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가의 실천 철학
묵자는 초기 핵심적 兼愛 사상에서 ‘사회적 혼란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였다. 여기서 묵자 사상의 기본 태도를 볼수 있다. 이와같이 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상황을 ‘현실의 부조리(‘三患’)‘으로 인식하면서 출발하였다. “飢者不得食, 寒者不得衣, 勞者不得息”로 민중의 삶의 고통에 주목한다. 이런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초기 묵자는 이익을 멀리하고 반전을 주장한다. 겸애 상, 비공이 핵심적 주장이 된다. 이런 주장을 편 “묵가의 생활은 지극히 검소하고 자기 학대에 가까운 수련을 하였으며 묵자와 그의 제자들 모두 손발에 굳은 살이 박이고 얼굴은 새까맣고 몸을 던져서 봉사하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감히 돌보지 않았으며, 저마다 불바다를 뛰어넘고 칼날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묵자 자신이 노동과 절용, 절장에 기반한 검소한 생활을 실천적으로 행동하면서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 따라서, 무리는 집단적, 조직적인 엄격한 규율을 가진 집단으로 큰 세력을 떨치게 된다. 초기에는 유가와 같이 많은 추종 세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묵가 사상이 중기로 갈수록 이익과 리를 적극적으로 제창한다. 이익을 올바른 정치와 윤리적 당위성의 근거로 사용하게 되면서 중기 후반부터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다.
말기에는 겸애, 비공, 절용 계통의 주장 약화 된다. 진나라에 협조하면서 상동을 제창하고, 이를 근거로 천지를 저술. 피지배층을 위한 사상에서 지배층을 위한 사상으로 바뀌게 된다. 兼愛-利-義가 성왕의 도리로 바뀌게 된다. “겸애는 어질고 의로운 것이다. 오로지 겸애로써 정사를 펴는 것은 이처럼 서로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말의 본뜻은 겸애라는 것은 천하의 큰 이로움을 낳는다는 것이다. 겸애를 하는 것이 과연 천하에 큰 이로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이것(겸애)은 천하에 해로운가 이로운가? 반드시 천하에 이롭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겸애)은 성왕의 도리며 만민에게 크게 이로운 길이다.” 따라서 시급한 위정자의 임무는 ‘國家之富’, ‘人民之衆’, ‘刑政之治’(기본생활과 삶의 안전 보장).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론이 十論.(尙賢・尙同・兼愛・非攻・節用・節葬・天志・明鬼・非樂・非命)가 된다.
묵가의 사상은 그 이후 중앙 집권화된 진, 한 이래 사회적 격동기가 끝나고, 지주 관료 중심의 신분사회가 정착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묵자의 사회주의적, 평등주의적 사상은 상하 계층과 사유재산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묵가의 天志論과 비폭력 사상은 서양의 유일신이나 마르크스주의로 일부는 표현 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묵가의 겸애의 근본 사상을 시대 정신의 일부로 만들어 가는 우리의 행동일 것이다.
묵가의 뜻은 고결했지만, 이걸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너무나도 엄격하고 심했죠. 한편으로는 그만큼 시대에 대한 통렬한 우환의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것도 결국 소수의 엘리트를 재생산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묵가의 강력한 규범이 지도자인 거자조차 똑같이 검소한 생활을 해야 했지만, 결국 거자의 뜻을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본받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엘리트주의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너무 얕게 공부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 어쨌든, 어떻게 시대에 대한 우환의식을 가지면서도, 자신의 뜻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동시에 알 수 있을까요? 새삼 그 어려움이 이번 묵자 강의를 통해서 다시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