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나멘을 대항품행의 동력으로
루크레티우스 강좌 3차시(8.8) 후기 스텔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쉬다가 오늘에서야 후기를 쓰게되었습니다. 후기 쓰는 곳과 강의자료도 오늘에서야 찾았습니다. 불성실함에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번 강의에서 생각한 것들이 많아서 정리를 하고-감사합니다.^^- 강의듣지 못한 샘들도 좋은 내용 가져가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디지털화
<루크레티우스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세 개의 화두> 중 3차시는 ‘클리나멘 : 디지털 네트워크 안에서 다른 속도를 발명하기’입니다.
막스는 박사학위 논문을 루크레티우스에 대해서 썼다고 합니다. 클리나멘, 원자들의 혁명을 고민하다가 받은 영감을 노동계급의 혁명성으로 가져왔는데, 착취·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동자에게는 혁명적인 힘이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리도 미세한 방식으로 권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민호샘은 이런 차원에서 클리나멘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언제든지 예속·권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거의 모든 인간들은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마트기기, 온갖 컨텐츠에 노출되고 휩쓸리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3년 들어서서 생·기 세미나 도서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에서 디지털산업과 환경 파괴를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탈물질화된 산업으로 보이는 디지털산업이-클라우드나 일상 공간에서- 환경 부하를 주고 어떻게 하부구조를 만들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지털기기 보급, 네트워크 공간 확장은 근 10년 사이 스마트폰 보급, 소비, 소통, 관계 맺기, 여가 즐기는 수준 등이 특히, 코로나 이후 천지개벽의 수준으로 달라졌습니다.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구도 스마트폰이 이렇게 발달한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데이터센터는 어마어마하게 크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빠르고 잘 터지는 인터넷은 당연하고 좋은 것이며 앞으로 개선되어야함에 합의를 본 것 같습니다. 한국인 스크린 타임이 10-20대의 경우 9시간(2~3시간 넷플릭스, 2시간 SNS, 2시간은 앱) 으로 전세계 평균과 큰 차이가 없으며, 전지구적 현상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신체적·정신적으로 디지털확장이 지복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가?입니다. 실존이 왜소화되는 경향에 대해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요? 디지털화와 함께 어떻게 바뀌고 있나요? 더 연결되는데 왜 더 외롭고 무기력해질까요?
비대해진 정보통신망, 기계들과 살게 된 것이 10여년도 안되는데 우리들의 인지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유튜브를 보고 있습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았고, 억압하지도 않았습니다. 원하지 않는 방식의 일상이 있습니다. 클릭, 접속, 자극, 드라마 정주행, 웹툰을 보고 있습니다. 컨텐츠에 휘둘리도록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컨텐츠에 유입되도로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안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환경 문제입니다.
클리나멘
루크레티우스 철학에서 클리나멘을 생각해 봅니다. 클리나멘(clinamen)은 ‘기울어져 빗겨감 혹은 벗어남’을 뜻합니다. 원자들이 돌발적으로 자신들의 직선 경로에서 아주 미세하게 벗어나 기울어져 빗나가는 현상이 바로 클리나멘입니다. 원자 운동의 원인은 무게와 충돌입니다. 에피큐로스는 마주치게하고 생성하는 원리로 클리나멘을 제시합니다. 사실, 물리학적인 내용은 어려웠습니다. 명백한 결론은 클리나멘은 자기 안에 자기를 극복하려는 힘이 (원자 안에) 있고, 원자들의 결합인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습관을 반복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그런 능력이 이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항 품행
‘예속’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중세에는 종교적 율법으로 다음은 국가의 억압, 자본가의 착취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스마트한 기계들, 연결, 플랫폼이 제공하는 컨텐츠들 사이에 있습니다. 테크놀로지와 플랫폼 사이에 형성되는 우리의 행위 방식은 장치들과 더불어 형성되는 행위로 통치를 분석하지 못합니다. 디지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함이 문제입니다. 푸코는 이를 기존의 권력-권력 일방향, 주체와 객체의 방향성-과 달리 양방향으로 작용하는 권력이며 인간의 품행을 인도하는 방식임을 설명합니다. 행위를 하는 특정 주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플랫폼 개발자 또는 광고를 더 띄우거나 검열하는 등 행위 흐름에 일정 수준 개입하게 됩니다. 이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대항 품행’을 제시합니다. 인도되돼 다른 방식으로 인도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사적 향유, 인도받고 진실에 가까이 가는 방법입니다. 디지털 없이 살아가기는 불가능합니다. 데이터 서비스 거부는 실효적이지 않고, 주변인에게 권할 수 있는 방식도 아닙니다. 즉, 하지 않기와 같은 부정적인 방식이 아닌 뭔가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가야겠습니다.
저는 인터넷이 네트워크로 연결이 되고, 기술이 더 발전하여야 한다는 사실에 의심을 해보거나 하지 않았어서 이 강좌가 제게 하나의 ‘클리나멘’이 된 것 같습니다. 또한, 그동안 환경을 지키기 위해 ‘~ 하지 않기’ 로 대부분의 캠페인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긍정적인, 지향할 수 있는 방향의 실천적 노력이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다른 샘들이 클리나멘이 긍정적 방안이 되는가? 디지털화에 빠지지 않는 길은? 클리나멘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관계는? 클리나멘과 관련해서 직선적 운동을 이탈시킬 힘이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데 코드화되지 않은 여백이 늘 존재며, 상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발현되지 않는데 어떤 순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클리나멘과 관련한 긍정적인 방법으로 민호샘은 ‘완전히 다른 배치에 두기’를, 혜원샘은 ‘간단한 기능만 있는 폰으로 바꾸기‘를 제시하셨습니다. 전 폰에 집중하기 보다, 수다떨기 같은 신체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이해가 부족한 점 있으면 조언부탁드립니다.^^)
강의를 함께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써 주신 후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스텔라 샘이 새롭게 알게 된 점들, 문제를 새롭게 보게 된 지점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서 저도 막 ~~신나게 읽었어요~~ q(≧▽≦q)
흔히 유저라고 할 때, '고객님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듣는데요. 이제 그 말이 너무나 이상해요.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구의 만물에 대한 감사를 누구에게 하고 있는 것인지...우리가 어떤 착취와 예속을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고 반성도 하게 되는 데... 또 너무나 금방 자기 습관으로 돌아가는 게 문제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문제화하고 함께 얘기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텔라 샘이 말씀하시는 수다 떨기와 같은 신체적 활동도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몸의 습관 바꾸기, 때론 수고롭고 불편하더라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관계를 맺는 것으로 말이죠. 또 우리가 서로의 감사를 되돌려 줄 마음으로 모인다면 절대 외롭거나 무기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께 힘내 보아여~~
(づ ̄3 ̄)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