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논어> 공야장(公也長)편을 공부했습니다. 논어가 주제별로 묶인 구성은 아니지만 공야장편에는 공자님께서 사람들을 평가하신 내용이 많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공자님이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주로 제자들)을 평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면 상대에 대해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평가하는 사람의 캐릭터가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공자님은 ‘빈말을 안 하는 담백한’ 분이셨습니다.
공자공동체의 자금줄이자 재정 담당, 외교적 수완과 언어능력이 뛰어났던 제자 자공(子貢). 자신을 비롯해서 같이 공부하는 벗들에 대한 공자님의 생각과 평가를 늘 궁금해합니다. 칭찬에 목말라 있기도 하구요. ‘스승님, 저는 어떤 사람이에요?’ ‘넌 그릇이다.’ 그릇은 한 가지 능력이 출중한 인재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전에 공자께서 ‘군자불기(君子不器)’라고 하면서 군자는 한두 가지 쓰임으로 귀결되지 않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럼 이건 디스일까요? 넌 아직 군자까지는 아니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지, 라는 칭찬의 의미로 읽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앞뒤 맥락 없이 딱 그 장면과 대화만 남아있어서 빈 여백은 상상하며 읽어야 하는데, 이게 <논어>를 읽는 재미이기도 하고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여백을 해석할 때 해석자의 캐릭터 또한 드러나는 것이겠죠? 공자와 제자, 뿐 아니라 이탁오의 선문답같은 한 줄 평, 뿐 아니라 맥락과 뉘앙스를 세밀하게 풀어주시는 채운샘의 해석으로 월욜 <논어>를 읽는 시간이 즐겁고 풍성해집니다. ‘어떤 그릇이요?’ 자공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합니다(아직 부족해요.. 더 칭찬해주세요~ㅎㅎ) ‘넌 호련(瑚璉)이다.’ 호련은 제사때 쓰는 귀한 그릇이라고 합니다. 자공 너는 훌륭하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주 멋드러진 그릇이지. 이탁오는 여기에 ‘지기(知己, 자신을 알아주는 이)’라는 짧은 평을 달았습니다. 벅찬 기쁨으로 가슴 뻐근해져 입꼬리 올라갔을 자공이 그려집니다.(3장)
자로(子路)는 어떤 인물일까요? ‘한 가지 가르침을 아직 다 실천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좋은 가르침을 들을까 두려워하는’ 인물입니다. 자로는 왈패 출신이라고 합니다. 앞뒤 재지 않고 나서며 엉뚱한 말을 자주 해 거칠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그래서 읽는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해주는 귀여운 캐릭터이기도 하죠. 스승과 가르침에 대한 이런 진지함과 천진함 때문에 한없이 사랑스런 사람이기도 하구요. 실천력이 대단했던 제자였음 또한 놓쳐서는 안 되겠죠.
또 다른 장면. 이번에는 자로, 안연, 공자님과의 대화입니다.(25장)
공자: 너희들 각자의 품은 뜻을 한번 말해보지 않겠니?
자로: 저는 일급 수레와 말, 그리고 가볍고 고급스런 가죽옷을 벗들과 함께 쓰다가 해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 합니다.
안연: 저는 제가 잘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공로를 과시하지 않고자 합니다.
자로: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 노인을 편안하게 해주고, 친구들에게는 미덥게 해주며, 젊은이는 감싸주고자 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어떻게 살고 싶어? 라는 공자의 질문에 자로는 좋은 게 있으면 친구들과 같이 쓸게요, 같이 쓰다가 해지더라도 개의치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친구들과 최고의 것을 공유하고 찐한 우정을 나누는 것이 자로의 이상입니다. 안연은 잘하는 것을 뽐내거나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노고를 과시하거나 생색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좋은 점은 드러내고 못하는 건 감추고 싶은 욕망, 즉 자의식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이 안연의 지향점입니다. 둘 다 멋지면서도 어려운 경지입니다. 한편, 공자님은 나이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고, 동년배에게는 신뢰감을 주는 사람, 나이 어린 사람은 포용력 있게 감싸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이번주 채운샘의 원픽 문장입니다. 다정다감한 공자님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성인 일상의 모습은 이런 모습일 거라 하시네요. 깊이 음미해볼 문장입니다.
