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차시에는 주요하게 중용 1장 텍스트를 살펴보며 중용의 핵심개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사가 지었다는 <중용>은 <예기>중 31편에 수록되었다가 후에 독자적 텍스트로 분리되었습니다. 통으로 된 긴 글을 후에 주희가 33장으로 분장하여 상편(1~20장)과 하편(21장~33장)으로 구성하였고, 1장은 일종의 총론에 해당하는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1장의 첫 문장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에는 ‘性과 道와 敎’를 통한 삶의 비젼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풀이하면, 하늘의 명을 성(性)이라 하고, 본성에 따르는 것을 도(道)라 일컬으며, 도 닦음(修)을 교(敎)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도 ‘道’에 대한 이해일 것입니다. 道는 ‘길 도’라고 풀이됩니다. 여기서 길은 은유가 아닌 실제 뜻에 있어서의 길이기도 하다고 채운샘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 산 속에 난 길도 누군가가 부단히 걷다보니 길이 되었듯이, 사람의 道 또한 ‘우주의 길과 부합하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며 부단히 닦고 배우며 자신의 삶을 조형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삶의 정태적 모델’(자신의 표상)에 맞춰 자신의 삶을 살려고 하는 오늘날의 많은 모습과 다른 비젼을 제시합니다. 끊어진 듯 보여도 다시 이어지는 산수화 속의 길처럼 도 또한 음양의 운동으로 보였다가 안보이는 것의 반복이지 끊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본성, 즉 생(生)은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다고 해도 지구는 생(生)하고 지구가 없어진다해도 우주는 생(生)하듯- 이어집니다. 이렇게 천명(天命)을 이해하면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벗어나, 보다 겸허해진 마음으로 그리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을 걷거나 달리는 행위는 한 발을 땅에서 띄어야 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데,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중용’이 중요합니다. 1장에 ‘중(中)’과 관련된 부분이 나옵니다.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 發而皆中節, 謂之和’ 희노애락이 아직 펼쳐지지 않음을 일컬어 중(中)이라 하고, 드러나되 모두 마디에 들어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미발의 상태, 즉 아직 현실화되지 않는 상태란 감정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을 실체화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감정이란 내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의 대상에 있는 것도 아니며 내가 무엇과 마주쳐서 발화된 ‘상태’에 해당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중절’ 입니다. 감정이 상황 속에서 잘 들어맞는 것, 그것이 화(和)입니다. 중화(中和)가 이루어지면 천하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길러집니다. 예전에 어디서 읽었던 바로는 절(節)이란 대나무 마디를 말하는 것으로 각각이 가지고 있는 범위, 한계를 의미하고 화(和)란 각 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한계나 범위)을 다할 때 이루어지는 조화를 뜻하였습니다. 그런데 채운샘 강의에서 중화(中和)를 ‘어떻게 상황에, 시공에 걸맞는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을 통해서 보니 새롭게 다가와서 좋았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을 맞이하는, 사건에 걸맞는 사람이 되는 것. 어떻게 해야 사건에 걸맞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가능하기는 할까요? 닿을 수 없지만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는 저 하늘의 별처럼, 삶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일 것 같습니다. 걸맞는 삶을 산다는 것은 매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라는 준칙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중용에서 인간의 도리는 성(誠)입니다.
‘誠者, 天之道也 ; 誠之者, 人之道也’(20장) 성실한/진실한 것은 하늘의 길이요, 성실하게 하려는 것은 인간의 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고 자연은 지극히 성실할 뿐 아니라 진실(남김없이 드러남)합니다. 이를 따르려고 하는 것이 인도(人道)입니다. ‘성실한 것은 힘쓰지 않아도 도에 맞고(中)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며, 자연스럽게 도에 맞으니, 이것이 성인이다. 성실히 하려는 것은 선(善)을 택하여 굳게 잡아 지키는 것이다. (그는) 폭넓게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고, 철저하게 실천한다.’(20장) (나머지 부분은 해석만 옮겼습니다.)
이전에 동양철학 텍스트를 직접 읽은 경험은 없어서 이 세미나와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중용 1장에서 천(天), 성(性), 도(道), 교(敎)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막연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이 개념이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관계 속에서 구조화되고, 이 둘을 잇는 성(誠)이라는 개념이 아주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까지 풀어 제시된 것에 놀랐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성실함’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실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기회로 성(誠)에 대한 생각을 확장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간이 하는 작은 일 하나하나도 다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자연의 속성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과 자연의 이치를 헤아려 인간의 윤리를 정초해가는 혜안이 이 짧은 몇 구절로 함축될 수 있다는 것에 연신 감탄하게 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귀를 쫑긋 세우고 ‘성실’하게 임하려 노력하겠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들을 남겨주신 게 아닐까요!? ㅋㅋ 그리고 스피노자의 말,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물고도 어렵다"는 격려(?)를 떠올려 보면, 이 어려움을 인식한 것이야말로 제대로 가고 있다는 증거겠죠!? 괜히 깨달음의 여정이 '길' 혹은 '걷기'의 이미지로 비유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성실하게 걸어가기! 이 위태로운 여정을 고귀하게 겪으시는 걸 옆에서 부단히(?) 응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