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3주차 강의는 주역을 읽을 때 배경지식이 없어서 뭔말이지? 했던 고공단보부터 나와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옛날 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들었으나^^ 후기는 공자님이 사랑한 주공의 스토리 라인을 중심으로 중국의 정치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유가식의 무위정치는 처음 접한 개념(?)이었고, 시스템의 최소화에서는 회사에서 매뉴얼의 최소화가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하게 하였으나 우리는 이미 덕치, 예치가 아닌 법치의 시대를 살고 있어서 아무래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1. 주공의 아버지 문왕 : 문왕은 자신의 할아버지 고공단보와 아버지 계력의 법도를 본받아 仁政(약자 중심의 통치, 인재 우대) 시행.
→ 중국(한자문화권)에서 통치자는 인정을 시행하기 위해 항상 노심초사한다. 혹시나 知人 (사심없이 일할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제대로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회적 약자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지는 않은지 전전긍긍한다.
→ 인재를 잘 알아보면 유가식의 무위정치 가능 : 왕은 북극성과 같은 존재 (북극성은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 뭇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
2. 주공의 형 무왕 : 문왕이 붕어한 문왕 9년. 제후들이 은나라 주왕를 정벌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아직 천명을 모른다고 하며 철수. 2년 후 주의 횡포가 심해지자, 어쩔 수 없이 정벌하게 됨.
→ 중국에서는 권력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찬탈하는 것, 정복을 좋게 보지 않았다. 하여 무왕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하늘의 명(天命)을 받아 은을 무너뜨렸다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리고 천명은 민심, 즉 백성들의 마음에 기반하는 것이기에 무왕이 상나라의 도성에 이르자, 상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교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천명의 근거가 된다.
3. 주공 : 무왕 사후. 아들 백금을 노나라로 보내고, 자신은 주에 머물면서 섭정.
- 남이 나를 만나러 온다면 머리를 감든가 식사를 하다가도 멈추고 만났으며, 결코 예의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지내왔다. 그러면서 내가 부족한 점은 없는지,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염려하며 지내왔다.
- 노나라 제후가 된 아들 백금이 부임한 지 3년 후에야 주공에게 정사를 보고하자 주공의 탄식 : 나라의 명령이 너무 복잡하면 백성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속박하지 않고 백성 스스로가 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진리인데...
→ (관료, 명령, 형벌) 시스템은 최소로 셋팅하고, 그 안에서 자기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화하면 됨.
담백한 후기로군요! 확실히 고대 중국의 정치에 대한 관념은 독특한 것 같아요. 서양에서는 '정의(justice)'가 지금까지도 매우 중요한 정치적 개념으로 다뤄지는데, 고대 중국에서는 '천명(天命)'이란 다소 초월적인 뉘앙스의 단어가 핵심적으로 등장하니까요. 맹자를 거치면서 이 단어는 초월적이라기보다 민중적인 것에 가까워지긴 했죠. 어쨌든 강의 중에 서양 민주주의가 민중의 '선택'에 근거한다면, 고대 중국의 정치는 민중의 '마음'에 근거한다는 게 계속 기억에 남았습니다. 몫을 분배하거나 누군가의 권리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교화하는 정치란 무엇일까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급진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