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고전의 원문을 강독하는 건 신선한 경험입니다. <논어> 원문을 읽게 될 줄이야? 지난해 <주역>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논어> 강독을 하면서도 몇 글자의 문장 해석이 엄청나게 깊어지기도 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게 여전히, 참 신기합니다. 중국인들이 자신의 특기를 말하라고 하면 “중국어를 잘 한다”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이런 건가 싶습니다. 오늘은 위정(爲政)편 16장부터 팔일(八佾)편 8장까지 강독하였습니다. 그 중 두 개, 위정편 18장과 팔일편 8장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 스승님, 돈을 벌고 싶습니다. (學干祿)
爲政편 18장은 學干祿장이라고 불리는데 祿을 얻는 방법을 묻고 답하는 내용이다.
子張學干祿
子曰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자장이 녹을 구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제쳐놓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말하면 허물이 적고, 많이 보고서 위태로운 것을 제쳐놓고 그 나머지를 삼가서 행하면 뉘우침이 적을 것이니 말에 허물이 적으며 행실에 뉘우침이 적으면 祿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제자인 청년 자장이 지금 말로 “스승님, 저는 돈을 벌고 싶어요. 어찌해야 관직을 얻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고 있다. 청년다운 고민이 묻어나는 질문이다. 무슨 답을 기대했을까? 어느 지역을 가 보라거나 누구를 찾아가라거나 아니면 어떤 기예를 습득하는 것이 유리하다거나 하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이에 공자는 많이 듣고(多聞,) 많이 보고(多見)라고 한다. 일단 많이 듣고 많이 보되 의심나는 것이나 위태로운 것은 괄호 안에 넣어 두라(제쳐두라)고 한다. 많이 듣고, 많이 보면서 의심이 들지 않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말하고(愼言), 위태롭지 않은 일에 신중하게 행동(愼行)을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과오가 적고 후회할 행동이 적으면 녹(관직)은 저절로 오게 된다고 대답한다. 바꾸어 말하면 관직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수신하라는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은 대답처럼 보인다. 공자는 부지런히 넓게 보고 다양한 소리를 듣는 공부를 하면서도 말과 행동이 진중하면 ‘그 사람은 그런 일을 능히 할 만한 사람이야.’라는 게 알려질 터이니 굳이 어디를 찾아가지 않아도 祿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건 이에 대한 정자의 해설, 하늘이 내린 벼슬을 닦으면 인간이 내린 벼슬을 얻는다(修天爵則人爵至)는 <맹자>의 구절을 가져와 본성을 닦는 훈련이 먼저여야 함을 말하는 대목에서 이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는 것. 天爵은 하늘이 내려준 벼슬로 인간의 본성(맹자의 인의예지)인데 이를 열심히 갈고 닦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벼슬을 얻는 것이라는 것이다.
취업을 위해서 흔히들 말하는 점수나, 인맥, 또는 스펙을 쌓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성을 닦는 훈련을 하는 것 속에 곧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으로 그렇게 먹고사는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넓은 공부에 바탕한 실력으로 관직을 얻게 되면 자신에게도 떳떳할 뿐 아니라 그런 사람이 나랏일을, 공공의 일을 한다면 그 나라도 굳건해지지 않을까? 나와 공동체의 역량이 같이 커갈 수 있는 것, 이것이 돈을 버는 윤리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 얼굴이 참으로 예쁜 여자가 있어요. (繪事後素)
<논어> 제3편은 팔일편인데 <논어>에서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편으로 제사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우리가 공자님 말씀을 쾌쾌묵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제사를 중요시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공자에게 제사는, 예는 무엇이었을까? 어머니가 무속인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공자에게 제사는 우리가 사는 시공간에 대한 경외감이자 공경함의 표현이라고, 자신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수준이나 祈福(기복)을 바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채운샘은 말씀하셨다. 시공간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 공경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제사를 비롯한 모든 禮에서 절차나 형식보다 그 마음이 중요하다는 구절이 곳곳에 나오는데 8장을 통해 그 일부를 들여다보자.
