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기 일곱 번째 수업에서는 열자와 장자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열자>
열자 텍스트는 도가 사상의 3대 경전으로 불리지만 열자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아 노자와 장자 사이에 실존했던 인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열자의 내용은 노장 사상과 양주, 불교의 영향까지 텍스트가 비균질적이어서 하나의 사상으로 자리 잡지 못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재해석, 재구성이 되지 않는 무플(?)의 아픔을 가진 텍스트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중에도 ‘기우’나 ‘우공이산’같이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이마저도 사람들이 전체 내용을 알기보다는 단편적인 내용을 취해 사자성어로 암기하는 형태에 그치고 있습니다. 열자는 장자처럼 우화(우언)이 많고 우주의 생성과 변화에 관한 거대 담론을 담고 있으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장자>
- 일상으로의 초월
사람들은 일상을 비루하고 반복적인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하지만 장자는 일상을 떠나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일상으로 초월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호자의 가르침을 받던 열자가 사람의 명을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진 계함에 반해 그를 칭송합니다. 스승인 호자는 계함의 능력이 하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고 나서 열자는 계함도, 스승인 호자도 따르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자신이 소홀히 생각했고 도를 깨우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일상 속에서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자신의 평온함을 찾는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깨우쳐야 할 도도, 가지고 싶은 행복도 모두 나의 삶 바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구성하는 이름 없는 돌보다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보석을 찾는 것이 가치있다고 여기고 저 또한 그런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여전히 질박한 삶의 현장보다는 반짝이는 것에 눈이 가고 혹시나, 행여나 나에게 큰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고 있지요. 일상이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의 감각을 차단하고 일상의 다채로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지 장자를 읽으며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2. 세계와 인식
옳고 그른 것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이기 때문에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욕망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욕망 아래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옳고 그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고 도에서는 이 둘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구분되지 않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예수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는 모든 죽은 존재의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벌레의 먹이가 되고 나무의 양분이 되어 나무로, 벌레로, 새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국면에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 우주의 조화 안에서 계속 변화하고 변신합니다. 조삼모사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주의 도는 변하지 않지만 그 안의 조합과 배치가 달라지는 것 뿐이라고 하고, 지리소의 이야기에서도 무언가를 잃었다면 무언가를 얻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물의 이치는 항상 이면이 존재하므로 양행이라는 관점에서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3. 생사의 도
어느 때 죽든 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오지 않았으면 하지요. 하지만 장자는 이를 삶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마치 감이 감꼭지에서 똑 떨어지듯이 풀려나는 것입니다. 삶에 대해 좋게 여긴다면 죽음도 같은 이유로 좋게 여겨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다 우주가 나에게 준 것이기 때문이지요. 변화와 변신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 집착하지 않고 젊음도 늙음도 시작도 끝도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성인의 모습입니다. 몸이 늙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음양의 변화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와 닿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며 겪는 몸의 변화를 그저 건강염려와 신세한탄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우주의 도 안에서 내 몸의 조화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며 자연이라는 대장장이가 나를 무엇으로 만들어 줄지 생각해야겠습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자기계발서가 있고 유튜브와 각종 매체에서도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종류의 메시지가 넘쳐납니다. 좋은 삶은 무엇일까요? 일상을 충실히 살아내고 어지러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라고 장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욕망을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
앗! 제가 이 보석 같은 후기를 놓치고 있었네요. 하마터면 열자와 같은 운명을 겪으실 뻔.. ㅎㅎ;; 열자와 장자는 비슷한 사유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열자는 인기가 별로 없는 반면 장자는 끊임없이 읽혔단 말이죠? 이 차이가 단순히 우연일지, 아니면 사유에 내재하는 어떤 점 때문일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강의를 들으면서는 아마도 장자의 '초월'에 대한 다른 사유가 아닐까 했습니다. 일상을 떠나 어디론가 날아가는 게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묘한 해방감을 동반한 채로 돌아오죠. 어디론가 떠나는 것보다 더한 자유로움인 것 같은데, 비교하면서 읽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어떻게 장자는 뭐랑 붙여도 같이 읽고 싶어지는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