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양철학반은 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소크라테스와도 같은 동양의 공자님을 만나러 가는 중인데요. 공자님을 만나기전 고대 사상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그런 사상이 바탕이 되었던 이전 고대에 쓰여진 책들이 어떤 것들인지 배우고 있어요. 이번 5주차에서는 <서경(書經)> 과 四書(논어, 맹자, 대학, 중용)중 먼저 <대학>의 의미와 책의 내용이 무엇 인지를 들었는데요. 매번 강의가 그렇기도 하지만, 이번 주에도 동양의 새로운 책과 사상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 史, 역사를 기록하는 자? 신들린 사람, 샤먼(무巫), 종합예술가(악樂)
<서경(書經)> 은 역사서인데요. 고대 중국 3대(요순우)왕이 한 말(연설)을 기록한 것으로 현재 전하는 것은 58편(동진(東晉,317-420)인데요. 다른 경전처럼 정확히 누구에 의해 쓰였는지 알수 없는 글이 모인 것이라고 하네요. 모든 역사의 기록이 그렇듯 조작되었을수도 있구요. 그런 점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은 신중하고 아무나 할 수 일도 아닐테고, 무엇을 어떤 것을 기록할까라는 문제도 있을텐데요. 고대에 이런 史를 기록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바로 샤먼이자 예언자(무巫)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는 말과 연관이 있는데요. 신의 말을 아무나 들을수 없잖아요. 신의 부름을 받은 예언자만이 신과 소통하고 신의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던 사람이었죠. 그런 점에서 언어를 사용하고 전달하는 것은 커다란 능력이기도 했죠. 이런 예언자적 능력은 권력을 가진 것이고, 그 시대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말은 신중히 하라”고 했던 공자님은 “시대의 목탁”이라고 불렸는데. 뭘 경계하면 살아야 하는지를 앞장서서 알려주던 역할을 한 사람, 예언자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史가 악樂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요. 고대 암각화에 그려진 그림에 손에 악기를 들고 있고, 춤을 묘사한 그림이 있고, <예기>에는 춤과 노래로 귀신을 감흥시키는 구절이 있어요. “지기(地氣)는 상승하고 천기(天氣)는 하강하니 음양이 서로 충돌하여 천지가 요동하는데, 천둥과 번개가 북처럼 울리고, 바람과 비로 춤을 추며, 四時에 맞춰 움직이게 하고, 태양과 달로 온기를 주니 만물이 흥하게 된다. 이처럼 樂은 하늘과 땅의 조화에 의한 것이다.” 순임금의 아버지도 악기, 거문고를 요임금에게 하사받았던 것으로 보아 제례를 지내던 중요한 사람중 한사람일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는 시간의 산물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시간에 대해 가지는 기본적인 욕망이기도 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이기도 하죠. 연대기적 시간의 크로노스(망각)와 므네모시네(기억)의 투쟁이기도 하죠. 세상은 논리나 이성으로 해석이 안 되는 것이 많잖아요. 흔히 점쟁이를 신기를 내려받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역사를 기록하는 자는 일종의 광기, 신들린 자라고 할수 있죠. 요정의 신이 우리에게 와야죠!! 전쟁에는 전쟁의 신이, 사랑에는 에로스의 신이 우리를 덮쳐야 하듯, 기록에는 음악을 관장하는 무사이 여신이 와야 하는거죠!!! 리라를 연주하던 ‘헤르메스’는 공간과 시간을 과거와 현재를 모든 것을 이어주는 전령사였다고 하죠. 지금 우리가 글을 쓴다는 것도 역사를 기록하는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무사이 여신이 들어야 하는건데. 뮤즈가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 대학(大學) 大人之學, 大學의 道, 배움
‘大學’의 의미는 3가지인데요. 우선 大人之學(대인의 학문)으로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통치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라는 修己治人(수기치인)의 學입니다. 다음으로 지금 우리가 대학이라는 명칭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요, 교육기관(太學,태학)의 의미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텍스트를 가리키는 대학, 즉 <예기>의 42편이 새롭게 철학적으로 개편된 텍스트를 이릅니다. 무슨 이유인지 주희가 예기에서 독립시킨 것이라고 하네요.
대학은 어떤 책일까요? <예기>는 인간의 행동 양식에 관한 것이 다 들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예’는 에토스인데요. 품성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런 품성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것일까요? 고대에는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 표정, 몸짓에 그대로 품성이 드러난 것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사람의 품성은 완벽하게 외화 된다는 거죠. 이런 까닭에 관상학이 발달하고 관상을 중요하게 여겼을 것 같아요. 약간은 개인의 선호 감정이 포함되어 객관적이지 못할 것같기도 하는 면도 있어요.
<대학>에 심광체반(心廣體胖)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마음의 역량, 마음이 넓어지면 몸이 반질반질해진다는 뜻인데요. (근데 요즘 얼굴 반질반질한 사람이 많은데, 물론 이걸 바로 연결하면 안 되겠죠) 자신의 인격이 훌륭해지는 것은 그대로 몸으로 다 드러 난다는거죠. 세속적 삶을 사는 사람과 수행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외양으로도 다르긴 하죠. 모든 덕은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죠. 그래서 대학 <학기> 에는 배움과 관련하여, 왕이 어떻게 백성의 마음을 얻고 백성을 널리 가르쳐야 하는지 교육의 이념이나 목표를 말하고 있죠. 주희가 군사 교과서 만들면서 공부의 목적은 성인 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비록 붓다처럼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애초부터 나는 못해가 아니라, 일단 목표를 ‘깨닫겠다’는 그런 발심을 해야 한다는 말을 채운샘이 하셨는데요!! 그런 동력이 우리를 계속 공부하게 하는 ‘뮤즈’일수도 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기록의 권리, 권력의 소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과 감응할 수 있는 능력.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진 게 고대 중국의 성인들이라는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순을 죽였다고 생각한 이복동생 상이 집에 처음 와서 한 일은 거문고를 뜯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요. 그냥 신이 나서 그랬다고 생각했었는데, 樂-권력을 탈취한 것을 비유한 것이라는 부분이 매우 새로웠습니다. 이래서 고대 기록은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면 안 되나 보나 싶어요.
지금 시대에서는 고대 중국과 달리 기록이 특권으로 여겨지진 않지만, 여전히 '기록'과 '권력', '감응' 이 세 요소를 함께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고대 중국인들에게 기록의 문제가 다른 두 가지 요소와 더불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처럼, 지금 우리도 '쓰기'라는 활동을 그 수준으로까지 승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왜 기록하고 싶은지가 절실하게 물어져야 할 텐데요. 흐음... 이 부분에서 항상 멈칫거려집니다. ㅋㅋ;; 뮤즈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_@