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규문 창설 이래 최초, 야심차게 기획된 과학강좌 시즌1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다양성>이 지난 금요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첫 시즌은 아시다시피 지구의 문자를 읽는 지질학인데요, 첫 시간부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학창시절 배운 과학과 달리 딱딱하지 않고 재밌었다’, ‘SF 소설과도 같았다’, ‘신선하다’, ‘쏙쏙 들어온다’ 등등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그림과 사진이 빵빵하게 찬 피피티와 교수님의 스윗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몰입도가 무척 높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후기에서는 제게 남은 몇 가지 지점들을 스케치해보겠습니다.
스케일이 다른 역사
첫 소개말씀부터 인상 깊었는데요. ‘고생물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거 ‘고고학’하고 비슷한 거냐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고고학은 사람이 문화를 만들었던 흔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면 교수님은 이렇게 답하신다고 합니다. “난 그렇게 최근의 일은 몰라.” 문화라는 것은 가장 많이 올라가봐야 1만 년 이내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지막 빙하기가 그때쯤 끝났기 때문이죠. 같은 ‘고’씨라고 헷갈리면 안 됩니다. 고생물학이 다루는 시간은 가장 이른 것이 몇 백만 년이고, 짧으면 천만년, 길면 몇 억 년에서 몇 십억 년의 시간입니다. 화석이 생기기 위해서는 그 정도가 필요하니까요. 이런 정도의 타임스케일을 다룬다면 인간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너무 요즘 일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케일이 큰 만큼,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저 얼추 자릿수만 맞으면 된다고 하셨던 말씀도 재미있었습니다. 너 강의 들었다며, 그래서 지구 역사가 어떻게 돼?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대강 사오십 몇 억 년 정도(약 45억 년) 된다고 말하면 봐줄만 하다고요. 태양계는 그와 비슷하고, 우주는 백 몇 십억 년(약 138억 년)이라고 얘기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는 점, 왠지 용기가 났습니다.
또 한 가지 놀랐던 것은 지구 역사의 주요 시기에서 생명이 나타난 시기가 생각보다 이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오래된 화석 증거가 발견될수록 더 앞당겨지고 있기도 하구요. 지구가 45억 살인데, 남세균의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가 37억 살이 되었으니, 생명체는 지구 역사의 80정도를 함께 해온 것입니다! 어쩌면 지구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생명이었다고... 가이아 이론이 괜히 나온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그런 생명의 긴 역사의 대부분은 원시적인 단세포 생물이었고, 조금 복잡해진 생물이 등장하는 것은 20~30억년이 더 흐른 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형태에 따라 지구의 연대를 나눈다고 합니다.
1) 생명 이전, 지구가 하데스의 지하 풍경과도 같은 명왕누대. 45~40억 년 전.
2) 생명이 시작된 시생 누대. 40~25억 년 전.
3) 다세포 생명, 즉 원시적 생물이 출현한 원생 누대. 25~5.4억 년 전.
4) 복잡한 동식물, 즉 현재와 비슷한 생물이 출현한 현생 누대. 5.4억 년~현재.
이렇게 이름으로 보니 시대 구분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요.
다이나믹 어스와 원생누대
이중에서 가장 재밌게 들렸던 것은 원생누대에 일어난 사건들이었습니다. 산소가 증가하고, 지구가 하얗게 얼어붙기도 하고, 복잡한 생명들이 실험처럼 등장하는 것 등등.
산소 농도가 변화하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산소가 20%를 차지하는 공기 속에서 살지만, 원생누대 이전에는 산소 농도가 거의 0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런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산소가 없으니 불은 붙을 수 있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산소농도가 급증해서 30%까지 차지했던 현생누대의 중생대의 풍경은 어땠을지도 궁금했습니다. 공룡처럼 커다란 파충류가 진화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산소와 관련이 있을지. 의문이 자라났습니다. 머나먼 과거의 산소의 농도를 알아낸 방법도 신기했습니다. 산소가 철과 반응해서 붉게 산화된 흔적이 암석 속에 화석으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호상철광층이라고 불리는 것이죠.
