주했던 삶을 다이어트하는 기간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심각하고 힘든 상황이었던 시기와 관련된 평안하고 무탈한 경험담을 통해 저희는 부르주아 1, 부르주아 2, 부르주아 3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양극화는 팬데믹 상황에서 더 확대된 느낌이었네요. 선주샘도 주역 공부로 힘든 코로나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었다고 얘기하셨고, 호정샘 역시 공부와 공동체 생활로 우울할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각양각색의 경험이지만, 모두 공부에 관한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잘 겪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공부와 타자와의 접속을 통한 마음의 교류가 결국 마음의 면역력을 강화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화요일 저녁에 시간을 내어 강의를 듣고 서로 생각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이런 과정들이 어떤 사건이 닥쳐도 잘 겪고 긍정할 수 있는 마음의 면역력을 기르는 것으로 생각하며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강의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는데 잘 정리해주셨네요.^^ 저도 우울증이 새로운 관계 맺기의 무능에서 비롯된다는 말씀에 공감이 되었고, 자가면역 질환과의 연관성을 통해 우리 몸, 마음, 사회의 바탕에 깔린 배타주의를 보신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정옥샘도 말씀하신 것처럼, 중요한 건 마음의 면역을 키우는 일일 텐데요, 강의 후 샘들의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공부와 타자와의 접속을 통한 마음의 교류"가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한 듯하네요^^ 후기 감사해요!
역시 '후기 전문가'다운 후기네요! 강의 때 듣고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읽다가 생각해보니 부르주아 1, 2, 3 세 분의 코로나 생활기도 나름 삶의 가치를 새롭게 변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