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삶과 사상은 분리될 수 없는 법이기에 공자의 사상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공자의 삶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후대에 남겨진 여러 텍스트들을 통해 공자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후기 들어가기에 앞서 채운샘께서 추천해주신 공자 편전 세 가지를 적고 시작하겠습니다.
H.G. 크릴 <공자>, 왕건문 <공자, 최후의 20년>, 시라카와 시즈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
H.G. 크릴의 책은 교과서적인 평전으로 베이스로 깔고 가기 좋은 책이며, 왕건문과 시라카와 시즈카의 책은 재밌으니 읽어보라 추천해 주셨습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노나라 추읍에서 태어나, 기원전 496년부터 기원전 484년까지 천하를 주유하다가 노나라로 돌아와 기원전 479년에 73세의 일기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평생 그럴 듯한 벼슬 한 번 한 적 없이 천하를 떠돌다가 생을 마칩니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그의 삶에 대한 공자님의 탄식도 중간 중간 그대로 들려줍니다. 그런 평범함 속에서 공자의 비범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논어>의 매력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를 중심축으로, 제후국의 역사를 기록한 <세가>를 가로축으로 구성하고 있는 형식인데, 그 <세가>에는 특이하게도 한 번도 제후로 봉해진 적 없는 <공자세가>가 존재합니다. 천하를 위해 의례와 법도를 제정하고 육예의 전통을 후세에 전하는 것은 왕이 하는 일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공자에 대한 사마천의 지극한 존경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공자는 13년간의 천하주유를 마치고 돌아와 노나라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냅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해줍니다. 아들과 자로가 죽고 공자가 병이 들고, 자공이 찾아옵니다. 공자는 <사야, 왜 이리 늦게 왔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탄식하더니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다 부르고 눈물을 흘린 후 자공에게 은나라 사람인 나의 시신은 중간 계단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일주일 만에 죽습니다. <사야, 왜 이리 늦게 왔느냐?>는 공자의 물음은 그의 한없이 쓸쓸한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공자의 삶을 관통하는 세 개의 키워드는 <불우(不遇)> <호학(好學)> <즐거움(樂)> 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우>란 '때를 만나지 못함'이라는 뜻으로 니체식으로는 반시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 사상 또한 때 아닌 때에 도착한 반시대성을 가진 사상이었지요. 공자도 비슷합니다. 천하의 도가 무너지고 춘추시대가 저물어 가고, 각자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던 시기, 세상의 가치 기준이 변하는 분기점과 같은 시기에 천하의 도를 바로잡고 요순시대의 유토피아로 돌아가고자 했던 공자의 이상은 당시 정치 상황에서 용납할 수 없는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자의 불우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현으로는 상갓집 개 (喪家之狗)가 있습니다. 몸 붙일 곳이 없는 개라는 말로 ‘상갓집 개’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세상에서 의지할 만한 터를 찾지 못한 공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채운샘은 그러나 공자는 불우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며, 불우하지만 즐거움을 잃지 않는 공자님의 모습을 호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불우 즉, 때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나, 즐겁거나 불행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불우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고 하셨지요.
다음 시간에는 이 세가지 키워드, 불우, 호학, 즐거움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릴 적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왜 4대 성인에 들어가는 걸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후세에 끼친 영향이 예수와 석가의 영향에 못지 않음을 배우면서, 그리고 그 철학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간 그들의 삶을 공부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조금씩 깨달아 갑니다. 철학자들의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마냥 즐겁지는 않았을, 어쩌면 고단했을 삶을 긍정하고 마침내 즐겁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흔적들은 매주 어떤 울림을 줍니다. 그게 어떤 울림이야 라고 물으면 명확히 답하기는 어렵지만, 마치 명상 시간에 울리는 싱잉볼과 같은 느낌이야 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싱잉볼은 티벳 네팔 등지에서 전통 치유에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싱잉볼의 조화로운 진동은 몸과 마음을 원래의 균형 잡힌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싱잉볼의 조화로운 진동과 같은 성인의 말씀에 고요하게 그리고 꾸준히 귀 기울이며 공부를 하자 다시 한번 마음을 돋우며 후기 마칩니다.
마지막 문단은 특히 놓칠 수가 없군요! 이리 발심하시는데, 강의만 들으실 겁니까? 세미나를 시작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ㅋㅋ
<사야, 왜 이리 늦게 왔느냐?> 여기에는 공자님의 복잡한 심정이 담겨 있는데, 자공에 대한 질타이면서 걱정이면서, 자공을 비롯한 제자들에 대한 마음이 드러나면서, 이제는 늦어버린 자신의 때에 대한 한탄이면서... 너무나 많은 것이 저 한마디로 나온 것 같더라고요. 그게 통했는지 주역팀에서도 눈물을 훔쳤던 선생님이 계셨고요. ㅎㅎ 확실히 인류의 스승들은 그 후회와 한탄마저도 우리에게 배울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