전 매주 마음이 뜨끔하는 문장을 만나곤 하는데요. 이번 주에는 식초를 빌려준 미생고의 이야기(23장)에 뜨끔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리러 왔는데 미생고의 집에는 식초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이웃집에서 빌어와 식초를 줍니다. 배려심 많고 친절한 행동 아닌가요?? 공자님은 미생고가 ‘직(直)’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십니다. ‘직’이라는 키워드로 이 사건을 다시 보아야 하겠습니다. 집에 없으면 없다고 말하면 됩니다. 그럼 그 사람은 옆집으로 빌리러 가겠죠. 옆 사람이 식초를 빌려줄 공덕을 미생고가 가로챈 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건이 아니더라도 정보나 지식으로 바꿔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누가 뭘 물어봤을 때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데요. 혹은 지금은 잘 모르는데 찾아보고 나서 알려줄게 하든지요.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낼 때가 있거든요. 좀 있어보이고 싶어서..;; 나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직(直)하지는 않은 거죠.
논어의 핵심어인 ‘지인(知人)’, ‘인(仁)’, ‘호학(好學)’은 계속 공부해가며 정리하고 채워가야 하는 주제입니다. 27장. ‘작은 마을에 진실되고(忠) 믿음직스러운(信) 사람은 찾아보면 있을 거야. 하지만 나처럼 호학하는 사람은 없을 걸!’ 호학은 공자의 자부심이자 정체성입니다. 배우는 자,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자. 어떤 게 배운다는 것이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걸까요?
학이(學而)편 14장에 나온 내용을 잠깐 복습해 보자면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즉 기본적인 삶의 조건에 있어 풍족하거나 축적하기를 추구하지 않고, 행동은 단호하고 말은 신중하며(그래야 말과 행동에 모순이 없음), 도를 깨우친 자에게 나아가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는 것(親仁). 호학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호학은 단순히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의 양식으로 드러나는 실천역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운샘께서는 들뢰즈의 말(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을 인용해서 역사속 인물에서 모델을 찾는 것도 호학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미지만 가져와 로망으로만 두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코미디가 되지만, 행위와 삶을 감당하려고 할 때는 비극이 된다고. 여기서 비극은 슬프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삶을 따라 살려고 할 때의 힘듦, 현재 나의 조건에서의 변형과 창조까지를 표현한 말이라고 합니다.
공문자(孔文子)에게 죽은 뒤 ‘문(文)’이라는 시호가 붙었습니다.(14장) 그는 일처리를 잘하고 정치적 수완이 좋았던 사람이었는데 왜 글을 잘 짓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문’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을까요? 공문자는 배우기를 좋아해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不恥下問)’는 겁니다. 호학 리스트에 ‘불치하문’을 추가합니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는데 질문할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호학과 연결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또 공야장에는 ‘누구누구는 인(仁)합니까?’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제후국의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통솔력(자로), 큰 살림과 재무를 맡길만한 능력(염구), 외교 논리 협상 언어적 능력(공서화) 등등은 인정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정도 능력을 가진 제자라면 적당히 인하다고 해줄만도 한데 공자님은 철저하게 객관화해서 말씀하십니다. 능력이 곧 인은 아니라는 거죠. 인은 한 가지 측면에서 드러나는 협소한 능력이 아니라 통합적인 인격으로 드러난다는 것과 제자들의 특화된 능력까지도 함께 알 수 있는 구절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공과의 대화입니다. ‘남이 나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저도 남에게 행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 자공에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가차 없이 말씀하시는 공자님. (11장) 그만큼 어렵다는 건데요. 왜 어려운 건지? 생각해보라 하셨습니다. 뒤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기가 원하는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이 나올 때 질문하신다구요.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 틈틈이 가져보아요~~
꼼꼼하게 정리하면서 문장들 사이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의 감정까지 읽으셨군요! 논어를 한두 번 읽어 본 솜씨가 아니란 게 느껴집니다...! 확실히 이번 장은 공자의 인물평이 많이 나오면서, 역으로 공자가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장이었죠. 우리는 인물을 평가할 때 자칫 심판하는 것처럼 얘기하기 쉬운데, 공자는 인물의 고유한 덕을 포착하면서 그 인물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것 같았습니다. 25장에 나온 공자의 뜻을 구체적으로 본다면, 공야장 전체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공자의 애정이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해요. 이번에도 논어에 찐한 감동을 받아버렸습니다. @_@
논어 인물의 특성까지 정리해주셨네요! 이번에 수업들은 내용도 새록새록 복습되고, 또 논어 속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려보게 됩니다^^! 논어를 공부하니까, 짧은 문장인데 어떻게 그렇게 콕콕 박히는 문장인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호학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책을 읽고 정보를 습득하는 게 아니라 삶의 양식으로 드러나는 실천 역량이라는 말을 가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