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 위정자들과의 문답의 기록입니다. 질문자로 다양한 캐릭터의 인간들이 등장합니다. 버라이어티 한 인물들이 던지는 저마다의 질문 덕에 공자의 사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번 공부는 안연(顏淵)편입니다. 안연의 장이기는 하나 번지나 계강자와의 대화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번지와의 대화를 들어봅니다. 번지는 실용적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인물입니다. 어쩌면 번지는 손에 잡히는 대답을 원하는 우리를 대변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해야 덕을 높이고 ,악함을 제거하며, 미혹한 일을 변별할 수 있습니까?’ (敢問崇德 修慝,辨感) 번지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하여 공자는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답을 줍니다. ‘첫째 행동에 의한 이득을 나중에 따지고 일을 먼저 해야 덕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자신의 잘못은 따지고 남의 잘못은 따지지 않으면 잘못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여 자신을 망각한 채 행동하는 것이야 말로 미혹함일 것이다. 라고 분명하게 답합니다. 그 대답을 듣고 번지는 어찌했을까? 저는 그 자명한 말에도 실천이 쉽지 않음을 압니다. 행동 전에 계산을 성찰 보다는 비난을 앞세우고 순간적 감정에 자신을 쉽게 맡기고 맙니다. 어쩌면 논어는 실천하여야만 알 수 있는 책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번지의 질문의 답은 담백한 실천의 윤리가 필요한 우리에게 적절한 명령일 것입니다.
이번에는 인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간결하게 답 합니다. 또 지혜가 무엇이지의 질문에 대하여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이해를 못하는 번지를 향하여 공자의 정치철학을 말합니다.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바르지 못한 사람 위에 둔다면, 바르지 못한 사람들이 정직하게 될 것이다.’ 라고. 공자의 지인(知人)은 그 사람의 정직성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배우려고 하고 배운 만큼 실천하는 정직성이야말로 공자의 인재관일 것입니다. 그 정직성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자장과의 대화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통달한 자는 본바탕이 곧고 정의로운 것이고, 남의 말과 얼굴빛을 잘 관찰하고, 남을 사려 깊게 대하여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통달하려면 명성에 현혹됨이 없어야 하고 척함이 없어야 합니다. 통달한자는 자기에게 투명한 자입니다. 그렇기에 통달한자는 타인을 알아 볼 수 있고 자신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통달함이란 그 사람의 역량일 것입니다. 그 역량을 활용하여 먼저 자신을 다스리고 그 다음에 타인을 다스립니다.
안연장에서도 공자의 정치에 대한 감각을 읽을 수 있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계강자가 질문합니다. ‘만약 무도한 놈들을 죽여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답합니다. ‘어찌 살육을 말하십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의 덕은 바람 같고 백성들의 품성은 풀잎 같습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어오면, 풀은 반드시 눕기 마련입니다.’ (子欲善而民善矣.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 일벌백계를 논하는 계강자에게 공자는 감화의 정치를 말합니다.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 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아야 합니다.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다른 의견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돌출 행동도 따라 나옵니다. 그 때 법에 대한 유혹이 있습니다. 법은 쉽게 중심의 뜻을 관철 시키는 쉬운 수단이 됩니다. 그렇기에 법을 한 번 사용하면 법으로 규제하는 영역이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법은 인간의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관계를 맺는 역량을 죽여 버립니다. 그렇기에 공자는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에 스며들어 어떤 질서를 만드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말합니다. 군자다움(君君)은 자신을 낮추고 백성을 공경함으로써 감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말합니다.
강의가 거듭될수록 다양한 상황에서의 문답을 접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공자가 추구하는 윤리 그리고 그 실천으로서의 정치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그 이해가 윤리적 실천을 명령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실행하지 않는 윤리는 공허합니다. 자신에게 투명하게 되어 진리를 알면 실천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 자체가 윤리일 것입니다.
'윤리'라는 단어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되는 후기네요! 확실히 공자님은 말 잘하는 사람을 싫어하셨죠. 그런데 정작 공자님은 너무나도 말을 잘한다는... ㅋ; 단순 달변가는 아니지만, 동시에 누가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역량을 보여주시죠. 여기서 공자님이 싫어했던 말 잘하는 사람은, 지난 안연편에서 나왔던 것처럼, 말이 너무 앞서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러고 보면, 윤리와 역량은 항상 같이 가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공자님에게도 배움의 영역은 그 시대에서 '다르게 살기', 곧 군자로서 살아가는 것과 분리될 수 없었죠. 知, 仁, 政 같은 글자들이 나올 때마다 여기에 어떤 고민이 담겨 있는지, 묻는 자와 답하는 자 각각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면서 지금 우리는 저 개념들을 어떻게 전유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
유학의 정치론이 아주 인상적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쉽게 저희와 뜻을 달리하는 세력이 있으면 ‘무도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제거하려고 하는데, 공자님께서는 감화의 정치를 말합니다. 당파싸움, 이권다툼을 넘어서 감화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