子夏問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가 물었다.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구나. 아름다운 눈동자가 선명하구나. 하얀 비단 위에 채색을 한 듯 하구나’라는 시가 있는데 이는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비단을 마련하는 것보다 뒤에 하는 것이다.”
자공이 “禮가 (충신보다) 뒤이겠군요.” 라고 말하자
공자께서 “나를 일으키는 자는 상 너로구나. 너와 함께 시를 말할 만하다”
화장을 화려하게 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에 대한 자하의 질문을 하자 공자는 아름다움에는 화장(꾸밈)보다 바탕이 더 중요함을 말한다. 이는 유학의 예술론이라고도 한다는데. 회사후소(繪事後素), 당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비단에 채색을 하는 것이었다. 곧, 바탕을 먼저 하얗게 만들어 놓은 다음 그 위에 채색(繪事)하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에 비유해서 예술에서든 사람에게서든 바탕이 먼저라는 것이다. 화장을 하는 것은 그림에 채색을 하는 과정으로 비유될 수 있는데 그림에서도 언제나 비단의 바탕이 중요하듯 화장을 아주 세심하게 하여 예쁜 여인에게서도 그 바탕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알아들은 자하가 인간의 삶에서 禮라는 것이 화장에 비유될 수 있음을 깨닫고 공자에게 禮 이전에 본바탕이 되는 忠과 信이 우선이라는 자신의 깨달음을 말하자 공자는 자하가 자신을 분기시켜 주었다고 기뻐하면서 제자의 공부 수준이 같이 시를 논할 정도가 되었다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을 한다. 참으로 흐뭇한 장면이다.
이는 우리가 천신에게, 토지신에게, 자신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도 화려한 제사상이나 복잡한 절차보다도 경이로움과 공경함이 더 우선해야함과 같다. 지난해 공부한 주역의 꾸밈에 관한 괘인 산화비(山火賁)괘의 상구 효사에서 꾸밈을 소박하게 해야 허물이 없다(白賁, 无咎)는 것과 통한다.
후기를 쓰면서 생각해보니, <논어>에서 여러 변주로 얘기하는 내용이 우리가 일을 하고, 또치장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일에서 항상 그 밑바탕에 두고서 잃지 말아야 할 인간의 본성, 그 마음을 닦는 일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자가 제자들에 대해 기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공부의 맥락을 꿰거나 <시경>의 내용을 딱딱 맞게 적용하는 모습을 볼 때 싱글벙글하며 극찬을 보내는 모습, 이것이 제자들에 대해 갖는 마음이다. 이렇게 유쾌한 장면이 논어를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공자처럼 싱글벙글하지는 않지만 이 순간 내가 <논어>를 읽고 있다는 사실에 배시시한 웃음을 나에게 선사할 수는 있다.
싱글벙글 공자님, 배시시 정랑님~~ㅎㅎ 공부에 대한 흐뭇한 두 장면을 골라주셨네요. 남다른 호학의 자세...!
자장의 질문에 대한 공자님의 대답을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친구들에게 어떤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인데 청년들에게 저렇게 얘기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거 같다는 생각에 ㅋㅋ ㅋㅋ. 정랑샘 일정이 빡빡하신 와중에 멋진후기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담주 월욜 후기는 제가 예약하겠습니다.
공자님 넘 멋있죠?😆😆
눈에 띄는 번지르르한 말이나 물질이 아니라 소박하고 단순하게 자신이나 주위 사람에게 늘 마음을 다하는 것이 가장 근본이고 자신을 고귀하게 하는 것임을 강조하시는 이런 분을 저의 무지로 그동안 옛 것만 고수하는 꼰대로 오해하고 있었네요.
넘 일찍이라 부시시 하지만 배시시 설레는 마음으로 공자님께서 오늘은 또 뭘 말씀해 주실지 매번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