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강의 4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을 논어로 열기 시작한 후 변화는 우선 하루가 피곤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기상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해서... 그런데 평상시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그것도 공자님과의 만남이다 보니 뭔지 모를 뿌듯함이 올라옵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잠들기전에 잡스럽게 했던 일들이 줄고 빨리 자야겠다는 마음에 수면의 질이 좋아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방학기간의 이 리듬을 올 한해 이어가고 싶은데 잘 될런지는 모르겠네요~ 오늘 3편 八佾의 9장부터 26장까지 4편 里仁편의 7장까지 강독했습니다.
인상깊었던 두장을 정리하겠습니다.
3-20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공자께서 말씀하셨다“(詩經) <關雎>는 즐거워하되 지나치지 않고, 슬퍼하되 和를 해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주역의 節괘가 생각났습니다. 서괘전 순서로 60번째 괘인 절괘는 수택절이라고 합니다. 물을 상징하는 감괘가 위에 있고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가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괘사로는 節 亨 苦節不可貞 절은 형통하니 괴로운 절제는 올바를 수 없다.
과하지도 모자르지도 않는 딱 맞는 적절한 상태를 의미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八佾편의 20장 지나치게 즐거워하거나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는다.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 같습니다. 지나침의 기준도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 다를테니까요. 주역에서 節괘를 공부하며 들었던 생각들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으로 공부를 하기 위함의 일환으로 1월달은 오전 한주 내내 온라인 강의와 세미나가 이어지는데 지나친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라는게 복습도 중요하고 소화시키는 것도 중요한데 들입다 붓고 있는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들어설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기에 하겠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節을 찾도록 해보겠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節을 찾는 여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나치지 않는 것이 대충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 딱 맞는 적절함을 찾아가는 여행... '피곤하다 피곤해' 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자리잡네요..그러나! 오랜세월 가르침이 이어져 온건 분명한 이유가 있는법! 지나치거나 과하지 않으려는 노력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4-3 子曰 惟仁者 能好人 能惡人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仁者여야 사람을 제대로 좋아하고 사람을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
仁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뭐기에 仁者가 아니면 사람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하는 것일까?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 '내 맘이지..' 내가 좋으니까 좋아한거고 내가 미우니까 미운거야. 그러면서 연인사이에서는 좋은데 이유가 있어? 라는 말이 마치 조건없는 사랑을 칭송하며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인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나만 그런가? 그러다 사랑이 식고 미워지면 오만가지들이 다 눈에 거슬리고 미워진다.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남편 밥쳐먹을때 수저를 뺏고 싶다는 분노에 찬 말을 쏟아낼때 난 속으로 생각했다. 결혼전에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며 먹는 것만봐도 배가 불러했던 너는 어디갔니?라고....아마 처음 좋아할때도 사실 수없이 많은 것들이 좋아보였을텐데 그것을 일일이 나열하는게 곤란해서 이유가 없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내맘이지 라는 말이 연인사이에서든 관계속에서든 지극히 주관적으로 기분에 따라 쓰일 수 있는 전능한 말이 되기 싶다. 공자님이 과연 이런 진부한 상황을 염두해 두고 말씀을 하신걸까? 당연히 아닐꺼다. 그게 아니라면 인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할텐데 그건 요원하다. 주희는 사심이 없은 뒤에야 좋아하고 미워함이 이치에 맞을 수 있다고 한다. 사심.. 사람을 대할때 사심없이 대할 수 있는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사심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걸까? 그걸 알지 못하면 사람을 좋아하지도 미워할 수도 없는건가? 그 답을 나는 能에서 찾으려 한다. 能이 제대로 라고 번역되어있다. 제대로 좋아하고 제대로 미워한다. 아직은 好人,惡人수준에 머물러있으나 이곳에 머물러 있다해도 能好人 能惡人 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仁에 대한 정의 사심에 대한 판단을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관계속에서 통찰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접수하고 후기를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매일 세미나를 하고, 또 하루 일을 하고 바쁘게 지내는 군요 호진샘~
64괘 암송의 효력이 후기에도 뚝뚝 묻어나네요. 논어 구절과 주역이 하이웨이로 연결되는 군요.
樂而不淫 哀而不傷 , 올해도 이렇게 희노애락을 겪으며 같이 잼나게 공부해요^^
仁이라는게 무조건 어질고 착하기만 하거나 혹은 자신의 호오라는 편협함이 아니라, 전체적인 관점에서 통찰하고 매번 선함으로 나아가겠다는 결단이 담긴 대단히 능동적인 태도란 생각이 드네요.
천지의 운동처럼 지체없이 무의식적으로 편안하게 仁을 행하긴 어렵겠지만 의식적으로라도 仁함을 실천하는 여정을 계속해야 겠다는 생각이 논어를 읽으니 뿜뿜 들게 되는 것이.. 공자님 말씀에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관저편을 절괘와 연관 지어서 읽으시다니, 새롭네요. 시를 읽는 이유가 단순히 지식 자랑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평온함(和) 혹은 적절함(節)을 잃어버리지 않는 훈련이라면, 호진샘의 독해도 확실히 일리가 있네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피곤하다 피곤해~(苦節)"를 벗어나려는 노력도 확실히 되새겨 볼 필요가 있고요.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마음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 나를 규정하는 상황에 대한 인식 등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仁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추측이 머리에 맴돌더라고요. '어떻게 마음을 쓰는 것이 진실된 걸까?'라는 추상적 질문을 새삼 다시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