눈덩이 지구 이론도 무척 재미났습니다. 적도에서 발견되는 빙하의 흔적으로 추론해서, 온 지구가 눈덩이처럼 하얗게 덮여 있던 시기가 있었다니... 우리가 상상하는 빙하기보다 훨씬 더 많이 얼어붙은 지구의 모습에, 정말 지구는 한 모습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명도 마찬가지였죠. 원생누대의 마지막 시기인 에디아카라기에 번성했던 넓적한 생물들은 결코 지금 우리가 아는 생물의 모양과는 닮은 점이 없습니다. 외계 생물이 있다면 그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의 생물들이 결코 도착점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지구의 가장 안쪽은 빛날까?
지구의 구조를 설명을 듣다가 한 선생님께서, 파볼 수도 않고 어떻게 지구의 내부(외핵은 액체고 내핵은 고체라는 것)를 아느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지진파의 전달 유무 및 속도를 이용해 추론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초음파와도 비슷하다는 설명은 쏙쏙 들어왔습니다. 지진파를 이용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긴 했지만, 문득 지구의 속을 정말 들어가 보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 현재 인간이 가장 많이 파고 들어간 깊이는 러시아의 콜라 시추공이 파내려간 12km정도라고 하셨습니다(대륙지각의 두께는 40km 정도). 과연 그 구멍의 폭은 어떨지, 눈으로 바닥을 볼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만약 외핵까지 내려가면 거기는 빛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양처럼 밝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마그마처럼 혹은 용광로에 녹은 철처럼 붉은 빛은 나지 않을까...(어떨까요 교수님) 그렇다면 지구 속은 깜깜하진 않겠다는 생각도 한 점을 덧붙여보았습니다.
판구조론의 쇼킹함
지구의 나이는 17~18세기까지 불과 6000년 정도로 추정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의 나이를 더했으니 나름 최선을 다해 고증한 것이었죠. 20세기에 이르러 갖가지 지질학적 기술이 발달해서 수억에서 수십억 년 정도나 된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자, 사람들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체 이전의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910년, 알프레드 베게너는 ‘지상의 증거들’을 모아서 대륙이동설을 주장합니다. 남아메리카 동부 해안과 아프리카 서부해안이 너무 닮아있을 뿐 아니라 거기서 공통된 육상동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는 것이 말해주는 것은, 과거에 둘은 하나의 대륙이었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륙이 이동했다는 강한 증거이긴 하지만, 베게너는 어떻게 대륙이 이동했는가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합의된 육교이론을 밀어내지 못했죠. 그러다가 양차대전을 통과하고 해저의 지형과 지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 메커니즘이 설명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로 땅덩이의 조각들이 생겨나고 사리지고 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이로서 지구가 판들이 밀고 당기는 모양으로 짜여져 있다는, 맨틀 위에서 지각이 떠다닌다는 생각이 주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왜 이 좁은 한반도에도 지역마다 땅의 나이가 다른지, 극지방에서 적도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지 등의 문제가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해양지각은 2억년이 넘지 안을 정도로 젊고, 대륙지각은 부딪히고 찢기고 섞여서, 연대별로 색깔펜으로 칠해보면 알록달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대륙들은 움직이고 있다고 하죠. 땅이 움직인다는 것. 뭔가 상징적입니다. 대륙들은 하나로 모이기도 하고 또 흩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해류도 바뀌고 기후도 바뀌죠. 판게아도 신기했지만, 앞으로 대륙들이 움직여 모이게 될 것을 보여주는 예상도는 왠지 흥분이 되었습니다. 2억 오천만 년 정도가 흐르면 대륙들이 또 다시 뭉친다는 것! 그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그럼 돌아오는 금요일, 7시 줌에서 만나요!
민호샘 후기 읽으니 대륙이 이동하는 것처럼 제 맘도 과학으로 막 움직이려 해요 ㅎㅎ
대륙이동설, 판구조론. 대충 짜집기해서 알고 있는 내용들인데... 지구역사를 명왕대에서 현생대까지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해주셨네요.
일 많이 안 벌리려 했는데 막 듣고 싶어지네요 . 할 거 많은데 지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